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LLJOY. 흥을 깨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여성혐오와 반성평등적 컨텐츠는 세상에 널리고 널렸다. 그 흥을 깨지 않으면 계속해서 번식할 것이다. 페미니즘은 KILLJOY여야 한다. 우리 모두가 단 한 번도 성평등한 세상을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아이템은 무궁무진하다. 앞으로 [킬-조이] 연재를 통해 마음껏 고함20이 느낀 불편함을 말하고 설치며 흥을 깰 예정이다.

 

<질투의 화신>, 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세 남녀의 삼각관계를 주된 서사로 하는 SBS 로맨틱코미디 드라마다. 여자주인공인 표나리(공효진 분) 곁에는 이화신(조정석 분)과 고정원(고경표 분)이 있다. 두 남자주인공은 오래된 절친이지만 성격은 영 딴판이다. 대놓고 ‘마초’로 불리는 이화신이 까칠한 컨셉이라면, 고정원은 여주에게 늘 다정하게 군다.

 

센스 있는 연출과 주연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으로 시청자(인 나)를 확보하는 것 같았는데, 아무리 봐도 이 드라마… 묘하게 불편하다. 특히 두 남주의 여성관은, 한마디로 구리다.

 

52658-1

ⓒSBS <질투의 화신>

 

이화신, 마초와 폭력 사이

 

기상캐스터 여주가 3년간 짝사랑해온 이화신은 학벌, 외모, 능력 빠지는 것이 없는 베테랑 기자다. 그런데 ‘마초’다. 공식 홈페이지의 등장인물 소개에 따르면, 그는 “사회생활을 하는데, 여자를 만나는 데는 남성적인 것이 우월하다고 믿”는다. “여자에게 지는 것, 못 참는다”고도 나와 있다.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덕 상사 포지션도 아니고, 로코 남주가 ‘마초’ 컨셉인 것부터 요즘 정서엔 아니지 않나. 시청자들의 젠더 감수성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는데 말이다. 그럼에도 이화신 캐릭터가 시청자에게 어필한 것은 마초성을 뒷받침하는 (생계 부양 역할을 훌륭히 수행할 가부장이 될 수 있는) 직업적 능력과 더불어, 여주와 얽힐 때 부각되는 찌질하거나 짠한 모습 때문이었다. 이화신이 유방암 진단을 받을 때, 병력이 알려지는 게 두려워 떨 때, 무시하던 표나리에게 의지하거나 그녀에게 한 방 먹을 때, 그는 ‘권위 있는 마초’가 아니라 ‘찌질한 마초’에 자리한다. 마초지만 마초스럽지 않은 모습으로 극에 ‘웃픔’을 선사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설정값이 마초였기에, 이화신 캐릭터의 마초성은 언제든 폭력성으로 발현될 위험을 내포한다. 툭 하면 소리를 지르거나 막말을 내뱉기 일쑤다. 여주에게 “그만 먹어. 배 나오면 보기 흉해”, “쳐먹는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폭력성은 7화(14일 방송분)에서 그 정점을 찍었다. 표나리가 자신의 치부(유방 수술 환자용 브래지어 착용)가 담긴 동영상을 유포했다고 생각한 이화신은, 그녀가 자는 숙직실에 들이닥친다. 물론 ‘여성용’ 숙직실이다. 그리곤 표나리의 몸을 더듬으며 핸드폰을 찾으려 한다. 잠에서 깬 표나리가 “이거 성추행이에요, 기자님”이라며 분명히 주의를 주지만 무시한다. 계속 이곳저곳을 더듬으며 한다는 말이 “웃기고 있네. 이렇게 더듬는 거 싫었으면 아까 벌써 일어났어. 너 아직도 나 좋아하지?”였다.

 

52658-2

ⓒSBS <질투의 화신>

 

“실은 싫지 않잖아. 너도 좋잖아”라는 말, 익숙하다. 여성의 NO를 YES로 받아들이는 비상식 사회에서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이 폭력적인 말이 얼마나 많은 성범죄 피해자에게 2차 가해로 자행되어 왔나. 가벼이 넘어갈 수 없는 상황을 ‘로코’ 드라마는 경쾌한 BGM으로 마무리 짓는다. ‘후회하는 마초’로 여심을 얻으려던 이화신 캐릭터는 이 장면에서 선을 넘어버렸다.

 

고정원, 다정하면 다야?

 

그렇다면 세상 다정하게 구는 고정원은 어떤가. 비행기에서의 첫 만남부터 방콕에서의 우산씬, 돌아온 서울에서 여주와 달달한 썸을 타고 있는 고정원 캐릭터의 서사는 전형적인 로코물의 그것으로 보인다. 비정규직 기상캐스터 표나리의 편이 되어주는 유일한 사람으로 연출되는 고정원과, 여주가 사랑에 빠지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다정할지언정, 그의 여성관은 어딘가 좀 이상하다. 여주에게 갑작스레 반말하기 시작한 것도 그렇고, 그녀가 마음에 드는 이유에 대해 “여자 같은 여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부분도 그렇다. 도대체 ‘여자 같은 여자’는 무엇인가. 고정원에게 직접 물어보고 싶다. 공식 홈페이지 소개에 나온 그는 “어디서고 가장 쓸데없는 생물이 도도한 여자라고 생각한다”고 하니, 아마도 도도한 여자도 ‘여자 같은 여자’의 범주에 포함되는 듯하다. 여성성과 남성성을 규정하고 선입견을 품는 것 역시 전형적인 마초 기질 아닌가. 고정원과 이화신이 둘도 없는 친구인 이유를 알 것도 같다.

 

52658-3

ⓒSBS<질투의 화신> 

 

7화에서 표나리에게 함부로 대하는 이화신을 타박하는 고정원의 대사도 불편하다. “너 좀 예민해. 기집애같이”, “저거 진짜 갱년긴가. 생전 안 그러더니 왜 그래”와 같은 말은 다정한 컨셉의 로코 남주가 아니라 개저씨가 흔히 할 법한 말이다. 이해할 수 없게 짜증을 부리고 예민하게 구는 것을 여성/갱년기(여성)의 전유물인 양 취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성의 짜증은 ‘어떤 사람’의 짜증으로 여기고, 여성의 짜증은 ‘여성’의 짜증으로 여기는 것도 타자화다.

 

폭력적이고 차별적인 발언을 하는 건, 참 별로다. 그런 남주가 여전히 먹힐 거라고 생각하는 건, 정말 구리다. 여성관에 문제가 있는 캐릭터들이 언제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질투의 화신>의 서숙향 작가는 6년 전에 드라마 <파스타>를 썼다. 최현욱(이선균 분)과 이화신(조정석 분)은 다르지 않다. <파스타>의 최현욱 셰프 역시 툭하면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댔고, “내 주방에 여자는 없다”는 여성혐오적 발언을 내뱉었다.

 

그래, 당시의 ‘버럭솊’은 인기를 끌었을지 모른다. 그 폭력성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그를 이상형으로 꼽기도 했다. 이젠 다르다. 이미 불편한 발언에 대한 시청자들의 불만이 가시화되고 있다. 사랑받는 로코 남주가 되기 위해, 젠더 감수성은 선택이 아닌 필수요소가 될 것이다. 앞으로 더, 더 그렇게 될 테다. 여전히 엉뚱한 곳에서 ‘여심 저격’을 하는 마초들은 도태될 뿐이다.

 

글. 달래(sunmin532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