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은 빚이 있어야 파이팅을 한다”. 새로 취임한 한국장학재단 안양옥 이사장의 4일 발언이다. 그는 “국가장학금 비중을 줄이고 학자금 대출을 확대”해야 한다면서 기존 소득 1~8분위 대상으로 이루어지던 무이자 학자금대출을 소득 9~10분위도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대학생이 부모의 도움 없이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한다는 소신을 언급하면서, 제주도의 대학생 학자금 이자를 전액 지원하기로 합의했다는 발언을 했다.  ‘빚이 있어야 파이팅’ 발언은 그 다음에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51603_2

안양옥 신임 한국장학재단 이사장

ⓒ국회뉴스

 

학자금 대출을 확대하고, 무이자 정책으로 지원하는 것은 대학생을 위한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 소득분위가 9~10분위라 할지라도 등록금에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많고, 무이자 정책을 통해 그 부담을 줄여주는 시도는 나쁘지 않다.

 

문제는 “빚이 있어야 파이팅을 한다”란 말에 담긴, 안양옥 이사장의 부족한 현실 감각과 대학생들에 대한 편견이다. 학자금 무이자 정책이 높은 등록금에 허덕이고, 낮은 취업률 탓에 졸업 후에도 쉽게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직장을 구하더라도 저임금을 받으며 일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해소하기 위함이라면 문제가 없다. 허나 안양옥 이사장의 발언은 “대학생들은 기본적으로 노력을 잘 하지 않으려 해서 부모님에게 등록금 지원을 받으려고 하는데, 무이자 정책을 통해 직접 빚을 지게 하는 것이 옳다”라는 것으로 보인다. 장학금을 줄인다는 발언 역시 이사장의 발언이 대학생들의 현실에 대한 무지에서 왔다는 것에 대해 확신을 하게 한다.

 

높은 등록금이 문제다

 

교육부가 작년 11월 24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등록금은 OECD 34개국 가운데 비싼 등록금으로 2등이었다. 대학 운영 경비 중 민간 부담 비율도 두 번째로 높았다. 정부 부담 비율은 꼴찌에서 2위였다. 2015년 대학알리미 공시자료에 따르면 학자금대출을 받은 학생의 비율은 4년제 대학교 13%, 전문대학 18%였다. 정진후 정의당 의원이 한국장학재단으로부터 받은 자료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14년 학자금대출 평균액은 학기별로 약 1조에 달했다. 2015년 1학기는 9,600억이었다. 2015년에 민병두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발표한, 한국장학재단을 통한 대출이 아닌 은행권 대학생 대출 현황은 2015년 7월 말 기준으로 대출 총액이 1조 839억이었다.

 

51603_4

돈 버는 건 OECD 2등 아닌데 왜 등록금은 2등이냐

ⓒMBC 무한도전

 

이미 우리나라는 높은 대학등록금, 대학 운영 비용에 대한 높은 민간 부담률과 낮은 정부 부담률로 학생들은 등록금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그렇기에 위에서 지적했듯, 대학생들에게 이미 대출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실 학자금 대출의 가장 큰 문제는 등록금을 빌려서 졸업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갚을 사정이 되지 않는 현재 한국 사회에 있다.

 

등록금이 많더라도 비싼 등록금을 낸 것만큼 미래 취직에 효과가 있다면 문제가 없다. 허나 비싼 등록금을 낸 효과가 무색할 만큼 높은 실업률(지난 5월 9.7%로 역대 최고였고, 현대경제연구원은 실질 청년 실업률은 34.2%라고 발표했다)은 학생들의 발목을 잡는다. 높은 집값에서 집값을 모으기도, 아이들의 양육비를 감당하기도 부족한데 학생들은 학자금대출까지 갚아야 한다. 그럴 만큼 소득이 높은 직장에 들어가기 쉬운 것도 아니다.

 

51603_5

지금 청년은 아무리 파이팅해도, 열심히 해도 빚이 늘어나는 마당이다

ⓒMBC 무한도전

 

대학생이 정말 “파이팅”하지 않고 있는가

 

지적한 것보다 더 큰 문제는, 또다시 나타나는 ‘노력하지 않는 대학생’이다. “빚이 있어야 파이팅한다”라는 말이 “빚이 없으면 파이팅하지 않더라”로 읽히는 것은 단순한 확대해석인가? 현재 한국의 20대는 단군 이래 최대의 스펙이란 말과 함께 20대를 보내고 있다. 아르바이트와 토익, 학점과 스펙, 봉사활동에 어학연수, 그리고 갈수록 늘어만 가는 ‘취업 전장 무기’를 채우느라 파이팅을 지나 ‘번아웃’, 소진되고 있다. 작년부터 우리나라를 표현하는 단어로 자리 잡은 ‘헬조선’은 바로 그렇게까지 파이팅하는데도 인간다운 대접을 받기 힘들고 더 나은 삶을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을 이야기해왔다. 기성세대가 강조하는 노력을 비꼬는 ‘노오오오력’이란 말처럼, 파이팅 역시 ‘파이이이이이티이이잉’일 뿐이다. 곪을 대로 곪은 청년 문제에서, 파이팅해서 해결될 지점은 지났다. 파이팅은 이미 몇 년 전 힐링 열풍 때 지나간 개념이다.

 

“힘들지만 우리 힐링해서 모두 파이팅!”

 

 

51603_6

힐링했다가, 노력하라 했다가, 이젠 또 “빚내서 파이팅”이란다

ⓒMBC 무한도전

 

학생들은, 이미 충분히 파이팅하고 있다. 비정규직들의 죽음을 보고, 차별받는 약자를 보고, 공무원만이 인간처럼 살 수 있는 사회를 보고 인생 내내 긴장하며 살고 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인간 대접을 받기 위해 “여유로운 청춘”을 사회에 담보로 맡기고 대학에 입학했다(사실, 10대 때부터 이미 맡겨놓았다.). 최소한 대학은 나와야 인간 취급을 받기 때문이다. 실제로 학자금 대출을 받든 받지 않았든 그렇게 학생들은 이미 ‘빚쟁이’다. 여유로운 청춘을 포기하고 담보로 맡긴 채, 대학생이 되어 학점과 토익을 위해. 취업시장에서 승리하기 위해 “파이팅”한다.

 

대체 무엇을 더 파이팅하란 말인가. 이미 금전적으로 빚지고,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10대 때부터 모든 것을 포기했다. 청년은 무엇을 더 빚지고 무엇을 더 사회에 바쳐야 하나. 아니, 애초에 청년들이 “파이팅”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도 ‘빚을 져서’까지. ‘졸업만 하면 취업이 되던’ 기성세대와 달리 온갖 것을 갖추고 있는 현재의 청년들이 ‘파이팅’이 부족하다면 대체 얼마나 더 파이팅해야하는 것인가. 청년들이 빚이 없으면 파이팅하지 않는 무력한 세대라면, 지금까지 한국장학재단에 빚지지 않은 청년들의 “파이팅”은 파이팅도 아니라는 것인가.

 

51603_3

한국장학재단이 나서서 파이팅하게 해주셔서 아유 고맙습니다

ⓒMBC 무한도전

 

안양옥 이사장은 오늘 “잘사는 학생도 대출을 받아 부모 도움받지 않고 평등한 출발선이 되면 좋겠다는 뜻’이라고 해명했다. 허나 평등한 출발선을 만들고 싶다면, 등록금을 낮추면 된다. “청년 모두 빚쟁이가 되는 것”이 ‘평등’해지는 것은 아니다. 빚을 갚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의 5억짜리 빚과 소득이 없는 대학생의 300만 원 빚은 다르다. 안양옥 이사장이 정말로 대학생들의 “평등한 출발선”을 말하고 싶다면, 바로 그 자리에서 가능한 일이 있다. 한국장학재단의 국가장학금 수혜범위를 넓히는 것이다. 학자금대출은 평등함과는 거리가 멀다. “파이팅” 역시.

 

 

글. 감언이설(gchhg2005@naver.com)

메인이미지. ⓒ 중앙일보

이미지 편집. 고함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