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과 역경을 헤쳐 나가며 목표를 이루고 성공하는 주인공. 익숙한 클리셰지만, 우리는 매번 그 클리셰의 진정성에 설득되고 감동한다. 리우올림픽 펜싱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박상영의 이야기가 그랬다. TV를 통해 수많은 스포츠에서의 승리와 우승 장면을 보아왔지만, 정말 말 그대로 ‘각본 없는 드라마’였던 대역전극에는 열광하지 않기가 더 힘들었다. 15점을 내야 승리하는 게임에서 10-14로 지고 있던 박상영의 금메달을 예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할 수 있다!”라는 대책 없는 긍정의 언어도, 태극기와 애국가라는 민족주의적인 기호들도, 승자에게만 가치를 부여하는 성적지상주의까지도, 밀려오는 감동 앞에서는 잠시 잊힌다. 잠깐의 환각제에 불과할지라도, 우리는 가슴을 찌릿하게 만드는 감동을 원하고 찾아서 TV를 켜고, 영화를 보고, 책을 읽는다. 그 이면에서 파악해야 할 비판적 관점들을 잠시 의식적으로 내려놓고서라도, 감성을 충만하게 만드는 그러한 경험 속으로 우리는 스스로 들어가고 싶어 하는 것이다. 우리의 몰입을 방해하고, 감동적인 판타지를 깨뜨리는 ‘이상한 시도’에 화가 나는 것은 따라서 당연한 일이다.

 

박상영 선수의 스토리를 ‘써먹는’ 기성 언론의 방식

 

<중앙일보>는 8월 24일 리우올림픽 특집 기사로 박상영 선수를 인터뷰했다. 기사의 제목은 “재능 1% 난 흙수저, 1만 시간 훈련으로 한계 넘었다.” <중앙일보>의 이 기사, 그리고 이 기사가 대표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박상영 선수를 통해서 ‘청년’들을 가르쳐 보고자 혹은 응원해 보고자 하는 어설픈 시도들은, 우리가 박상영 선수의 땀방울과 ‘할 수 있다’는 되뇜, 승리의 포효에서 받았던 감동을 순식간에 앗아가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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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

 

<중앙일보>의 기사에서 ‘기적의 펜서’ 박상영은 ‘체념 세대’인 젊은 층, “열심히 해도 잘 풀리지 않는, 입시와 취업 준비에 지쳐 있는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요즘 흙수저라는 말을 많이 하더라.”, “안 된다는 기준은 자신이 만든 것이다. 이번에 안 되면 다음이 있다. 또 그다음이 있다. 한계를 정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기회는 온다.”

 

기자는 박상영이 ‘3년 동안 6시간만 자면서 깨어있는 시간 내내 훈련만 했다’고 이야기한 정보를 가지고 오면서 ‘1만 시간 동안 집중하고 노력하면 장인의 경지에 오른다’는 말콤 글래드웰의 책 <아웃라이어>를 기사에 주요하게 언급한다. 마치 ‘성공한’ 박상영이 젊은 층 친구들에게 ‘당신도 1만 시간 동안 노력하고 포기하지 말라’고 조언하는 것처럼 읽히도록 기사의 구조가 짜였다.

 

그러나 기사에서 말하고 있는 사람은 단연컨대 박상영 선수가 아니다. 인터뷰를 진행한 <중앙일보>의 박소영 기자 혹은 ‘이러이러한 주제’로 인터뷰 기사의 각을 잡으라고 지시를 내린 <중앙일보> 데스크, 나아가서는 펜싱 대역전극의 감동을 “너도 박상영처럼 할 수 있다!”라는 말로 바꾸어 청년들에게, ‘아들딸’에게 말하고 싶은 기성의 욕망이 기사에 드러나지 않은 이 기사의 실제 화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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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는 때때로 ‘답정너’가 된다

 

인터뷰는 결코 인터뷰 대상(interviewee)을 투명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인터뷰어의 판단과 질문지, 목적과 의도에 따라 인터뷰 기사의 결과는 수천, 수만 가지로 달라질 수 있다. 기사 본문에서 드러난 바로 보건대, 박상영 선수는 “3년 동안 6시간 자고 훈련했다”고만 말했지 ‘1만 시간의 법칙’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박상영 선수가 갑자기 기자를 만나자마자 “요즘 흙수저라는 말을 많이 쓰더라”고 이야기했을까? 분명히 기사에 드러나지 않은, 기자가 ‘요즘 젊은 다른 친구들’ 혹은 ‘헬조선 담론’에 관해 떠올리게 하는 말을 박상영 선수에게 던진 맥락이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전 국민이 박상영 선수의 역전극에 환호했는데, “박상영에게 열렬한 환호를 보내는 연령층은 대부분 10~20대”라고 단정해 버리는 기사의 서술도 편협하고 다분히 의도적이다.

 

누가 박상영을 ‘젊은 꼰대’로 몰아가는가

 

인터뷰이와 인터뷰어, 두 사람의 관점이 상호적으로 교류되면서 조화될 때 가장 훌륭하고 흥미로운 인터뷰 기사가 나온다. 인터뷰어가 인터뷰이에게 자신의 관점을 강요하고 자신이 원하는 말을 듣기 위해서 판을 짜 놓는 것은 인터뷰를 망치는 지름길이라고, 인터뷰 기사 작성 강의의 첫머리에서부터 배운다. 이러한 맥락에서 <중앙일보>의 박상영 선수 인터뷰는 ‘망한 인터뷰’다. 친구들과는 이런 대화를 “절대 안 한다”는 박상영 선수를 마치 ‘청년들의 멘토’를 자처하면서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말하는 김난도 교수처럼 만든 것이 <중앙일보>의 기사가 한 역할이다.

 

이렇게 스포츠에서 발생한 감동을 청년들에게 특수한 행동을 부과하기 위한 방식으로 스토리텔링하는 언론의 행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 때, 언론들은 김연아, 이상화, 모태범, 이승훈 선수 등 모든 젊은 선수를 묶어 ‘G세대’라 칭하며 ‘이 선수들처럼 포기하지 말고 세계를 누비라’고 청년들을 가르치려 들었던 전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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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정부는 이런 이미지까지 만들었다 ⓒ아하경제(기획재정부 발간 청소년경제신문)

 

우리는 박상영 선수를 통해서 받았던 감동이나 전율을 잃고 싶지 않다. 활기차고 에너지 넘치는 플레이를 보면서 박상영 선수의 팬이 되었던 우리는, 그를 하나의 ‘젊은 꼰대’, ‘잘 나가는 아무말꾼’으로 잃고 싶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글을 써서 <중앙일보>의 기사 그리고 박상영 선수를 ‘청년들의 멘토’나 ‘청년들에게 들려주어야 할 성공담’으로 만들어 소비하고자 하는 모든 시도에 저항하는 것이다. (퍼킹! 박상영 못 잃어!)

 

글. 페르마타(fermata@goham20.com)

특성이미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