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ning! ‘성’이 아닌 ‘폭력’에 NO를 외친다. [포르NO그래피]

 

젠더 권력, ‘포르노’

 

몰래카메라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기보다 차라리 얼굴을 가리라는, 그런 괴담 같은 이야기를 들어봤을 것이다. 그러나 몰카는 도시 괴담이 아니라 현존하는 사실이다. 대학교 여자화장실에 몰래카메라 탐지기가 설치된다든지, 펜션이나 모텔 등지에서 카메라가 발견된다든지 하는 일들이 연속해서 나타난다.

이런 도촬들이 ‘포르노’로 업로드되는 곳이 국내 최대의 성인 음란 사이트 ‘소라넷’이었다. 도촬뿐 아니라, 연인과의 성관계 영상이 보복이나 수익 목적으로 유출된 소위 리벤지 포르노들도 공공연하게 공유됐다. 음란물 사이트보단 범죄 사이트가 어울리는 말이겠다. 이 소라넷의 회원 수는 (놀랍게도) 100만 명이 넘었고, 무려 17년간 유지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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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본격적으로 시작된 ‘소라넷 폐지 청원’과 몰래카메라 문제 ⓒ 아바즈

범죄를 ‘(국산)야동’이란 이름의 ‘대중적 성인물’로 포장하고 유통해온 웹사이트 소라넷. 물론 영원하진 않았다. 15년 웹사이트 메갈리아 등장 이후 여성 대중들 사이 리벤지 포르노 소비 비판과 함께 소라넷 폐지 이슈가 본격적으로 떠오른 덕이다. 그 1여 년 만에 소라넷은 마침내 폐지됐다. 소라넷 폐지는 포르노, 그것도 무비판적으로 수용되고 범죄의 범주마저 정당화하던 ‘대중적 성인물’로서의 포르노들을 뭍 밑에서 걷어 올린 계기가 됐다.

 

헌데 놀라운 것은 이렇게 범대중적으로 유효한 ‘범죄 포르노에 대한 공격’이 우리 사회에선 처음이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소라넷이 유통한 수많은 ‘국산 야동’들은 다른 수많은 P2P 사이트들로 퍼져나갔고, “야동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는 한국 사회에서 그것들은 훌륭한 (주로 남성의) ‘성욕 해소용 오락물’로 현재까지도 음지를 지키고 있다. 그리고 이 무비판적 향유가 대중적이라는 점에서 여성들이 일상에서 느낄 포르노적 위협도 보편적인 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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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동 순재’ 같은 유행어는 포르노가 얼마나 농담처럼 소비돼왔는지를 보여준다 ⓒ MBC 

우리는 여기서 적어도 두 가지의 ‘위협’에 대해 집고가려 한다. 첫째는 공공장소에서의, 혹은 성관계 시의 도촬이나 개인 성생활의 유출 등 직접적인 범죄 가능성이다. 대중이 그것을 소비하고, 문화는 그 소비를 정당화하며, 제도는 그 처벌에 관심이 없다. 즉, 사회가 공모하여 여성을 ‘언제든 포르노 영상의 희생자가 될 수 있으며, 그에 저항하기도 힘든’ 상태로 몰아넣는다.

둘째는 좀 더 넓고 추상적인 범위의 문제로, ‘성욕 해소용 오락’이 범죄적 결과물(몰카나 유출 등)마저 정당화할 수 있게 만들어온 이 사회의 ‘여성혐오’적 섹슈얼리티다. ‘소라넷’ 향유는 단지 몇 명의 비윤리적 행위로 일축할 수 있는 성질의 현상이 아니다. ‘야동 유출’ 문제(범죄)가 언제나 제작과 유통 소비에 대한 성찰로 나아가지 못하고 피해자 책임론이나 여성의 성 문란의식 정도로 귀결돼왔다는 점에서 그것은 개인(여성)을 성욕 해소용 도구로 바라보(게 하)는 젠더 권력의 맥락으로까지 가닿는다.

 

“앙 기모띠”부터 “건전한 야동”까지, 포르노 밖의 포르노들

 

결국, 포르노 내의 ‘남성 주체와 여성 객체’라는 권력관계가 영상 바깥에까지 만연해 있다는 말이다. 가령 ‘앙기모띠’가 유행어로 번진 이유를 생각해 보자. 누가 언제 어떻게 썼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당연히 재미있기 때문이다. 왜 재미있을까? 모두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기본 맥락이 있다. 일본 여자 AV 배우가 콧소리 섞인 말투로 내뱉는 대사. 직접 AV를 봤든, 간접적으로 희화화된 이야기들을 들었든 그 경험이 공통적으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포르노 경험’을 통한 웃음의 합의가 성인뿐 아니라 중학생, 초등학생까지 퍼져있다. 웃고 넘어가기 전에 그 속의 문제적 지점을 짚어보자. 개그의 뿌리가 가진 이미지는 분명 포르노다. 그것도 남성 중심적 섹슈얼리티가 집중된 이미지.

섹스의 주체인 남자의 ‘공격’과 그에 신음하는 ‘척’하는 여자를 통해 화면 밖 남자 고객들의 성욕을 만족시키는 건 일본 AV의 전형이다. (적어도 제작과 연출 방식, 그리고 시장 상황을 볼 때 아직까지 포르노는 남성의 영역에 있다) ‘앙기모띠’가 웃길 수 있는 것도 그러한 포르노의 전유물을 오픈된 공간에서 재현하는 전복적 쾌감에 있다. 바로 그 쾌감의 순간에 포르노 내부의 젠더 권력이 현실에서 재현되고, 답습된다. 포르노의 무비판적 일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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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팩트

다른 예시도 차고 넘친다. “남자들에게 건전한 야동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생각”이라던 한동철 PD(프로듀스 101)의 인터뷰도 ‘포르노 밖 포르노’의 좋은 예다. “출연자들을 보면 내 여동생 같고 조카 같아도 귀엽잖아? 그런 류의 야동을 만들어주고 싶었다”는 그의 말은, 그러나 가학적인 서바이벌 체제에 ‘야동’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부터 건전함과는 멀다.

중요한 문제는 성이 아닌 폭력에 있다. ‘얼마나 야한가’ 보다도 ‘어떤 권력관계와 폭력이 작동하는가’가 관건이라는 거다. 대다수가 미성년자인 여성 참가자들이, 안무/의상/콘셉트 등에서 어느 정도의 섹슈얼리티를 포함할 수밖에 없는 콘텐츠를 통해, ‘선택’받고 ‘생존’하려는 프로그램에 ‘야동’이란 이름을 붙일 때 포르노적 권력은 다시금 현실에 침투한다.

여성(캐릭터)에 대한 포르노적 관음을 게임의 주요 요소로 만든 서든어택2 같은 경우 일찌감치 문제가 됐다. 설정에 맞지 않는 지나친 노출과 여성캐릭터의 성적 대상화는 서든어택2의 게임성을 망치는 1번 타자로 지목당했고, 이어지는 비판과 흥행참패에 넥슨은 결국 서버를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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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캐릭터의 노출을 주요 전략으로 삼아 논란이 된 FPS 게임 ‘서든어택2’ ⓒ 허핑턴포스트

같은 넥슨 게임, 12세 이용가의 클로저스에도 비슷한 맥락을 답습한다. 13살의 여자 캐릭터가 성인 여성의 몸과 다름없는 캐릭터 디자인으로 “당신만을 위한 도구가 되겠어요”라는 대사를 읊는다. 섹슈얼리티 속의 젠더권력을 적나라하게 답습하는 이 게임이 ‘12세 이용가’란 사실은 우리 사회의 남근주의적 문화가 얼마나 관습화 돼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포르노 내부의 젠더 권력이 얼마나 능숙하게 그 밖으로 빠져나오는지를 말이다.

 

포르NO그라피, 성이 아닌 폭력에 NO를 외친다

 

근래 포르노가 다시 화두다. 수영선수 국가대표의 ‘몰래카메라’ 사건, 폐지된 소라넷의 재오픈 움직임 등은 도촬 범죄와 함께 ‘국산 야동’에 대한 문제의식과 그에 대한 제도적 부실함을 우리에게 다시 상기시켰다. 몇몇 문화 콘텐츠들은 여전한 젠더폭력을 여실히 드러내며 직접적인 범죄의 경우를 넘어 하나의 문화 형태로 자리 잡은 포르노적 위계를 보여주기도 했다.

예로 사진작가 ‘로타’를 둘러싼 페도필리아 논쟁은 사회가 소녀를 소비하는 포르노적 방식을 폭로했고, ‘언프리티랩스타’의 섹시 콘테스트는 여성의 몸이 차별적 시선과 맞물려 내어놓는 한 편의 포르노를 목도케 했다. 그 모든 문제의 기저엔 무엇이 있는가? 기획 [포르NO그래피]는 그것을 뒤집어 고발하기 위한 작업이다. 이 사회의 견고한 남성중심적 섹슈얼리티와, 특히 여성에게 억압적으로 구성된 성 엄숙주의에 대한 반발이기도 하다. 두 문제의 정수처럼 존재해온 “야동신화”를 깨부수는 일은 물론 이 작업의 전면에 있다.

 

글. 인디피그(ghin2800@gmail.com), 타라(kim_ny13@naver.com)

 

기획 [포르NO그래피]

기획. 샤미즈, 이켠켠, 인디피그, 타라

글. 인디피그, 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