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혁명’은 얼핏 보면 애니메이션, 혹은 새로 출시된 게임 같다. 얼굴이 가려진 채 손과 다리 등에 포커스가 맞춰진 사진, ‘작약과 백합이 흐드러지던 시간’, ‘우리는 서로를 기억하기로 약속했다’ 같은 문구는 감성을 자극하기 위해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의 세계관을 연상시킨다. 그래서 ‘6인조 웹아이돌’이라는 소녀혁명의 자기소개는 낯설다. 음악 대신 이미지와 문학으로 채워진 앨범을 발매하겠다는 말 역시 쉽게 이해되진 않는다.

 

그러던 찰나 이 6인조 웹아이돌의 멤버별 티저가 18일 오후 9시, SNS를 통해 공개됐다. 논란은 곧바로 일었다. 단순히 ‘소녀감성’에 기대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그래서 조금은 평범해 보였던 ‘소녀혁명’의 멤버별 티저에서 ‘모범처녀’, ‘동성연애자’, ‘자해’ 등의 단어가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소녀가 혁명을 만났을 때?

 

자극적 단어로 메워진 멤버별 티저를 논하기에 앞서, ‘소녀혁명’은 왜 ‘혁명’이라는 이름을 빌렸을까. 공개된 티저를 종합해 해석해 보면 ‘소녀혁명’의 멤버들에겐 어떠한 종류의 정신질환이 있고 그 때문에 이들은 ‘병원부속여학교’에 갇혔으며, 멤버들이 학교를 탈출하는 것이 서사의 핵심인 듯하다. [우리는 학교를 탈출하기로 했다. 우리는 혁명을 만들었다]는 티저 문구는 그 핵심을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한없이 연약할 것만 같은 ‘소녀’의 이미지에 ‘혁명’을 덧댐으로써 ‘소녀혁명’의 제작자들은 어떤 전복적 효과를 노렸을지도 모르겠다. 비슷한 방식의 콘셉트가 기존의 여자아이돌에서도 나쁘지 않게 먹혀왔다. 해서 소녀혁명이 추구하는 어떤 이미지는 어쩌면 쟁쟁한 기존 아이돌들 –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 속 서브컬쳐적 스타일이나, 여자친구가 구가한 ‘연약해 보이지만 강인한’ 소녀 이미지등과 맞닿아 있는 듯도 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유사 콘셉트가 왜 ‘소녀혁명’에 이르러 유독 논란이 되었을까? 이유는 잠시 미뤄두었던 바로 그 ‘경악스런’ 멤버별 티저에 있다.

 

페티시가 된 정신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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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혁명

 

정신병이 있어 ‘병원부속여학교에 갇혀 있다’는 콘셉트는 필연적으로 6명의 멤버에게 각각의 정신병을 부여한다. 문제는 정신병이 페티시가 된다는 것에 있다. 말간 얼굴에 살짝 벌어진 입을 한 프로필 사진 옆에 쓰인 ‘품행이 정숙하지만 조증일 때 자해를 한다’는 설명은 정신병에 걸린 예쁜 소녀의 섹슈얼리티를 소비하는 방식 – 인터넷소설 속 병원 냄새를 눈치 채며 깨어나는 여자주인공 같은 – 을 한 치의 오차 없이 게으르게도 답습한다.

 

6명 가운데서도 비교적 어려보이는 멤버에겐 ‘교내에서만 성장한 순종적인 환자’라는 설명이, 머리가 짧은 멤버에겐 ‘예의범절이 부족’하단 설명이 붙어있다. (게다가 멤버 가운데 한 명은 ‘전환 치료’를 받는 ‘동성연애자’다. 당연하게도 동성애는 정신병이 아니다.) ‘소녀혁명’은 혁명을 하는 주체로서의 소녀를 내세운다고 말하지만, 결국 세계관 내에서 혁명의 주체가 될 소녀들은 사회가 바라보던 완전한 객체로서의 소녀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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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혁명’ 트위터 캡처

 

논란이 되자 ‘소녀혁명’ 측은 트위터를 통해 “학교의 억압적 태도를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혐오적 워딩을 했다”, “학교의 입장은 소녀혁명 제작자의 입장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학교의 억압적 설정은 제쳐두더라도, 그들의 기획 속에 제시된 소녀들에게선 급진적이고 전복적인 ‘혁명’을 이뤄낼 주체성을 찾기는 힘들다. 소녀들은 연약한 모습으로, 교복치마를 입은 채, 아무 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다.

 

실패할 수밖에 없는 전략

 

그래서 ‘소녀혁명’은 무엇을 하겠다는 것일까. 앞서 언급했듯 이들은 음악 대신 이미지와 문학으로 채워진 앨범을 발매하는 아이돌이 되려하고 있다. 기존 아이돌들이 노래로 자신들의 세계관을 제시한 것처럼 예술(이미지와 문학)을 통해 ‘소녀혁명’의 세계관을 제시하겠다는 얘기다. 구체적 방식은 ‘텀블벅 모금’. 그리고 텀블벅에서 이들은 스스로를 ‘사진 프로젝트’로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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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텀블벅 ‘소녀혁명’ 페이지 캡처

 

설명처럼 ‘소녀혁명’은 아이돌이라기보단 그저 자신의 이상적 세계관을 실현하며 다른 이들의 공감과 애정을 받고 싶어 하는 개인들의 모임에 가까워 보인다. ‘소녀혁명’은 음악이라는 기존 아이돌의 구성 요소보단 기존 아이돌이 대중에게 사랑받는 방식에 천착해 그것만을 모방한 것 같다. (텀블벅 후원의 댓가로 제시된 ‘포토카드’, ‘팬미팅’ 등은 주로 아이돌이 팬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6인조 웹아이돌 소녀혁명’의 그 어느 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아이돌이라는 카테고리도, 소녀라는 정체성, 혁명이라는 행위까지 모든 것이 ‘틀렸다’. ‘소녀혁명’의 제작자들은 이미지와 문학, 즉 예술로 틀림을 덮어보려 했지만 그것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전략이었다. 그리고 논란이 심화된 19일 새벽, ‘소녀혁명’의 공식 트위터 계정은 비공개 상태로 바뀌었다. 페이스북 페이지의 게시물들 역시 모두 삭제된 상태다.

 

글. 아레오(areoj@daum.net)

메인이미지. ⓒ 소녀혁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