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 ‘청년수당’ 정책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하지만 ‘청년’과 관련된 이슈가 대개 그렇듯, 청년수당 논란에도 청년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청년세대의 삶은 쉽게 함부로 말해져서는 안 된다. 고함20은 청년수당 정책을 둘러싼 서울시와 보건복지부의 갈등, 논란이 소비되는 방식 등을 당사자의 목소리로 말한다.

 

서울시의 청년활동지원사업(청년수당)은 확실히 이슈다. 언론은 끊임없이 정책을 둘러싼 논란을 보도하고 있다. 12일엔 고용노동부가 내놓은 ‘취업성공패키지’ 사업이 서울시의 청년수당과 비슷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며 논쟁이 심화되는 모양새다. 하지만 그 치열한 말들 속에 정책의 상세한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취업 못하는 애들한테 돈을 준다” 정도가 청년수당을 말하는(주로 비판하는) 이들이 가진 구체적 정보다.

 

‘박원순’을 지우고 ‘청년’을 써넣자

 

청년수당이 이슈가 된 것엔 그 구체적 내용보다도 ‘박원순’이라는 이름이 땔감 역할을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정부와 꾸준히 대립각을 세워온 지방자치단체의 장이자 야권의 대권 후보로 호명되는 인물이다. 어떤 이들은 “역시 박원순”이라며 청년수당에 찬성하고, 한쪽에선 “박원순이 또”라며 반대하고 있는 것은 그래서다. 게다가 4일, 보건복지부가 ‘직권취소’라는 강한 브레이크를 걸면서 논란은 “박원순”에서 “박원순 대 중앙정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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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수당은 정치이슈가 됐다

 

그래서 청년수당을 향해 쏟아지는 비판은 “박원순은 세금으로 인기 챙기고” “청년들은 ‘노오력’ 없이 돈만 받는다”가 된다. 청년은 쏙 빠진 채 진행되는 포퓰리즘과 도덕적 해이라는 비판들은 우습다. 정치, 그 가운데서도 선거와 표심을 논할 때 청년세대는 언제나 배제되거나(“투표도 안 하는 젊은 애들 신경을 왜 쓰나”) 계몽해야 할(“그러니까 젊은 애들이 좀 진보를 찍어주고 그래야지”) 대상이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청년의 표가 정치권의 주요한 관심사였던 적이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청년을 노린 정치적 수”라는 비판 자체가 오히려 청년을 볼모로 한 정치적 의견 표명이다. 도덕적 해이에 대한 ‘우려’ 역시 마찬가지다. 1차 대상자는 지원자의 미취업기간, 가구 소득, 직접 작성한 활동계획서 등을 바탕으로 선정됐다. 제대로 된 구직활동을 하기 위해 월 50만 원이 절실한 이들이 수당을 받았다고 해서 구직활동에 게을러질까? 도덕적 해이는 ‘우려’로 포장된 일차원적인 비판이자 “우리 때는”으로 시작하는 청년을 향한 ‘노오력’의 강조에 불과하다.

 

청년이 말할 수 없는 청년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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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정책의 핵심을 피해가는 현재의 상황은, 당사자인 청년에게조차 정책을 이해할 기회를 좀처럼 주지 않는다. 청년수당이 청년의 가능성을 긍정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점, 정책이 성공적으로 시행돼 확대된다면 많은 청년 개인의 삶이 변할 수도 있다는 사실 등은 청년수당을 “박원순 대 정부”로만 소비하는 이들에겐 관심의 대상이 아닐 수 있겠지만, 당사자인 청년에겐 중요한 얘기다.

 

“박원순 대 중앙정부” 프레임에 더해, 1차 대상자가 3,000명으로 제한되었다는 사실은 비판하는 사람들에겐 청년들을 조각내는 좋은 무기가 된다. 서울시에 거주하지 않는 청년이나, 서울에 살더라도 지원 자격이 없는 청년, 혹은 자격이 되어 지원했지만 탈락한 청년들이 청년수당을 나와는 상관없는 ‘남일’로, 그리하여 “특혜”로 보게 만드려는 것이다.

 

모든 쟁점을 떠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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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청년세대를 대상으로 한 정책이 거센 비판여론에 직면하고, 그것으로 모자라 정치공세에 이용되는 것은 사회에서 청년이 얼마나 만만한 존재인지를 짐작케 한다. 청년정책이 논란이 되는 과정에 당사자인 청년은 주요한 정치적 주체가 되기 힘들고, 비(非)당사자들의 불필요한 갑론을박만 도처에 널려있다. 결과적으로 “청년수당이 더 확대 시행되어야 한다”든지 “사실 청년수당은 청년의 삶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같은 논의로 나아가기 힘들다.

 

청년만 힘든 것도 아닌데 왜 청년수당을 챙겨줘야 하냐고? 비판 여론이 말하는 것(“중년도 힘든데 중년수당은 없냐”)과 달리 청년수당은 “청년만을 위한 정책”은 아니다. 사실 어떤 정책도 그렇진 않다. 청년세대의 자식을 둔 부모세대에게도, 청년세대의 경제활동으로 부양받아야 할 노년세대에게도 청년의 취업을 돕는 청년수당은 장기적으로 긍정적이다.

 

이 모든 사실에도 청년수당을 “박원순의 세금 퍼주기”라고 비난하고 싶다면, 그 정책이 왜 세금을 낭비하는 것인지, 청년에게 돈을 주는 것이 왜 ‘낭비’인지, 나아가 서울시로부터 50만 원을 지급받은 청년 3,000명이 그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들어야 한다. 청년 빠진 청년수당 논란이 공허할 수밖에 없음은 아주 당연하다.

 

글. 아레오(areoj@daum.net)

대표이미지. ⓒnews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