‘청년’과 20대’에 대한 인상비평이 여기저기에서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에 [청년연구소]는 청년과 20대를 주제로 한 다양한 분야의 텍스트를 소개하려 합니다. 공부합시다!
 
패배자, LOSER. 이 시대 청년들의 이름이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명문대에 가라”, “대기업에 취직해라”, “정치에 관심을 가져라”, “돌멩이를 던져라”, “어른에게 개념 있게 행동해라” … 사회는 청년에게 많은 것들을 요구한다. 어쩌면 공존할 수 없는 것들도. 청년들은 내내 ‘사회에서 버려지지 않는 법’을 배우고 강요받아왔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패배자가 되어 버려진다. 청년연구소는 대학을 기준으로 청년을 나누어 그들이 어떻게 패배자가 되는지 2편에 걸쳐 알아본다.
  
“사대문 밖에서 살아가는 청년의 보수는 ‘노오력하지 않는’ 이기적 개인의 그것이 아니라 노력의 기회조차 박탈당한 자의 강요된 침묵이자 소외의 결과물이다.”
 
들러리를 신경 쓰지 않는 사회,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들러리
 
2016년 4월 26일 경향신문의 <보수 청년, 독거 청춘>의 일부다. 기사는 흔히 말하는 ‘지방대’ 혹은 ‘지잡대’ 생들을 살펴본 이야기를 다룬다. “이 사회에서 지잡대는 ‘온전한 인간’이 아니며 그것을 내재화한 청년”들. “그 청년들의 보수는 ‘변화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 논두렁에 처박히지 않기 위해 사력을 안전을 추구하는 재난의 보수일 것이다”.
 
청년 문제 이야기를 할 때 가장 큰 문제는, 논의 자체가 인서울 4년제 대학생들 위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아무도 ‘지방대’ 혹은 ‘지잡대’ 생들의 이야기를 꺼내오진 않는다. 기사가 표현한 바에 따르면 그들은 ‘들러리’들이고, 아무도 ‘들러리’를 신경 쓰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건 이 사회에서 당연하다. 이 사회는 그들을 ‘노력하지 않은 인간 이하’의 사람 혹은 ‘부당한 대우와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아도 마땅한 사람’으로 취급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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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잡대’생은 ‘지잡대’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사회에서 소외된다 ⓒskitterphoto
 
그들 역시 그 사실을 익히 알고 있다. 그들은 자신이 부당한 피해를 받는다 해도 그것을 사회에 떠들지 않는다. 그런 말을 하면 ‘공부를 안 한 네 책임 아니냐’라는 비난이 돌아올 것이란 걸, 인생에서 이미 내재화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건 학창시절부터 내재화된 것이었다. 성적이 높아야 대우를 해주는 중‧고등학교와 성적이 높지 않았던 자신, 어른들에게 무시받는 것이 당연했던 시간들. 그렇기에 그들은 소리 높이지 않고, 더욱 더 우리 사회에서 “제외된다.”
 
노력을 안 했으니 당연한 결과라고?
 
사람들은 그들에게 되묻는다. “공부를 했으면, 노력했으면 될 거 아니냐?”. 이 질문에는 2가지의 맹점이 있다. 첫째는 그들도 공부하지 않은 건 아니라는 것이다. 경향신문의 <부들부들 청년> 시리즈에 의하면 인서울 4년제 대학 입학자는 전체의 7.17%다. ‘인서울 4년제’가 아닌 대학에 입학한 그는 상위 10~30%에 속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말로” 공부를 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두 번째는 교육이 철저히 엘리트주의적인 결과를 낳고 있다는 점이다. ‘수능만큼 공정한 시험이 어디 있냐’고 하지만, 수능 시험 상위자는 이미 전국에서 잘 사는 동네에서 거주하는 학생과 일치하고 있다. 서울대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흔히 말하는 ‘강남 3구’ 출신으로 채워져 있고, 가난한 동네 출신은 서울대는커녕 명문대에 가는 것도 힘들다. ‘키울 수 있는 사람만 투자하는’ 엘리트 교육은 투자할 여력이 있는 집안 출신들이 더 나은 교육의 기회를 독점하게 한다. 현재 입시체제 역시 그 결과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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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은 정말로 ‘노력’의 결과인가 ⓒ오마이뉴스
 
허나 과정의 공평성과 별개로, ‘지방대’ 딱지는 평생을 따라다닌다. 광고천재로 불리는 이제석은 저서에도, 강연에도 ‘지방대 출신’이라는 말이 붙는다. 청년비례대표는 자신이 지방대를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노력을 통해 인서울 명문대와 미국 유수의 대학원에 진학했음을 이야기한다. 결국 우리 사회에서 지방대 출신은 성공해도 ‘지방대’다. 이 딱지는 ‘출신 확인’과 다름없다. ‘너의 출신은 어디냐? 아, 고작 지방대?’라는 말이 달라붙는.
 
93%에겐 말해본 경험이 없다
 
청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전체 청년의 7% 외에는 관심이 없으며 93%의 피폐한 삶은 ‘공부 안 한 결과’로 치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말을 하면 들어주는’ 7%는 계속 떠들지만 절대다수인 93%가 ‘말해봤자 소용없기 때문에’ 침묵한다. 사실, 93%는 살면서 ‘말해본’ 경험도 전무하며 누군가가 ‘말해보라’고 한 적도 없다. 게다가 그들은 스스로 ‘내가 노력을 안 해서 그렇지’라며 자신이 겪는 문제를 ‘당연한 것’으로 치환하며 자신의 입을 막는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교육은 그렇게 ‘패배자’를 만든다. ‘난 돈이 많지 않아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어. 내가 열심히 해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있다면 난 성공할 수 있어’라는 희망을 품고 살 수 있게도 하지 않는다. ‘쟤랑 나랑 같은 교육을 받았는데 난 이 모양이네. 그러니까 난 뭘 해도 안 되는 거야. 내 잘못이야’라고 자신을 제한하고 나아질 기회를 포기하게 만든다. 엘리트주의가 아닌 척, ‘노력만 하면 누구나 명문대에 갈 수 있어!’라고 거짓말하는, 사실상 엘리트주의 교육의 결과다. 7%가 아닌 이들을, 사회에 처음 들어선 20살의 가능성을 제한하고 사회에서 내쫓아 버리는 교육의 결과다.

 
 

글. 감언이설(gchhg2005@naver.com)

대표이미지. ⓒ skitterpho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