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노 엑소더스](박지은 /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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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지은

 

박지은은 이긴다

 

사실,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아메리카노 엑소더스>의 주요 소비전략은 여성 캐릭터였다. 귀여운 그림체로 무장한 마법소녀들은 각 화마다 숭배에 가까운 덕질을 유도했고, 변신이 풀린 소녀들의 본체나 변신하지 않는 성인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날엔 “쭉빵한 어머님” 같은, 매우 전형적인 여성 소비적 찬사도 터져 나왔다. 물론 그러한 모에적 소비들이 온전히 남성을 위한 것만은 아니었겠지만, 웹툰 판에 만연한 남성적 놀이문화는 그러한 전유를 충분히 가능케 했다.

 

하여 뭇 남성독자들의 마음을 다각도로 두들겨 오던 작가가 “김자연 성우 지지”의 최전선에 서서 여전히 뜻을 굽히고 있지 않는 건, 어떤 의미론 그들에게 배신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격렬했던 트위터 논쟁 이후, 휴재 중인 <아메리카노 엑소더스>의 별점은 반 토막 났고, 댓글엔 끝없이 “메갈 족발” 등의 비하 발언과 함께 작가를 웹툰 사회에서 묻어버리자는 운동과 선동이 판치고 있다. (실제로 네이버 본사에 항의를 넣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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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지은 트위터

 

지금껏 ‘소년소녀’ 서브컬처 소재를 어떤 불편함 없이 즐겨오던, 또 여성 섹슈얼리티의 소비라는 측면에선 그것을 지극히 남성적인 방식으로 전유해오던 독자들이다. 그랬던 그들이 “작가가 메갈!”을 부르짖으며 불매와 하차 요구를 넘어 ‘소아성애 코드’ ‘어린이 납치’ 등의 소재가 들어간 범죄적 만화라며 작품을 비난하는 꼴은 참으로, 참으로 진귀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사실은, 애초에 ‘철컹철컹 드립’이 상징하는 소아성애 코드를 아무 무리 없이 즐겨오던 건 이 웹툰 판의 독자들이었고, <아메리카노 엑소더스>는 아무리 봐도 로리타(혹은 쇼타)적 섹슈얼리티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 아니다. 반복하지만, 그걸 즐겨온 것도 그렇게 만들어온 것도 독자들 스스로일 뿐이다.

 

정말 그런 코드가 문제라고 느끼긴 했을까? 글쎄다. 이미 ‘키는 작지만 가슴은 큰’ 여성 캐릭터의 몸매나 속옷 따위를 강조하는 작품은 많았다. 정말로 ‘그런 코드’의 선정성을 내세우는 것들은 지금껏 놔두고, 최소한 그런 클리셰를 답습하지는 않았던 <아메리카노 엑소더스>를 타격하는 게 독자들의 지고한 윤리의식이란 말인가. 이건 윤리적 비판이 아니라 그냥 마녀사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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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콧_선동, 투철한 사명감이다 ..

 

열심히 운동 중인 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사실 작품은 예전부터 다분히 페미니즘적인 설정을 (무의식적으로나마) 차용하고 있었으며, 그런 의미에서 오히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윤리적인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다.

 

모계사회의 강력하고 아름다운 절대적 존재 ‘에스프레소’로부터 탈출하려는 여장남자 ‘아메리카노 빈즈’의 이야기는 충분히 파격적인 미러링이다. 생존을 위해 ‘남자 마법사’인 걸 들키지 않으려는 주인공, ‘부차적 존재’로서 여성 영주들에게 붙어있는 남편들을 그대로 현실로 데려와 보자. 그곳에 누가 존재하는가? 작품엔 심지어 “마법사들의 세계에서 마법을 못 쓰다니 남자들이 불쌍”하다는 댓글까지 있다. 성공적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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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존재, 에스프레소 ⓒ 박지은

 

아메리카노를 억압하는 힘은 다양하다. 무엇을 꾸미는지 알기도 힘든 그의 어머니 에스프레소, 그의 가문의 몰락을 바라는 중앙관리들, 개인적인 복수를 꿈꾸는 악역들과 마법사회의 주적인 황혼새벽회, 그리고 그 모두를 둘러싼, 어딘가 어긋나 있는 세계관 자체의 모순까지. 하여 주인공 아메리카노의 ‘엑소더스’는 서사의 완결 그 이상을 바라본다.

 

그 모든 중첩된 힘을 뚫어내야 가능한 ‘남성 주체 아메리카노’의 탈출은, 역사적으로 구성돼온 우리 사회의 성 권력구조를 관통하는 만화적 아이러니(미러링)로까지 가닿는다. 그리고, 아메리카노 빈즈의 “엑소더스”가 기어이 성공할 것임을 믿는 한 명의 애독자로서 나는 작가 박지은의 최종적 승리 또한 믿어 의심치 않는다. 1세기 가깝게 이어진 소년만화의 필수 명제가 무엇이겠나. “정의는 결국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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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는 결국 이긴다! ⓒ 박지은

 

#웹툰작가_지지_리뷰 프로젝트

기획. 달래, 샤미즈, 아레오, 인디피그

글. 인디피그(ghin280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