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이화인의 목소리입니다”

 

1일, 이화여대 학생들이 미래라이프 사태와 관련해서 자신들은 “외부의 어떤 세력과도 무관”하다고 밝혔다. 즉, 그들은 선을 그었다. 이에 관해 페이지 ‘Save Our Ewha’의 해당 게시물 댓글에서 많은 비판이 보인다. 같은 맥락으로 여러 논객의 일침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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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ave Our Ewha 

 

1.

그러나 연대를 거부한 것의 아쉬움은 뒤로 밀어두고, 이대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생각하는 게 먼저가 아닐까 싶다. 몇백 명의 당사자들이 함께 논의해서 결론을 내린 사항이다. 이 결정을 ‘탈정치의 정치성’도 모르는 바보들의 결정으로 폄훼하는 것은 쉽다. 이 결정이 나오기까지의 과정과 고민을 공감하는 것은 어렵다.

 

2.

사태에 접근하는 이화여대 학생들의 관점이 이 결정에 반영된 것 아닐까 생각한다. 이화여대 학생들은 ‘미래라이프대학’이라는 생뚱맞은 단과대가 졸속 통과되는 것을 두 눈 뜨고 지켜본 당사자다. 이 ‘미래라이프대학’과 관련해서 ‘학생과 소통하지 않은 대학을 규탄하는 것’이 핵심이다. ‘대학의 신자유주의화’, ‘기업화’를 논하기에 앞서, 당장 눈앞에 있는 것도 너무 중요하고 급하다.

 

대학의 신자유주의화와 기업화는 모든 대학이 고민해야 할 문제지만, ‘미래라이프대학 사태’라는 표면 자체는 이화여대의 문제다. ‘이건 우리 모두의 문제야!, 우리 함께 고민해야 해!’라는 말은 당사자의 절박함을 외면하는 처사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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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ave Our Ewha 

 

3.

외부 세력 개입론과 함께 이화여대 내부에서도 논의가 일어나고 있는 상태다. 학생회 입장에서든 집회 주최측 입장에서든 정리해야 하는 문제다. 학생들을 덜어내고 외부세력을 끌어들이는 것보다 학생들과 함께 가면서 ‘이대인’으로서 ‘이대 총장’에게 대화를 요청하는 것이 ‘미래라이프대학’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으로 느껴지지 않았을까. 학생들을 비판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왜 운동권에 진저리를 쳤는지, 여타 운동과 왜 함께 갈 수 없었는지, 그 판단의 이유도 생각해야 한다.

 

4.

공론화와 연대요청을 헷갈리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공론화와 연대요청은 같은 의미가 아니다. 공론화는 문제를 제기하는 과정이다. 연대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다. 둘을 칼 자르듯 구분하기 어려운 건 알지만, 구분하지 않으면 ‘그럼 페이스북은 왜 만들었냐’ 라는 비판이 나오게 된다. 때때로 그건 꽤나 감정적인 형태의 비판이다.

 

공론화 다음에 당사자가 연대요청을 하면 연대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결국, 연대를 둘러싼 갈등은 이 문제를 대학 모두가 겪는 신자유주의화로만 접근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문제다. 외부 세력 비개입을 선택한 이대생들에게 이 문제는 ‘대학의 신자유주의화’가 아니라 ‘미래라이프대학 설립과정에서 소통 부재’다. 그 별개의 영역에서 ‘연대 요청’은 (어떤 이유에서건) 일단 뒤로 밀렸고, 도와달라는 말도 안 했는데 도와주는 걸 우리는 오지랖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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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시스

 

 

5.

학교 다닐 때, 집회의 언저리에 기웃거리면서 느낀 점이 있다. 큰 담론으로 이끌고 가는 싸움이 더 이상 동원력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사람들은 보다 구체적인 이슈에 공감하고 문제의식을 갖는다.

 

‘신자유주의’가 뭔데? 라고 했을 때 한 문장으로 대답할 수 있는 사람? 그 실체가 뭔지 말할 수 있는 사람? 희박하다. ‘신자유주의’라는 담론적 접근보다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문제들을 ‘당사자’와 ‘연대를 요청받은 연대인’이 함께 상대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 문제 해결 방법은 아닐까.

 

문제해결 과정에서 ‘신자유주의’를 문제의 원인으로 인식하는 것과, ‘신자유주의’를 전제하고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 ‘반 신자유주의 전선’으로 연대하고, 접근하라 요청하는 것은 명백히 다르다.

 

[이화 梨花] 

기획. 이설, 이켠켠, 인디피그, 참새

글. 참새(gooook@naver.com)

편집. 인디피그(ghin280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