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또 을질 시작이네” 언제부턴가 인터넷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말이다. ‘을질’이란 단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기억을 더듬어보자. 언제부터 우리가 이 단어를 썼더라? 검색창에 ‘을질’을 쳐본다. 그럼 바로 눈에 들어오는 단어는 ‘우장창창’, 혹은 ‘서윤수.’

 

 ‘을질’의 탄생 

 

우장창창 상인 문제는 유명 힙합 듀오 ‘리쌍’이 얽혀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의 SNS 타임라인에 올랐다. 갈등의 양상은 간단하다. 리쌍은 건물주고, 서윤수는 그의 건물에서 ‘우장창창’이라는 상호명의 곱창집을 하던 사장이다. 건물주 리쌍은 우장창창이 나가길 원했고, 우장창창은 계속 그곳에서 장사하기를 원했다. 문제는 건물주가 임차상인을 내쫓는 것이 법적으론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장창창의 서윤수 사장에게는 유명 연예인 리쌍을 상대로 ‘을질’을 하고 있다는 딱지가 붙게 된다.

 

꺼진 을질도 다시 보자. 우장창창 사안과 관련해서는 인 건물주 리쌍이 연예인이라는 점이 중요한 변수다. 우리는 그들이 인지도 있는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그들을 이 관계 내에서 ‘갑’으로서의 건물주가 아니라 더 불쌍한 사람으로 보고 있지 않은가? 이를테면 이런 식으로 말이다. “똑같은 잘못을 저질러도, 심지어는 법적으로 잘못한 것도 아닌데,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이렇게 사회적으로 몰매를 맞다니 불쌍 (ㅉㅉ)”

 

그러나 리쌍과 우장창창 사장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은 건물주가 연예인이라는 것이 아닌,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어야 한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이 임차인의 권리를 보호해주지 못하고 있고, 리쌍이 이 법의 허점을 악용하여 권리금을 주지 않은 채로 우장창창을 내쫓으려 하고 있기 때문에 이 갈등은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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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연예인이 아니라 권리금이야! ⓒ맘상모

 

을질이 뭐길래

 

지금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냐고? 우장창창 사건을 시작으로 이제는 툭하면 튀어 나오는 ‘을질’이 뭔지 궁금하다는 것이다. 갑-을’이라는 것은 특정한 관계, 주로 계약 관계 내에서 사회적 지위에 의해 재결정되는 지위다. 여기에 ‘-질’이라는 접미사를 붙인 것이 ‘갑질’, ‘을질’이 되겠다. 접사 ‘-질’의 뜻을 알아보았더니 다음과 같다.

 

(…)

3) 직업이나 직책을 비하하는 뜻을 더하는 접미사
4) 주로 좋지 않은 행위에 비하하는 뜻을 더하는 접미사
5) ‘그것을 가지고 하는 일’ 또는 ‘그것과 관계된 일’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그러니까 ‘을질’이라는 것은 “‘을’이라는 직책을 가지고 하는 좋지 않은 행위” 정도의 뜻이 되겠다.

 

그런데 갑과 을의 관계라는 것이 사회적으로 호명될 때에는 계약서상 명시된 갑과 을이 아닌, 권력 관계에 대한 사회적 가치 판단이 개입되는 경향이 있다. 이를테면 알바생과 손님의 관계를 두고 흔히 손님은 갑이고, 알바생은 을이라고 칭하지만, 사실 알바생과 손님 사이에는 아무런 계약관계가 맺어져 있지 않다.

 

그러므로 리쌍이 은연중에 ‘사회적으로 불쌍한 연예인’으로 인식된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 건물주 리쌍이 연예인으로서 ‘을처럼 보이는 공인’에 자리하게 되면서, 진짜 계약 관계에서 을인 임차인 우장창창 사장은 “을도 아니면서 을인 척, 을의 지위를 이용하여 좋지 않은 행위”(=을질)를 하는 것이 된다.

 

내가 을이다 왜 말을 모태!!!

 

아니 그런데, 을질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심보가 어쩐지 익숙하다. “을질한다” 대신 “떼쓴다”를 넣어보자. 의미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 여성, 장애인, 노동자의 권리를 외치는 운동을 두고 사회적 약자로서의 지위를 이용하여 “떼를 쓴다”고 표현하던 어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의 발언들과 닮아 있다. 을질이라는 말이 있기 전부터 이들의 목소리는 “피해의식에 쌓여있다”, “노오력은 안 하고 빼액 거린다”, “피해자 코스프레 한다”는 말로 매도되어 왔다. ‘을질’이라는 표현은 전혀 새롭지 않으며 앞서 나온 표현들의 변주일 뿐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에는 우장창창 서윤수 사장에게만 향하던 ‘을질’의 화살이, 이제는 다른 대상에게로 확산되어 등장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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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뉴스 댓글 화면갈무리, 라고 적고 댓망진창이라고 읽는다

 

급기야 ‘을’에겐 자격조건이 부여된다. 먼저 갑이 자신의 갑임을 과시하듯 드러내서는 안 되듯이 을도 마찬가지다. 아니, 오히려 조금 더 엄격한 잣대가 들이 밀어진다. 을은 언제나 착하고 검소하게 생활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갑의 지위를 추구하며 노오력을 해야 한다. 설령 흙수저더라도 “마음만은 금수저”여야 인정을 받을 수 있다.

 

‘선량함에도 불구하고 을이었던’ 이들이 마이크를 쥐고 자신들이 겪은 부당함을 폭로하고 권리를 요구하는 순간, 이들은 사회 불순세력이 된다. 목소리를 내는 것은 권위자의 전유물인데, 을인 주제에 감히 그것을 범한 자들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들에게 “너네 사실은 을이 아니지!! 을인 척 을질하는 거지!!(빼애액)”라는 반응이 가해지는 것은 어쩌면 사회통합을 유지하겠다는 이들이 취하는 당연한 태도일지도 모른다. ‘을질’이라는 낙인은 권리를 외치는 이들의 움직임을 ‘부당한 것’으로 만들고, 손쉽게 깔아뭉개는 힘을 지닌다.

 

그런데 과연 한순간도 을인 적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앞서 말했듯이 갑-을이라는 것은 관계 속에서 사회적으로 재결정되는 지위다. 여러 관계 속에서 우리는 갑이 되기도 하고 을이 되기도 한다. 어떨 때는 노오력해도 어쩔 수 없이 을이었고, 을이어서 부들부들거려도 참아야만 했던 날도 있다. 어쩌면 그런 경험들이 쌓여서 터져 나오는 것이 을질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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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서로의 을질을 이해해주고 격려해주도록 해요 ⓒMBC

 

네, 저는 을이고요, 을이기 전에 사람이라 사람답게 살고 싶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게 뭐가 나쁜가. 내 안의 약자성을 인정하고 보면 그동안 빼앗겨 왔던 나의 권리가 보인다. 내가 을로서 겪었던 일이 부당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면 을질도 할 수 있는 거지 뭐. 을질하는 것도 권리다. 오히려 자신이 을이 되는 순간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을질하는 게 좋은 거 아닐까. 사회는 이런 을질들이 모여서 지금에까지 발전해왔으니 말이다.

 

글. 다정(tsb0231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