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LLJOY. 흥을 깨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여성혐오와 반성평등적 컨텐츠는 세상에 널리고 널렸다. 그 흥을 깨지 않으면 계속해서 번식할 것이다. 페미니즘은 KILLJOY여야 한다. 우리 모두가 단 한 번도 성평등한 세상을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아이템은 무궁무진하다. 앞으로 [킬-조이] 연재를 통해 마음껏 고함20이 느낀 불편함을 말하고 설치며 흥을 깰 예정이다.

 

쇼미더머니와 언프리티 랩스타. 한국 힙합 프로그램의 대표쯤으로 얘기되지만, 한편으론 힙합이 아닌 ‘예능 쇼’에 가깝다는 비판을 듣기도 한다. 언프리티 랩스타는 출연진끼리 경쟁해 트랙을 차지하고 각각의 트랙을 모아 컴필레이션 앨범을 제작하는 프로그램이다. 가까이서 보면 여성 래퍼들의 랩 대결이고 멀리서 보면 하나의 음반을 제작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3시즌째를 이어오는 지금, 애초의 의미는 퇴색된 지 오래다.

 

섹시함은 여성의 특권인가?

 

시즌3 세 번째 프로듀서는 산이(San-e)였다. 8월 26일 방송분에서, 산이는 sticky 라는 제목의 비트를 선보였다. 산이는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남녀가 성적 어필을 하는 노래임을 못 박고 이미 훅 가사도 정해 온 상태였다. “Sticky 그의 눈빛이 끈적거려” 하는 가사와 어울리는 랩 메이킹. 명확하게 섹시 컨셉을 가리키고 있었다.

 

섹시 코드의 랩이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문제는 남자 래퍼가 심사를 명목으로 앉아있고, 그쪽에서 먼저 섹시 컨셉을 요구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들(남자들) 앞에서 여자 래퍼들이 서로 누가 더 끈적하고 섹시한지 퍼포먼스를 하는 모습 어디에서도 여성 래퍼의 당당함이나 걸크러쉬 따위는 찾을 수 없었다는 점이다. 출연자인 육지담은 섹스어필이 여성 래퍼들만 할 수 있는 장점이 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여자 래퍼들의 ‘특권’이라기보다 남자 래퍼라면 겪을 필요도 없었을 ‘수난’에 가까웠다. 남성 래퍼들이 평가하는 섹시함. 어차피 대부분의 가사가 무음 처리되는 방송 현실. 그래서 남는 거라곤 섹시한 몸짓밖에 없어 시청자들이 판단할 거리는 여성의 몸이 되는 결과. 이 모든 건 주체가 아닌 객체로서의 섹시함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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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을 딴 나다의 퍼포먼스 ⓒMnet

 

섹시함이 여성의 특권이라는 말은 폭력적으로 들리기까지 한다. 그들의 직업은 래퍼다. 그런데 섹시해야 한다. 그것도 오빠(산이, YDG)가 허락한 섹시함이다. 여성들에게 ‘직업적 섹시함’은 더 이상 선택사항이 아니다. 프로그램 출연 여성들이 그런 컨셉을 즐긴다 해서 문제가 되지 않는 게 아니다. 간호사, 스튜어디스 등 여성 비율이 높은 직업군이 얼마나 성적으로 대상화되고 성희롱에 시달리는지 뻔히 알면서, 여성이라면 섹시함을 갖추는 게 미덕이라는 듯 연출할 필요는 없었다.

 

미성년자의 몸에 가해지는 이중 잣대

 

아이유의 제제 사건을 기억한다. 그 당시, 소아성애가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설파하는 말과 글은 넘쳐났다. 그로부터 1년이 채 되지 않았건만, ‘걸크러쉬’를 내세운 여성 힙합프로그램에서 미성년자(전소연)에게 끈적한 가사와 끈적한 춤을 추게 했다. 국민 여동생에서 스스로 “climb up me” 를 외치며 성적 주체가 됐던 아이유는 뭇매를 맞았다. 하지만 “끈적한 게 뭔데요?”라고 묻는 미성년자가 마지못해 섹시 컨셉을 따라가는 반전은 영리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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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net

 

십 대는 성적으로 무지해야 한다’는 신화는, 다른 한 편에서 십 대를 성적 대상화 하려는 욕구와 맞물려 더욱 교묘하고 음흉하게 소비된다. ‘산삼보다 고삼’ 이라는 말을 유머랍시고 하며, 교복 패티시가 난무한다. 그러면서 성적 자기결정권을 주장하는 십 대 소녀들에게는 ‘룸나무’라 칭한다. 이것은 십 대의 몸을 둘러싼 이중성이라는 말로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상식적으로 열아홉 살의 전소연이, 산이가 요구한 컨셉이 어떤 컨셉인지 몰랐을 리 없다. 또래 친구들보다 더 여성 대상화의 직업군에 가까이가 있는 아이돌 래퍼가 그런 순진하고 무해한 연기를 하는 이유는 하나다. 성적 주체로 나설 수 없는 존재인 동시에 성적 대상화의 가학 심을 부추기는 ‘소녀’에 대한 수요를 맞추기 위해서.

 

래퍼입니다, 기쁨조가 아닙니다

 

산이와 YDG앞에서 섹시 퍼포먼스를 할 기회는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쇼미더머니 5에 출연한 남성 래퍼들 몇몇과 경연을 해 상위권의 성적을 거둬야 기회를 얻는다. 그것을 기회라고 하기엔 너무 가학적이고 멋도 없지만, 그들 입장에서는 산이 같은 유명 래퍼와 콜라보레이션을 한다는 것이 큰 의미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기회를 획득하려는 이 과정에서도 쓸데없는 가학행위는 계속된다. 애초부터 여성 래퍼는 남성 래퍼들을 이기기 힘들다는 전제를, 연출자, 출연자, 시청자 모두가 안고 가는 상황이다.

 

평소 자신감에 차 있던 출연자들은 쇼미5 래퍼들의 이름이 거론되자 “못 이긴다”면서 약한 모습을 보인다. 여기에, 언프리티 랩스타가 쇼미더머니보다 수준이 낮다는 시청자들의 지적까지 가해진다. 카메라는 여성 래퍼들이 리허설을 할 때 하품하는 남성 래퍼들의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남성 래퍼인 킬라그램이 언프리티 랩스타 출연자들의 무대를 비웃으며 ‘위문공연’이라고 비아냥대는 모습도 아무런 여과 없이 방송에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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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래퍼의 무대를 위문공연이라고 비하하는 킬라그램 ⓒ Mnet

 

언프리티 랩스타의 출연자들은 이런 대우를 받는다. ‘프리티 언 랩스타’ 라는 비아냥을 들으며, 쇼미 참가자들과 비교당하고, 오로지 남자 래퍼들에게만 평가받으며, 자신들이 남자 래퍼들보다 아래에 있음을 끊임없이 확인받는다. 언프리티 랩스타1에 출연했던 여성 래퍼 타이미는 자신의 SNS를 통해 “평등을 논하기 전에 실력부터 키워”라는 말로 언프리티 랩스타3 출연자들에게 ‘일침’을 가했다. 노오력하면 평등해진다는 소리다. 하지만 입으로 그런 랩을 내뱉기 전에 국내 힙합 문화를 생각해 보면, 그게 얼마나 터무니없는 소리인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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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미의 랩은 단순히 ‘실력이 없다’는 비판뿐만 아니라 여성의 평등이 실력이 밑바탕이 되어야 이루어진다는 논조 때문에 문제가 됐다. 또한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하면서 성별에 상관없는 race를 원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 기계적 중립에 지나지 않는다 ⓒ 타이미 페이스북 캡처

 

힙합 커뮤니티의 남성 유저들은 공공연하게 여성혐오적 글을 올리며 힙합을 ‘듣는’ 것조차 남자들의 영역인 양 여성 리스너들에게 맨스플레인을 하고 “잘 모르면 닥쳐”라는 말로 정당한 비판마저 무시했다. 수용자의 네트워크도 이 지경인데, 래퍼들의 세계에서 여성들이 차지하는 비중이야 말할 필요가 있을까.

 

아직도 힙합이라고 하면 쌍욕을 내뱉고 디스하는 모습만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니 엠넷 표 힙합프로그램이 돈을 버는 것이다. 그렇게 험한 것으로 취급되어 온 힙합을, 한국 여성이 업으로 삼는다? 힘든 일이다. 리미 역시 한때 촉망받는 여성 래퍼였으나 거의 집단 언어성폭행 수준의 디스를 받은 뒤 오랜 시간 래퍼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게 현실이고, 힙합계의 유리천장이나 마찬가지다. 그래놓고 몇 안 남은 여성 래퍼들을 보며 “여자 래퍼들은 실력이 없다‘고 말한다.

 

남성 래퍼들에겐 쇼미더머니가 전부인데 여성 래퍼들은 쇼미에서 탈락해도 언프리티 랩스타 라는 기회가 있으니까 그 자체로 역차별이라는 지적도 난무한다. 하지만 여성 래퍼가 탑급으로 올라가기 힘든 구조, 래퍼들의 남녀비율 등을 생각하면 그건 혜택이 아니라 동아줄에 가깝다. 그것도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캣파이팅 시키는 썩은 동아줄.

 

그동안 힙합리스너들은 쇼미더머니와 언프리티 랩스타가 힙합답지 않다는 비판을 해왔다. 재밌는 부분은, 프로그램 내 여혐문제가 불거질 때는 “힙합은 원래 그렇다”며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다. 언프리티 랩스타는, 그중에서도 시즌3는, 아니 적어도 26일 방송분량만큼은 힙합다운 면모를 찾아볼 수 없었다. 이번에도 누군가 힙합 정신을 들먹이며 문제를 회피한다면, 그들이 말하는 힙합 정신이란 여성의 몸을 거치지 않고는 스토리텔링이 되지 않는 반쪽짜리라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글. 샤미즈(ndhhdm@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