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과 ‘20대’에 대한 인상비평이 여기저기에서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에 [청년연구소]는 청년과 20대를 주제로 한 다양한 분야의 텍스트를 소개하려 합니다. 공부합시다!

 

중학교 2~3학년 때부터 서울에 있는 대학에 로망이 있었던 것 같아요. 대학문화, 서울 생활, 세련됨 같은 것을 말이죠. 늘 한국사회 주류나 ‘정상가족’에서 벗어나 있었던 상태였기 때문에. 대학에 가면 나도 구성원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대학 와서는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지만요. – 60p

 

청소년 시기, 대학은 ‘자유’의 상징처럼 보인다. 그러나 대학의 현실은 비용 부담과 소비다. 빚을 지고 입학을 하거나 빚지면서 대학을 다니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그리고 분명한 건, 빚은 갚아야 할 개인의 부담이다.

 

이번 [청년연구소]는 천주희의 논문 <대학생은 어떻게 채무자가 되는가?>를 다룬다. 대학생에게 채무자의 삶을 요구하는 사회와 채권자-채무자 관계에서 채무자는 어떻게 통치의 대상이 되는지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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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입학한 학생은 학자금 대출을 받으며 ‘채무자’가 된다 ⓒ뉴스타파

 

논문에서 저자는 빚지는 대학생을 ‘채무’와 ‘채권’의 관계로 해석하고 채무자인 학생을 ‘학생-채무자’라 부른다. 학자금 대출 후 ‘학생-채무자’는 항상 빚을 진 상태에 있게 된다. 비싼 등록금을 요구하는 대학과 학자금 대출 제도는 ‘학생-채무자’를 집단으로 양산하고, 미래의 불명확한 소득과 상환능력을 담보로 빚을 진 ‘학생-채무자’ 집단은 ‘잠재적 신용유의자’ 집단이 된다.

 

교육받을 권리 < 대출받을 의무 ?

 

대학은 한국 사회의 중심적인 곳 중 하나다. ‘정상’과 ‘평범’의 길을 걷기 위해 대학 졸업장은 수단이 된다.

 

인력 시장에 나왔는데 나는 너무 싸, 고졸이야. 그래서 껍데기가 너무 필요했어요. 그걸 보장해주는 공간이 대학 밖에 없는 거에요. 그런 공간들이 대학 말고 많다면, 대학 왜 가요. 학자금 대출 거의 생필품 수준이잖아요. 굳이 말하면 생활 빚이랄까  – 69p

 

사회는 대학을 나온 인재를 요구하기 때문에 노동시장 진입을 위해서 대학교육에 드는 비용은 사례자의 말처럼 국민에게 ‘생필품 수준’이다. 그런데도 ‘고등교육’은 공적 영역에서 부담되지 않는다. 대학에 가면 사회가 요구하는 노동시장에 필요한 기술을 얻을 수 있다는 이유로, 대학은 개인의 ‘선택’ 혹은 ‘기회’가 되고 ‘교육비’는 사회가 보장해야 하는 부분이 아닌 온전히 개인이 부담하는 ‘투자’영역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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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금 1000만 원 시대, 투자비용은 비싸고 대학진학률은 70%에 이르지만, 대학생에게 교육비라는 명목으로 마련된 사회제도는 장학금 제도와 학자금 대출 제도 두 가지다. 소수 몇 명만 차지할 수 있는 장학금 선발 경쟁에서 밀려나고 본인의 힘으로 등록금을 납부할 수 없는 학생은 대출을 선택하게 된다. 학자금 대출은 단박에 비싼 등록금이 마련되는 방편으로 여겨지고 부채는 자연스러워진다.

 

한국장학재단은 ‘고등교육 기회의 균등’을 실현하고 중·저소득층의 학비 부담을 덜기 위해 설립됐다. 하지만 ‘교육비’라는 투자는 결국 개인이 갚아나가야 할 몫으로 이자와 함께 돌아온다. 이미 빚을 갚아야 하는 의무가 소득이 불충분한 가계와 학생 개인의 빈곤을 심화시킨다. 학생과 가정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또는 ‘모두가 다 가는 대학’이기 때문에 가게 된 대학에서 빚을 지는 상황에 처한다.

 

 

‘을’, 채무자

 

채권자는 재단 혹은 기관이고 채무자는 개인 소비자다. 힘의 정도가 대등하지 않다. 채무자를 위한 보호나 안전망이 필요하지만, 비용과 상환능력은 개인의 의무와 능력으로 치부된다. 학자금 대출제도는 이제 막 성인이라는 독립된 주체가 된 학생을 ‘채무자’ 신분으로 채권자와의 계약 관계에 귀속시킨다.

 

단 며칠 늦었나? ‘연체’라는 단어를 쓰더라구요. 뭔가 추심을 당하는 게 무서운 일이고 힘든 일이다라고 생각했어요. -45p

 

빌릴 때는 금융 ‘고객’, 금융 ‘소비자’, ‘투자자’라는 주체가 되지만 상환을 할 때가 도래하면 “책임감 있게 빚을 상환하라”는 채권기관의 ‘명령’이 작동한다. 채권자-채무자 관계에서 빚을 진 대학생들은 채무자라는 피지배적 위치로 배치된다. 연체될 경우에는 추심과 독촉이 시작된다. 

 

부채를 잘 관리하고 ‘신용’있는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수입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졸업 후 취업을 준비 하는 경우, 사회초년생의 경우에는 연체부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소득이 없고 상환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빚이 있다는 경각심과 연체에 대한 독촉은 자연스레 소비에 대한 자기 단속으로 이어진다. 빚에 대한 부담이 일상의 기준을 돈과 소비에 두게 하고, 개인은 자신의 소득 정도를 스스로 낙인찍는다. 진로를 정할 때도 좋아하는 것이 아닌 돈을 벌기에 더 잘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게 되고 타인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자존감의 훼손과 고립에 대한 두려움, 상환에 대한 무력감 등이 동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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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기준 학자금 잔액이 12조를 넘었고

2014년 기준 취업후 상환 학자금 체납액은 84억이 넘었다. ⓒ조선비즈

 

반대로 상환이 성실함의 지표가 되기도 한다. 빚을 갚아야만 ‘신용’ 있는 사람이 된다.

 

대출문자가 올 때마다 ‘또 한 달이 지났구나’라는 생각과 ‘정말 열심히 살아야겠다’라는 마음을 먹게 해주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런지 저한테 학자금 대출은 그렇게 크게 나쁜 의미로는 다가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 104p.

 

노암촘스키는 말했다.

“빚의 굴레에 빠지게 하면 그들은 생각할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없게 된다. 등록금 인상은 일종의 훈육 기술인 것이고, 학생이 졸업할 무렵에 그들은 빚에 짓눌릴 뿐 아니라 규율 문화를 내면화하게 된다”

 

상환에 대한 부담이나 상환에 대한 뿌듯함이나, 학생에게 채권과 채무의 관계에서 을인 채무자의 의무만 강요되는 대출제도와 금융권의 규율 문화가 내면화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학자금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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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학자금 대출로 비싼 등록금과 취업난을 견디는 대학생들은 ‘학자금 푸어’ ‘등골 브레이커’ ‘청년실신’ 등 위기의 집단으로 담론화되고 있다. 대학을 가라고 부추긴 사회에서 대출제도는 접근하기 쉽다. 상환능력이 검증된 개인만 대출을 받을 수 있어야 하지만 학생은 ‘공부’하는 학생이라는 이유로 대출을 쉽게 받을 수 있다.

 

고등교육비용은 개인의 부채로 감당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사회 재생산을 위한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 사회가 마땅히 책임져야 하는 비용이고 공적 영역의 빚이다. 개인의 투자보다는 사회 전체의 투자로 인식되어야 한다. 학자금 대출에 대한 문제 제기는 개인의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의 차원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 20대가 빚지고 시작하는 채무자 신분이 아닌 보통의 개인으로서 사회에 진출할 수 있는 구조가 사회에 필요하다. 

 

 

글. 김연희(injournaly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