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본인이 될 수 있다고 되는 게 아니라 독자들이 작가라고 불러 주었을 때 비로소 작가가 되는 겁니다!”

 

어느 웹툰 작가 지망생(이하 웹망생)의 일침이다. 본 기획의 시발점이기도 한 웹툰 작가들의 김자연 성우 지지를 두고 웹망생들은 철저히 그들을 분리했다. 자신은 메갈리아를 하는 작가가 아니며 메밍아웃(‘나는 메갈이다’ 해시태그 운동에 동참)한 작가들은 반성하라는 내용이 주인 만화를, 비교적 자신들의 성향과 비슷한 사이트에 게시하며 호응을 받았다.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한 여성이 사회적으로 어떤 불이익을 받는지에 대한 논의(혹은 예의 ‘티셔츠’에 대한 가치 판단을 두고 벌어진 논의)에서 어느덧 문제는 작가 대 독자의 싸움으로 전이되어 있었다. 혹자는 페미니즘은 일절 언급도 않은 채 “작가가 독자들과 기 싸움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논란이 퇴색되는 사이, 페미니즘이란 단어는 지워지고 창작의 자유마저 무시당했다.

 
52365-1

작가는 본인이 될 수 있다고 되는 게 아니라!!! ⓒ 민돌

 

창작자는 정말 갑질을 했나? 

 

웹망생들은 ‘이런 말 하긴 조심스럽지만’ 이라고 운을 뗀 뒤 누군가에겐 사이다일지 모르나 결국 훈계조의 말을 내뱉은 만화를 그렸다. 작가들이 (귀하고 귀하신) 독자들을 무시하고, 배려하지 않았다는 거다. 그러나 설득을 위한 색다른 구성도 찾아볼 수 없었다. 연극에서 방백을 하듯, 그들은 혼자 떠들기만 할 뿐 자신들의 가치관을 전달하기 위한 최소한의 플롯 구상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하고 싶은 말을 드러내기 위해 만화라는 틀만 이용한 거로 보인다.

 

헌데 여기서 웹망생들이 웹툰 독자로 상정한 대상은 가부장제를 옹호하는 남성으로 축소된다. 독자에게 절을 하거나 독자님들 덕분에 분에 넘치게 작가로 살고 있다며 굽신거리지만, 한편에서 불편함을 느낄 독자들은 전혀 배려하지 않았다. 이 사건의 본질은 아니지만 어쨌든 넥슨 사태를 성별 싸움으로 몰아간 이들이 많았다. 백 보 양보해 성별 싸움이었다고 치면 작가들을 디스한 웹망생 역시 한쪽 성별의 입장, 그러니까 남성 중심적 입장에 서서 다른 한쪽의 독자들을 불편하게 한 셈이다. 이 모순이 정의로 포장된 과정은 간단하다. 불편함을 토로하는 여성들은 ‘메갈충’으로 몰아버리면 그만이었다.

 

웹툰 작가들이 극단적인 단어를 쓰며 멘션을 올린 것도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악플에 대응하기 위한 거였다는 사실, 메갈리아4 티셔츠의 수익금 사용에 대한 사실 등 그 어떤 맥락도 알아보지 않은 채 작가들을 비난하며 실상 자기 자신을 치켜세우는 만화를 그린 셈이다. 오로지 “독자님들한테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라는 말만 했다. 그리고 그를 통해 호응을 얻었다.

 

결국 이 사건에서 웹툰 작가들은, 누군가를 지지하는 것도, 자신의 신념을 드러내는 것도, 도를 넘은 인신공격에 화를 내며 대응하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에게는 자아가 없었다. 너희들은 자아를 버리고 우리가 소비했던 만화 캐릭터만 내보내라는 외침이나 다름없었다.

 

웹망생들의 표현에 의하면 이 모든 부당함 역시 ‘독자들의 덕’으로 작가가 된 것이니 감수해야 하는 일이 된다. 노력의 결과(여기서 노력은 작화부터 시장 진출까지를 모두 아우른다)로 얻은 직함마저 ‘독자’라는 다수에 의해 운 좋게 얻은 거라며 평가절하한다. 물론 독자의 관심이야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몇몇 독자들은 소비 행위를 ‘시혜’로 포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작가들이 무슨 갑질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맥락을 건너뛰면 갑질이라는 피해망상에 빠진다

 

어떤 웹망생은 ‘만화가는 그림으로 말해야 한다’, ‘그들이 지지하는 신념이 얼마나 대단한지 몰라도’ 라며 프로페셔널을 자처했다. 작품과 개인 SNS 글을 구분하지 못하는 태도다. 차별금지법을 외치는 십 대들에게 ‘너희들의 본분은 공부’라 하는 말이나 파업에 들어간 노동자들에게 ‘너희가 해야 할 건 일’인데 이렇게 회사에 피해를 주면 어떡하냐는 말 따위엔 다들 어떤 반응으로 일관했을지 궁금하다. 직업과 자신의 권리를 말하는 운동은 구분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기본적인 사실조차 무시한 사람들은 해당 작가들의 작품에 별점 테러나 악플을 달며 피해를 끼쳤다.

 

52365-2

ⓒ 이자혜 작가 트위터

 

그중에는 메갈리아4 티셔츠 수익금으로 마인드c의 피고소인들에게 합의금을 지원한다는 유언비어도 섞여 있었다(관련 기사). 허위사실까지 유포하더니 종국에는 예스컷 운동을 하기에 이른다. 노컷 운동을 통해 작가들에게 창작의 자유를 안겨준 주체가 독자인데, 그런 독자를 기만했으니 다시 그 자유를 빼앗겠다는 얘기였다. 이 과정에서도 독자의 범위에 페미니스트는 없었다(관련 기사). 아니 어쩌면 웹툰 독자들이라는 범위에 페미니스트는 없었다. Girls do not need a prince라는 문장은 온갖 유언비어와 테러, 해고 대상이 되지만 뷰티풀 군바리 같은 웹툰은 건전한 비판의 목소리조차 ‘프로 불편러’라는 말로 지워진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52365-3

루머다 ⓒ 네이버 웹툰

 

끊임없이 “페미니스트는 없다”고 말하는 것 같은 별점 테러, 예스컷 운동 등을 보고 있자면 ‘그림이나 그려야 할 만화가가 독자들에게 SNS로 갑질이나 하고 있다’는 말은 신빙성이 없다. 오히려 개인의 가치관마저 부정당한 작가들이 만화를 그리는 것조차 방해받았다는 말이 더 어울린다.

 

결국 독자가 갑이다

 

여타 문화콘텐츠와 달리 웹툰은 독자의 피드백을 직격으로 받을 수 있는 플랫폼이다. 다음 내용을 스포일러 하는 독자도 있고 스포일러를 알고 “왜 스토리를 그딴식으로 만드냐”며 항의하는 독자도 있다. 스스로 줄거리를 읊으며 이렇게 쓰지 않으면 다시는 안 볼거리고 투정을 부리는 독자도 부지기수다. 이런 상황인 만큼, 메갈리아를 (혹은 메갈리아4 티셔츠만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인신공격과 검열을 당하는 것도 예견된 일이었을지 모른다.

 

창작의 자유는 거창하지 않다. 작품 외적인 일로 작품을 들먹이며 무리한 피드백 요구를 하거나, 인신공격, 작품활동을 방해하는 행동이 창작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동이다. 소수자를 비하하며 인류 보편 정서에 반하는 내용마저 아무 비판 없이 용인해야 한다는 게 아니다. (메갈리아를 옹호하는 뉘앙스의 기사는 외신에서도 이미 여러 번 다뤄졌다. 인류 ‘보편’ 정서에 반하는 건 오히려 아직도 메갈리아와 페미니즘을 분리하는 시선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 ‘거창하지 않은’ 것 중 지켜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예전에도 지금도, 웹툰계에서 작가는 갑의 위치였던 적이 없다.

 

고함20은 가짜 페미니스트라는 비난을 감수한 작가들의 작품을 재조명했다. 작품 외적인 사생활로 인해 그들의 작품이 평가절하되는 상황에서, 그들이 갖고 있던 페미니즘적 가치관이 어떤 식으로 작품에 구현됐는지 분석했다. 작가들이 x 되지 않길 바랐고, 앞으로 페미니즘을 선언하는 모든 사람이 x 되지 않길 바란다. 기사화하지 못한 작가들이 눈에 밟힌다. 하지만 우리가 다룬 작가들과 작품이 다시 정상적인 평가를 받고 대중 앞에 당당해질 때, 우리가 미처 다루지 못한 작가들도 명예를 회복하는 날이 올 것이다.

 

글. 샤미즈(ndhhdm9019@naver.com)

 

[#웹툰작가_지지_리뷰]

기획. 달래, 샤미즈, 아레오, 인디피그

글. 샤미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