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질투의 화신>이 인기다. 훈훈하고 귀여운 느낌의 로맨틱 코미디(로코)로 배경은 방송국, 주연 배우는 ‘로코의 여왕’ 공효진. 뻔한 한국식 로맥틱 코미디겠거니 했는데 드라마의 스타일, 묘한 여혐 코드까지 어딘가 더 익숙했다. 찾아보니 서숙향 작가란다. 시간을 되돌려 2010년의 드라마를 떠올렸다. 나를 두근거리게 했던, 하지만 잘못된 젠더관념으로 범벅되어 나를 불편하게 했던 드라마 말이다.

 

여자는 미련하지 못해서

 

그 드라마는 <파스타>다. 성질 나쁜 남자 쉐프와 이제 막 주방보조를 벗어난 여자의 사랑 이야기. 그때는 몰랐지만 이제는 안다. 그 드라마가 얼마나 여성 혐오적이었는지. 남자 주인공 현욱(이선균 분)은 ‘라스페라'(극 중 배경인 레스토랑)에 새로 온 쉐프이다. 그는 “내 주방에 여자는 없다”는 말을 당당하게 떠들며 여직원들을 모두 해고한다. 하지만 유경만큼은 스스로, 오로지 ‘노오력’의 결과로 주방에 돌아온다. 열심히 일하는 유경의 모습이 심금을 울렸는지 현욱은 이런 말을 뱉고 만다. “여자가 왜 쉐프가 될 수 없는지 알아? 여자는 미련하지 못해서 그렇다”

 

작가가 세상을 보는 시야가 좁으면 이런 그림이 나온다. 다른 여자 요리사들이 유경만큼 힘들고 미련하지 않았을까? 그런 의문은 무시하고 유경을 개념녀로 만드는 노력은 너무나 가상하다.

 

현우에게 해고당한 여직원들은 사랑의 방해꾼으로 그려진다. 그나마 능력 있는 여성인 세영은, 현욱의 요리를 망쳐 그의 발목을 잡은 과거가 있다. 그 결과, “내 주방에 여자는 없다” 는 고용차별의 말이 정당화된다. 2010년 당시, 페미니스트들의 비판은 있었다. 그러나 늘 그렇듯 “맥락을 봐 달라”는 팬들의 외침에 묻혀버렸다(관련 링크).

 

여주인공 빼고 다 나쁜x

 

드라마 <미스코리아>에서는 여적여, 개념녀 논리가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형준(이선균 분)은 화장품 회사를 살리기 위해 과거 연인이었던 지영(이연희 분)이 미스코리아가 되도록 돕는다. 작중 배경이 90년대이기에 가능한 설정이다. 성 상품화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미스코리아 대회를 아름다운 꿈의 무대로 그린 것은 그럭저럭 넘어간다 치자. 하지만 미스코리아 대회를 규탄하는 여성단체 회원을 그린 방식은 분명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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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서 페미니스트들은 다짜고짜 지영에게 달걀을 투척한다. 그들은 뚱뚱하고 못생겼으며, 애 엄마도 미스코리아에 출전시키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MBC

 

미스코리아 대회는, 페미니스트들의 항의 때문에, 아니 어쩌면 시대의 흐름에 맞게 영향력이 축소됐다. 하나 이 드라마는 그런 여혐의 잔재를 추억하며, 페미니스트를 추억에 대한 방해꾼으로 그린다. 그 속에서 홀로 품위와 아름다움을 유지한 지영은(현욱을 위해서!) 승자의 왕관을 쓰게 된다. 아무도 그 페미니스트들의 이야기는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녀들은 그냥 못생기고, 무례한 떼쟁이에 불과했다.

 

<질투의 화신>의 표나리는 어떤가? 촬영 중 기상캐스터에게 가해지는 성희롱을 그녀는 그냥 감내해낸다. 동료들이 아무리 충고를 해도 소용없다. 오히려 그런 충고를 하는 여자들이 현실감각 없는 것처럼 그려진다. 기상캐스터는 아나운서가 아니니까. 아나운서가 되지 못한 이들의 차선책일 뿐이니까. 하지만 꾹 참고 주어진 일을 하다 보면 언젠가 기회가 올 테니까. 이건 기상캐스터들에 대한 모욕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재벌가에 시집가려는 아나운서의 모습까지. 현실에서 댓글로 성희롱을 당하거나 ‘취집’ 잘 가는 애들 정도로 부당하게 비하당하는 여성 직업군(기상캐스터, 아나운서)을, 드라마는 한 번 더 우습게 만들었다.

 

하이퍼 리얼리즘이 아니다

 

조작과 극사실주의는 다른 말이다. 서숙향이 만든 매우 인위적인 세계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극사실주의를 논한다. 현실에 조소를 담아 풍자한 거라나? 단언컨대 서숙향의 드라마는 단 한 번도 풍자를 한 적이 없다. 드라마에 드러나는 신분 차이도 현실 비판이 아닌 신분 차 로맨스, 여성이 을인 로맨스를 만들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뭘 했나. 조작했다.

 

가난한 미스코리아 출전자에게 날달걀을 던진 게 당시 페미니스트의 모습인가? 아니다. 안티 미스코리아 대회를 시작한 건 ‘이프’라는 여성주의 저널이다. 그들은 외모와 상관없이, 성적 대상화를 하지 않고 미스코리아를 뽑는 대회를 자체적으로 기획했다. 어떻게 보면 퍼포먼스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운동은 평화적이었다.

 

여자가 미련하지 못해 쉐프가 될 수 없다는 말도 그렇다. 애초에 요식업계, 그것도 양식당의 주방이라는 게, 여성들에게 관대한가? 아니다. 어디에나 유리천장이 있다. 집에서 가족들의 식사를 책임지는 건, 오랜 시간 어머니들의 몫이었다. 그런데도 레스토랑 주방에는 남성들만 넘쳐났다. 요리라는 것도 사적 영역이 아닌 공적 영역에 들어가자 남성의 것이 됐다. 역사적으로, 여성들의 사적 영역의 분야가 공적 영역으로 흡수되며 남성들에게 자리를 빼앗긴 경우는 수도 없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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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로 넘어가던 시기, 산파는 종종 마녀사냥을 당했다. 하지만 근대에 이르러 부인과라는 공적 영역의 의료를 남성이 차지했을 때, 그들을 향한 마녀사냥은 일어나지 않았다 ⓒ네이버 지식백과

 

작가들도 변해야 한다

 

비단 서숙향 뿐만이 아니다. 나빼썅(나 빼고 다 썅x) 여주인공과 멘토 같은 남주인공의 조합은 로코물의 단골 설정이다. 홍자매나 김은숙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홍자매는 아재멘토의 아버지 격으로 불릴 수 있는 강마에 캐릭터(<베토벤 바이러스>)를 만들어냈다. <베토벤 바이러스> 작가진과 별개인 또 다른 홍자매 팀도 <주군의 태양>이라는 드라마에서 비슷한 캐릭터를 어필했다. 여주인공에게 맨스플레인을 하며 잘난 척 하는 무례한 남자를 로맨스의 대상으로 삼은 대표적인 사례다. 김은숙의 드라마는 늘 도덕극 같다. 그 안에서 승자는 언제나 착한 여자였다.

 

작가들이 왜 여혐을 끌어들였는지, 왜 남성중심적 시각을 계속해서 답습해 왔는지 아주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여성향 콘텐츠는 늘 공격의 대상이었다. 여자가 향유하는 문화는 수준이 낮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 때문이다. 남성들이 주 소비층인 라이트노벨이나 2D 캐릭터 아이돌이 제대로 된 비판을 받은 적이 얼마나 있나. 그와 반대로, 여성형 콘텐츠를 향한 비난에 대한 암묵적 동의는 얼마나 굳건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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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남성의 소비문화인 라이트노벨과 10대 여성이 향유했던 인터넷 소설, 트와일라잇 등은 그 비난의 정도가 달랐다 ⓒYES24 캡처

 

서양에서도 <트와일라잇> 같은 지극히 ‘소녀 취향’의 콘텐츠는 마음껏 욕해도 되는 대상이다. 하지만 그러한 문화 속에서도 충분히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 <섹스 앤 더 시티> 시리즈는, 여성이 자유롭게 성을 사유한다는 이유로 한국에서 된장녀의 시그니처 쯤으로 평가받았다. 헌데 서구권이라고 여성혐오가 없었을까? 그 모든 불합리함에도 불구하고 문화 콘텐츠가 발전해야 하는 것 아닐까? <섹스 앤 더 시티> 역시 뚝심 있게 시리즈를 이어갔다. 사회 분위기 자체가 남성 위주라는 것에는 동의하나 무려 드라마 작가인 여성들이 그 질서에 편입하는 건 주 소비층을 배반하는 행위나 다름없다.

 

글. 샤미즈(ndhhdm9019@naver.com)

특성이미지. ⓒMBC, S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