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ning! ‘성’이 아닌 ‘폭력’에 NO를 외친다. [포르NO그래피]

 

1.

 

야동. 듣는 순간 남자아이들의 장난스러운 문화가 떠오른다. 이미 거기서부터 현재 포르노 산업이 잘못된 걸지 모른다. ‘야한 동영상’이라는 말이 온갖 방법으로 여성의 몸을 학대하는 포르노를 치환하게 된 지 오래인데, 단지 야하다는 말로는 뭔가 부족하다. 야동, 그러니까 포르노의 문제가 가시화된 건 선정성 때문이 아니다. 그 속에 드러난 젠더 폭력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갱뱅물부터 지극히 정상적 체위의 동영상까지, 포르노는 철저히 남성의 시각에서 그려져 왔다. 그로 인한 폭력이 야하다는 말로 뭉뚱그려진다. 우리는 야동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았다. 야동은 무엇인가? 혹은 야동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대상은 야동을 소비할 만한 계층인 10, 20대였다. 대답은 긍정적인 축에 속했다.

 

2.

 

“학교 성교육이 재미없으니까 야동으로 성관계를 배워요”

 

내가 받았던 성교육을 떠올려 봤다. 칠판에 남녀의 성기 단면 그림을 붙이고 각 부위의 이름을 암기하는 식이었다. 선생님들은 ‘성관계는 아름다운 것’이라며 의미부여를 했고, 그마저도 결혼한 부부 사이에서만 아름다운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혼전 순결, 이성애 중심주의를 강요하는 제도권의 성교육은 분명 문제가 있다. 게다가 시대에 뒤떨어진 내용을 고리타분하게 전달하는 수업 방식도 문제인데, 그걸 받아들이는 학생들은 성교육에 어떤 판타지를 부여하기까지 한다. 무언가 말초적인 성적 자극을 줄 수 있는 것으로 오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마주한 성교육은 남학생들이 욕망하는 무언가를 풀어주는 도구가 아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제도권 교육 밖으로 눈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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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거요… ⓒ 교육부

 

하지만 그 ‘밖’이라는 게 야동이라면, 그것이 교육의 위치를 대신하는 것에 대해선 반대할 수밖에 없다. 학교 성교육만큼이나 야동에서 보여주는 성 역시 왜곡되어 있기 때문이다. 학교 교육이 이성애 중심적으로 흘러가 여성의 몸을 아이를 낳기 위한 도구로 전락시킨다는 문제가 있다면, 야동은 이 문제들을 포함해 철저히 남성 중심적 시선으로 여성의 몸을 소비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게일 루빈의 ‘여성거래’ 논문에는 프로이트의 이론이 잠깐 언급된다. 프로이트는 능동적 욕망을 클리토리스에, 수동적 욕망을 버자이너에 위치시키고 버자이너 에로티시즘을 강조하는 것이 능동적 욕망의 억압이라 말한다. 클리토리스 오르가즘은 여성 스스로도 도달할 수 있지만, 삽입 오르가즘은 남성, 혹은 남성의 성기를 상징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야동은 여성의 능동적 욕망을 억압하는 경향이 있다. 야동으로 섹스를 배운 남자들은 지스팟이라는것을 자극해 여성이 분수처럼 애액을 흘리는 모습에 대해 환상을 갖고 있으며, 여성이 클리토리스를 통해 스스로 쾌감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은 애써 외면한다. 삽입섹스의 신화를 공고히 하며 남성의 쾌락만을 중시하는 것이다. 실제 야동에서는 삽입섹스 장면을 화면 가득 채우는 앵글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여지없이 여배우는 그 과정에서 쾌락을 느끼는 ‘척’ 한다.

 

3.

 

“남자라면 누구나 다 보는 것 아닌가요?”

 

남자라면 당연하고 여자들은 그것에 불편함을 느끼는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해봐야 한다. 오랜 세월 여성의 성욕은 억압당했다. 클리토리스 자극으로 자위한다는 것조차 금기시된 것이다. 반드시 삽입섹스가 가능하게끔 남성이라는 존재가 있어야만 하는, 그래서 섹스라는 행위에 있어 여성은 불완전한 존재였다.

 

성적 호기심이 생겨나는 시기에, 야동은 이런 남녀 간 불평등에 불을 붙인다. 또래 아이들보다 빨리 포르노를 접한 남자아이들은 저급한 성적 농담을 던지는 반면 발육이 빠른 여자아이들은 누군가 자기 브래지어 끈을 당길까 봐 움츠려야 했다. 남자아이들이 큰소리로 섹스 이야기를 할 때, 여자아이들은 귀를 막거나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어야 했다. 그 순간 자체도 남자 아이들에게는 포르노적 상황이었을 것이다. 다수의 여자 아이들에게 언어적 폭력을 던지고, 자신들만 누릴 수 있는 유쾌한 세계가 있다는 생각에 빠진다. 거기에 똑같은 저급함 -이를테면 “그런 거 좋아하냐?”, “흥분되냐?” 라는 말로 그들의 흥분에 찬물을 끼얹는 행동-으로 대꾸하며 자신들의 성욕을 방해하는 여자아이는 외모적인 모욕을 당하거나 ‘깡패 같다’, ‘밝힌다’는 말을 들으며 일반 여자아이의 범주에서 배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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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 사이의 젠더 또한 평등하지 못하다 ⓒ pixabay

 

남자라면 누구나 보는 야동이 여자아이들 사이에선 아주 은밀하게 소비되고, 포르노 산업 자체도 남성향 적이라 여성 소비층을 배려한 흔적은 도저히 찾을 수 없다. 포르노 산업이 정해놓은 주 고객이 남성인 이상, 여성이 배제되는 기형적인 섹스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4.

 

“적당한 제한이 있으면 괜찮을 것 같아요”

 

‘적당한 제한’을 객관적으로 기술하기는 어렵지만, 일반적으로 리벤지 포르노나 성폭행 미화 포르노를 제재하자는 뜻으로 하는 말일 것이다. 포르노를 소비, 제작하며 일어나는 당장의 범죄를 예방하자는 측면에서는 분명 타당한 의견이다. 하지만 유사 범죄 이외의, 젠더 권력을 공고히 하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장기적인 시선으로 보면, 이 의견 역시 충분하지는 않다.

 

건전한 포르노 역시 (여기서 말하는 건전함이란 범죄의 가능성을 열어두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문제가 된다는 사실은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시리즈를 예로 들어 이야기해보자. 이 소설은 트와일라잇의 팬픽으로 시작됐고, 미국에서는 ‘아줌마들의 포르노’라 불렸다. 이러한 사실들이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가 상대적으로 건전하며, 여성에게 친밀한 포르노로 마케팅됐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라는 시리즈를 여성 친화적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록산게이는 저서 ‘나쁜 페미니스트’에서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의 작가가 BDSM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우선 BDSM은 수많은 성적 지향 중 하나다. 그레이라는 남자 주인공이 가진 BDSM이라는 성적 지향성의 원인을, 작품 속에서는 트라우마로 돌리고 있다. 누군가의 성적 지향을 판타지적으로 재구성하고 그것이 치료 가능한 것인 양 포장하는 건 분명 문제가 있다.

 

그레이를 구원하는 아니스타샤가 성적으로 무지하며 순진한 대학생으로 그려진다는 것 또한 문제가 된다. 많은 여성에게 첫 경험은 고통으로 다가온다. 이는 삽입섹스 신화가 공고한 이상 계속될 문제다. 그런데, 성 경험이 없는 아나스타샤는 그레이와의 관계를 감당해야만 한다. 무엇을 위해서? 그레이의 구원을 위해서. 록산게이는 이를 아나스타샤에 대한 성적 착취가 왕자와 결혼하는 스토리에서 소녀가 치러야 할 대가, 희생쯤으로 치부되는 것이라 지적한다. 인어공주 스토리에서 공주가 다리를 얻기 위해 목소리를 잃는 장애를 선택했듯 말이다.

 

여성을 타깃으로 한 로맨스 장르 또한 여성 친화적이지 않은 가치관을 내포한다. 포르노는 이토록 쉽게 장르의 탈을 쓰고 특정 성별(그것은 여성이 될 수도 있고 성 소수자가 될 수도 있다)을 억압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이미 포르노 산업은 적절한 제한만으로는 통제할 수 있지 않은 지경에 왔다.

 

5.

 

포르노는 없어져야만 하는가

 

그래서 어쩌라고? 전 세계의 야동을 폐기처분하고 성 엄숙주의를 지향하자는 말이야? 라며 반문할 수도 있다. 여성들이 모두 성 엄숙주의를 원한 적은 없다. 여성들에게도 분명히 성욕이 있고 그들 나름대로 포르노를 소비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 욕구가 좌절되는 과정에 일조하는 게 현 포르노 산업이라는 점은 아이러니한 일이며, 그 부분을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포르노 산업의 온갖 부정적인 측면을 다 갖춘 일본에서조차 일각에서는 여성향 포르노가 인기를 끌고 있다. 남자 배우들의 외모를 중심으로 내세우며 앵글조차 여성의 몸을 부각하는 것에서 탈피한다. 컨셉과 연출 모두 여성 감독이 담당하며 여성들의 수요에 맞게 스토리도 큰 축을 이룬다. 이처럼 여성들의 수요를 고려한 포르노 산업이 발달해야 하고, 기존의 남성향적 포르노의 소비와 균형을 맞출 정도는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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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억지로 당하는 관계에 쾌락을 느끼지 않는답니다” ⓒ 영화 ‘아가씨’

 

포르노를 소비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청소년기부터라면, 그 시기나 그 이전의 성교육도 바뀔 필요가 있다. 여성의 몸에 사정하고 정액이 흐르는 여성기를 클로즈업하는 이면에는 피임약을 꾸준히 먹으며 건강이 악화되는 여성이 있다는 것, 여성의 몸은 365일 가임기이기 때문에 피임을 확실히 해야 한다는 것 등을 가르쳐야 한다. 질외사정을 피임방법으로 가르치거나 그보다 더 못한, 순결교육만을 강조하는 건 폐기처분 되어야 한다. 집단 강간 포르노에서 여성이 싫다고, 그만하라고 외치는 것은 그들의 진심이고 그 단어마저 빼앗아 남성들의 성욕을 부추기는데 쓰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여성들은 억지로 당하는 관계에 판타지를 갖지 않는다고 가르쳐야 한다.

 

기획 [포르NO그래피]

기획. 샤미즈, 이켠켠, 인디피그, 타라

글. 샤미즈(ndhhdm9019@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