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자 중의 소수자

 

“커밍아웃을 하거나 정체성에 관한 선택을 했을 때, 청소년 성소수자는 스스로의 선택을 인정받지 못한다. 학교가 자신의 정체성을 바꾸려 하고, 자신이 잘못됐다고 얘기할 때 대응할 힘이 없다. 혼자서 살아갈 수가 없어서 더 취약하다.”

 

위기에 처한 청소년 성소수자를 보호하고 지원하기 위한 공간, ‘띵동’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인섭 상담지원팀장은 청소년 성소수자가 이중의 약자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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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이 필요한 청소년 성소수자라면 누구나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띵동’ ⓒ 비마이너

 

실제로 청소년 성소수자는 성소수자 중에서도 소수자의 위치에 있다. 학교에서 청소년은 학생으로서 통제와 지도의 대상으로 여겨지기 쉬우며 결정의 주체로 인정받기 어렵다. ‘정체성’까지 나아갈 필요도 없다. 머리 스타일과 옷조차 마음대로 고르지 못하는 것이 많은 수 청소년(학생)의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성소수자를 향해 ‘무관심’과 ‘혐오’로 일관하는 무채색 학교에 청소년이 자율적으로 대항할 방법은 많지 않다.

 

보이지 않는, ‘없는’ 존재

 
학교에서 논란이 될 만한 사항을 다루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그래서 ‘성소수자 문제’같은 것엔 아예 무관심이 최선이라고 믿는 시각이 있다. 교육부는 작년 <학교 성교육 표준안>을 만들어 “공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반드시 성취해야 할 성교육의 준거를 마련”한다고 발표했지만, 성소수자에 대한 언급은 일절 나오지 않는다.

 

학교에서 성소수자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에 대해 이인섭 상담지원팀장은 “성소수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하는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고 말한다. 자신을 없는 존재로 만드는 사람들 틈에서, 청소년 성소수자는 (자신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거나, 존재 자체가 문제라는 생각을 품는다. 이러한 사정을 주변에 알리지 못하기 때문에 도움받을 곳조차 없다.  

 

“내가 없다면 더 이상 문제는 일어나지 않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제가 그렇게 할 만한 거리를 제공했습니다. 저도 그런 것쯤은 어느 정도 참는다는 생각으로 했었는데, 어제는 정말 참기 힘들어서……” – 동성애 혐오성 집단 괴롭힘으로 자살한 고등학생이 남긴 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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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가 잘못 말하는 경우(직접적인 혐오성 발언)를 차치하더라도, 말하지 않는다고 학생들이 모르는 것은 아니다. ‘제대로’ 알지 못할 뿐이다. 교육의 자리를 대신한 혐오는 청소년 성소수자를 더욱 보이지 않는 그늘로 내몬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시한 중고등학생 대상 설문조사에 따르면, 교사와 다른 학생의 혐오 표현을 경험했을 때 “못 들은 척하거나 무시했다”는 답변이 58%로 가장 많았고, “동의하는 척하였다”는 답변도 33%에 달했다. 그 이유는 자신이 혐오 표현의 직접적인 대상이 될까 봐, 또 보복을 당할까 봐 두려워서였다. 

 

무채색 학교는 위험하다

 

이인섭 상담지원팀장은 “청소년은 ‘학교’에서 종일 시간을 보내며 또래 친구들과 생활을 함께 하다 보니 서로에게 굉장히 영향을 많이 준다”고 설명한다. “물리적·심리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청소년 집단 내에서는 사회의 다른 관계에서보다 훨씬 직접적이고 직설적인 표현이 오간다”는 것이다. “더러워”,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국가인권위원회 자료)와 같은 성소수자를 향한 적나라한 혐오 표출은 정체성을 형성하는 시기의 청소년 성소수자에게 부정적인 자기 인식을 심어준다.

 

올바른 정보의 부재는 자기혐오를 강화한다. 퀴어 퍼레이드에서 만난 청소년들은 하나같이 “인터넷”에서 보고, 또는 “친구”를 따라 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인섭 상담지원팀장이 지적하듯이 “인터넷과 주변 사람들의 말 속에는 왜곡되고 잘못된 정보들이 넘쳐난다.” ‘동성애는 선천적 성향이 아닌 죄/성적 타락/정신병/나쁜 경험으로 인한 상처’, 혹은 ‘태어난 성별과 다른 성별로 살고 싶어 하는 증상은 치료될 수 있다’(국가인권위원회 자료) 따위의 주장이 대표적인 오류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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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치료근절운동네트워크 기자회견 ⓒ 띵동

 

이 와중에 청소년 성소수자의 자존감과 자긍심은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이인섭 상담지원팀장은 청소년 성소수자가 “차별당하고 배제당하는 자신을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로 바라보게 되어 “심한 우울감이 나타나고 자살률이 높아진다”고 말한다. 성소수자는 “사회 부적응자, 낙오자, 아웃사이더”라는 주변의 시선,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기독교계의 성명 등이 현실을 더욱 견뎌내기 힘들게 한다.   

 

청소년 성소수자가 경험하는 정서적 고통은 통계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국가인권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국내 중고등학교 재학 중에 차별 및 괴롭힘을 경험한 청소년 응답자의 19.4%가 자살을 시도했다. 58.1%는 우울증을 겪었고 16.1%는 자해 경험이 있었다. 진학을 포기하거나 자퇴하여 학교를 떠나는 학생도 각각 6.5%와 4.3%를 차지했다. 청소년 성소수자가 표면 위로 드러나지 않는 우리의 현실에서 청소년 성소수자의 자살률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마지막 울타리가 되어줘야 할 학교가 오히려 학생들을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희망은 무지개색 학교에

 

“과거보다 성소수자에 대해 ‘관용’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종의 유행처럼 단편적인 부분만 보는 관용은 한계가 있으므로 여전히 학교에서의 교육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이인섭 상담지원팀장은 강조한다. 동성애를 이해한다고 말하면서 “성소수자가 불쌍하니까 괴롭히지 말아야 한다”거나 “사귀는 정도까지는 허락해줄 수 있지만, 결혼은 안 된다”는 반응을 보이는데, 이러한 시혜적인 태도는 오히려 제대로 된 성소수자 관련 교육의 필요성을 증명할 뿐이라는 것이다.   

 

“정상이라고 생각하고 살 수 있게 도와주세요.” – 청소년 설문조사 응답자의 목소리 中

“차별 없는 학교를 아이들이 다녔으면 좋겠어요.” – 청소년 설문조사 응답자의 목소리 中

 

세상에는 다양한 가치가 존재하므로 타인의 정상/비정상 여부를 내 마음대로 판단할 수 없다는 것, 더군다나 다름을 이유로 소수자를 차별하거나 혐오하면 안 된다는 것. 내가 선심 써서 이해해주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학교에서 가르질 때, 위와 같은 청소년 성소수자의 간절한 호소는 멈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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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위한 무지개색 ⓒ 함께걸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지개색 학교가 단지 청소년 성소수자를 위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무지개색 학교를 만드는 것은 그들에게 해방을 선사하기 위한 일이 아니다.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비정상으로 낙인 찍힐까 두려워 스스로 검열하는 대신 보다 자유롭게 풍성한 나를 꿈꾸기 위한 길이다. 우리 모두의 희망 역시 무지개색 학교에 있다.

 

특성 이미지. ⓒ 띵동 

기획. 달래. 릴리슈슈. 상습범. 진

글. 진(bibigcom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