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레드벨벳 팬이고, 드디어 레드벨벳이 컴백했다. 만세. 여자친구와 트와이스의 음원 독주 속 홀로 오매불망이 반년. 드디어 컴백해 주시니 행복해 죽겠다.

 

레드벨벳 – 러시안 룰렛 뮤직 비디오

 

오랜 시간 기다린 보람이 있다. 뮤직비디오가 공개되기 한 시간 전부터 새로 고침을 반복하며 기다린 시간은 10년 같다. 노래도 좋다! 한 번 더 만세! 뮤직비디오 비주얼도 폭발한다! 또 만세! 그런데 뮤직비디오를 보면 볼수록 점점 기분이 이상해진다. 그동안 봐오던 레드벨벳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 뮤직비디오……. 때문인가?

 

레드벨벳의 세계

 

레드벨벳의 가장 큰 강점이자 특징은 그들의 오묘한 컨셉에 있다. 걸그룹의 정석이라고 여겨지는 섹시, 청순, 귀여움 중 한 가지를 선택하지 않는다. 2년간 활동하며 선보인 노래 중 어떤 컨셉이다. 라고 못 박을 수 있는 곡은 없다. 섹시와 청순, 혹은 귀여움이 아닌 ‘레드’와 ‘벨벳’ 혹은 ‘알 수 없음’이 그들의 컨셉이다.

 

‘Red’와 ‘Velvet’은 소속사의 설명을 빌리자면, “강렬하고 매혹적인 컬러 레드와 부드러운 느낌의 벨벳에서 연상되는 감각적인 이미지”의 두 컨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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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Red’고 (덤덤덤덤덤덤덤덤덤덤) ⓒ Dumb Dumb 뮤직비디오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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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Velvet’이야 ⓒ SM 엔터테이먼트

 

다소 뜬금없는 활동도 그런 컨셉이 이유다. 작년 가을 ‘Dumb Dumb’ 활동이 끝나고, 올해 봄 컴백하며 들고 온 노래 ‘7월7일’은 슬픈 발라드곡이었다. 세상 어느 걸그룹이 화창한 봄에 슬픈 발라드를 부르겠는가? 데뷔곡 ‘행복 ‘Be natural’-‘아이스크림 케이크’-‘Automatic’-’Dumb Dumb’-‘7월7일’ 그리고 이번 ‘러시안 룰렛’까지 패턴은 반복된다. 레드벨벳은 항상 신나는 ‘레드’곡을 낸 후 조용한 ‘벨벳’곡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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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때부터 범상치 않다. 뿌야~ ⓒ SM 엔터테이먼트

 

한편 뮤직비디오와 곡엔 상징이 넘쳐나고 판타지적 세계의 느낌이 강하다. 가령 ‘행복’ 뮤직비디오의 초반부 구성은 ‘뿌야!’와 함께 어떤 환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독특한 연출을 보여줬다. (팬들 사이에선 초현실주의냐는 말까지 나왔다) ‘7월7일’의 뮤직비디오는 선실, 물에 잠긴 멤버들 등, 세월호를 상징하는 듯한 연출로 화제가 됐다. 레드벨벳 팬에게 뮤직비디오 해석하기는 필수요소다.

 

나른히 넘긴 책장 속/ 예쁘고 이상한 그림/ 문득 손이 멈춰졌어요/ 날 보고 살랑살랑/ 빨리 오라오라 손진해/ 나도 모르게 점점 빨려 들어가게 됐어요/ 이상한 나라의 입구는 험했죠/ 숨을 헐떡이며 전 도착했죠/ 빙글빙글 꽃들 춤추는/ 우당탕탕 토끼들 싸우는/ Huff n Puff 숨이 헉헉/ 뛰어봐도 내가 작아서/ 폴짝 뛰어 나무를 타고/ 세상을 둘러봤죠 정규 1집 ‘The Red’ 수록곡 Huff n Puff

 

판타지적인 만큼, 동화의 이미지를 많이 가져온다. 정규 1의 수록곡 ‘Huff n Puff’의 가사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떠오른다. ‘Time Slip’은 ‘꿈’이라는 세계로 빠지는 과정을 그렸고, 7월7일은 제목에서부터 견우직녀 설화를 가져왔다.

 

그런 오묘하고 판타지적인 컨셉으로 레드벨벳은 2014년부터 자신들만의 세계를 만들어 나갔다. ‘행복’, ‘아이스크림 케이크’, ‘Dumb Duumb’을 거치며 ‘Red’의 세계를 만들었다. ‘Be natural’, ‘Automatic’, ‘7월 7’일로 ‘Velvet’의 세계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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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lvet 컨셉 Be natural을 보고 입덕했습니다. ⓒ SM 엔터테이먼트

 

소속사 선배 F(x)와 비슷하다. 다만 차이점은 더 대중적이라는 것이다. SM은 F(x)를 통해 걸그룹의 정석적 컨셉을 벗어났고, 독특함과 대중성의 경계에서 발견한 중간 지점이 레드벨벳이다. 독특함의 극단을 추구한 F(x)라면 레드벨벳은 대중성과 타협한 중간에 위치한다.

 

나를 비롯한 많은 레드벨벳의 팬들은 그런 알 수 없음에서 오는 매력에 빠졌을지 모른다. 과하지 않고 적절하게 전형을 탈피하는 레드벨벳의 자기중심적 세계관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아니 이다’.

 

여자친구와 레드벨벳의 부루마

 

이번 타이틀 곡 러시안 룰렛의 뮤직비디오는 그런 레드벨벳의 세계와 동떨어져 있다. ‘Red’컨셉의 곡으로, Dumb Dumb 이후 1년 만에 선보였지만, 그동안 레드벨벳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물론 뮤직비디오는 언제나 그랬든 상징으로 가득하고, 팬들의 해석을 유도한다. 대놓고 섹시하거나 청순하거나 귀엽지도 않다. 문제는 뮤직비디오의 이미지다.

 

뮤비에서 멤버들은 일본 부루마와 테니스복, 그리고 밝은 파스텔톤 옷을 입고 등장한다. 멤버들이 춤을 추는 곳도 체육관과 테니스 코트가 주된 배경이다. 배경마저 파스텔 톤으로 가득하다. 따뜻한 색감과 발그레한 얼굴 메이크업도 이를 부각하기 위해 노력한다.

 

문제는 그런 이미지들이 이미 오래전 많은 걸그룹이 사용할 대로 사용하여 닳아빠진 이미지라는 것이다. 즉 사회가 소비해온 정형화된 이미지를 가져온 것일 뿐, 그동안 레드벨벳만의 독창적인 이미지가 아니다. 이미지를 사용하는 방식마저 기존의 걸그룹보다 뛰어나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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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안 룰렛’ 뮤직비디오 캡쳐

 

일본 부루마는 여자친구가 데뷔 초 꾸준히 사용하던 아이템이다. 부루마를 입고 춤을 추며 수다 떨고, 뜀틀을 넘는 여자친구는 밝고 씩씩한 (아마도 상상 속의) 일본 고등학생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비슷한 옷을 입고 춤을 추는 레드벨벳은 어떨까? 여자친구가 씩씩한 고등학생의 이미지(정체성)를 만들고 지금까지 그것을 이어오고 있는 반면, 레드벨벳의 부루마는 그 기능이 모호하다. 도대체 어느 맥락에서 그 옷과 배경이 필요한지 알 수 없다. 발그레한 얼굴로 부루마를 입고 춤을 추는 뮤직비디오 속 레드벨벳은 그저 어려 보이기만 할 뿐이다.

 

팬들이 기다리던 모습은 그런 것이 아니다. 지겹도록 소비된 ‘청순 발랄한 소녀’의 반복이 아니란 말이다. 걸그룹이 흔히 마주치는 대상화(‘소녀’ 혹은 ‘섹시’)적 소비 관념을 회피하고, 오히려 그 사이에 자신들의 영역을 만들어 내던 ‘레드와 벨벳, 혹은 알 수 없음’의 모습이 우리가 기다려온 레드벨벳이다. 

 

러시안 룰렛 속 레드벨벳은, 그저 대상화될 뿐이다. 춤을 출 때 빼고는 시종일관 무표정한 얼굴,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카메라의 시선은 수동적인 고등학생 혹은 인형의 이미지만 만들어 낼 뿐이다. SM이 로리타 컨셉을 이용한 걸까?

 

러시안 룰렛 뮤직비디오에 남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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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b Dumb’의 티저 vs ‘러시안 룰렛’의 티저 ⓒ SM 엔터테이먼트

 

레드벨벳은 이번 뮤비 속에서 처음으로 ‘소녀’라는 이미지로 대상화됐다. 하고 많은 소녀의 이미지 중에서도 SM은 로리타 컨셉을 이용했다. 티저이미지부터 그 흔적은 보인다. 레드 컨셉의 ‘아이스크림 케이크’, ‘Dumb Dumb’과 이번 ‘러시안 룰렛’의 티져를 비교해보자. 아무렇게나 꽂은 형형색색의 머리핀, 어렸을 때 가지고 놀던 인형이 입었을 것 같은 치마 그리고 무표정한 얼굴과 포즈까지. 26살의 아이린은 티저이미지에서 영락없는 초등학생 혹은 아기 인형 같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어린 이미지다.

 

로타가 생각나는 부르마와 색감, 발그레한 메이크업 그리고 중간중간 나오는 학교의 흔적은 영락없이 레드벨벳 멤버들을 어린 소녀로 만들어 버린다. 문제는, 그들의 모습이다. 부루마 의상은 ‘학교 체육관 라커’에 ‘조용히 기대앉아’ ‘무표정’으로 ‘입만 뻐끔거리’는 뮤비 연출과 함께 멤버들을  ‘어리지만(스타일)’ ‘충분히 성적인(몸)’ 그리고 ‘수동적인(연출)’ 인형으로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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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끔뻐끔 ⓒ 러시안 룰렛 뮤직비디오 캡쳐

 

이제는 일본에서도 사용하지 않는 부루마를 굳이 입힌 것도 그런 이유에서라고 보인다. 여자친구는 씩씩한 이미지를 만들려 했음에도 부르마로 인해 로리타 컨셉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번 레드벨벳은 더 하다. 처음 나온 순간 비주얼에 열광하면서도, 레드벨벳의 뮤직비디오는 결국 보면 볼수록 불쾌함만 남는다.

 

그들이 가장 잘하던 방식으로 ‘7월 7일’까지 팬들을 이끌어오던 레드벨벳은, 러시안 룰렛에서 그들이 피하던 방식을 사용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아쉽다. 행복, 아이스크림 케이크, Dumb Dumb에서 만들어낸 강렬한 색, 개성, 자기중심적 인물은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걸그룹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흔하디흔한 ‘어린 여자 이미지’만 남았다.

 

그러나 여전히 멤버들은 멋있구나. 춤도 멋있다. 뮤직비디오에 대한 아쉬움을 꼭꼭 씹으면서도 MP3로 러시안 룰렛만 틀어놓고 다닌다. 커지는 핫 삐삐삡~ 그래… 뮤비는 저래도 곡이 좋으니까 만족해보자. 컴백해줘서 고맙다.

 

글. 통감자 (200ysk@naver.com)

특성이미지 ⓒ 러시안 룰렛 뮤직비디오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