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추석은 왔고 추석 특선 영화가 방영된다. 어색하고, 어색하므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답시고 듣기 싫은 오지랖을 부리다가 다시 할 말이 없어지면 티비로 눈을 돌린다. 어쩌면 그건 엘리베이터 안의 타인들이 눈 둘 곳 없어 무의미하게 층수만 바라보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아무리 무의미한 행위일지라도 티비에 나오는 내용은 우리 사이를 더 어색하고 짜증 나게 만들 수 있다. 이번 추석, 티비 앞에 앉아있을 사람들을 위해 영화를 추천 혹은 비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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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비추 ★★, tvN, 9/16, 19:20

 

한국 중년 남성을 대표하는 황정민은 돈과 권력에 굴복하지 않고 정의를 위해 싸우는 형사로 나온다. 그와 반대로 자기가 이룬 것이라곤 하나도 없고 부모님이 물려주신 것들을 누리며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유아인은 ‘요즘 젊은이들’을 연상시킨다. 웃음이 나올 법한 요소들과 액션들이 적절히 들어가 시간을 때우기엔 좋은 영화다. 권선징악이라는 주제가 꽤 통쾌하기도 하다. 그러나 철없는 요즘 것들을 향해 어른들이 혀를 끌끌 찰 수 있으므로 조심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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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인사이드-비추 ★, SBS, 9/18, 21:55

 

18살 생일을 시작으로 주인공 우진은 자고 일어날 때마다 외모, 성별, 나이를 포함한 모든 것이 바뀌는 삶을 살게 된다. 영화는 그런 그가 ‘진정한 사랑’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이다. 헌데 뷰티’인사이드’라고 하지만 정작 중요한 장면에선 잘생긴 젊은 남성 배우들이 나온다. 변하는 겉모습을 받아들인다는 건 알겠는데 정작 ‘내면’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이 영화 위험하다. 우진이 젊고 예쁜 여자로 변하자 그의 절친한 친구는 ‘한 번만 줘’, ‘니가 안주면 니가 잘못한 거야’라는 거북한 대사를 날린다. 여배우 두 명이 한 침대에서 자는 장면이 나올 땐 명절 특수로 남사스러워하는 어른이 있을 수도 있겠다. 영화는 두 주인공이 결혼을 약속하고 키스하며 끝이 나는데, 그 대목에서 ‘너도 얼른 짝을 찾아서 결혼해야지’라는 잔소리가 시작될지도 모르니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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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비추 ★, EBS, 9/18, 23:00

 

안전지대라고 여겨졌던 한반도에 쓰나미가 몰려온다. 이 쓰나미는 이혼한 부부도 서로를 끌어안게 하고 양아치마저 단숨에 개과천선하게 한다. 본격 개과천선 판타지이자, 순박한 늙은 남성과 젊은 여성의 사랑, 혹은 여성을 위한 남성의 희생과 같은 역겨운 로망으로 범벅된 영화. 안일한 정부의 모습이 박사 캐릭터를 부각하기 위해 아주 잠깐 언급될 뿐인 대목에선 재난 신파 영화의 한계가 여실하다. 추석을 맞아 한데 모인 가족들과 훈훈한 장면을 연출하는 데는 적절한 영화지만, 훈훈함을 깨지 않기 위해 영화를 보는 내내 감동한 척 해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글. 호빵맨(0103hyem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