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얼마나 치사하고 더러운데

 

아빠가 항상 하시던 말씀이다. 물론 여기서 ‘사회’는 학생 신분에서 벗어나 직장을 다닐 때 마주하는 사회이다. 아빠의 말대로라면 사회(社會)는 회사(會社)인 셈이다. 헌데 사회(혹은 회사)에 도달하려면 취업이라는 문을 넘어야 하건만, 이 문이 도통 열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는 시인 이상처럼 “문고리에 쇠사슬 늘어지듯 매어 달렸”다. 문을 열려고 안 열리는 문을 열려고. 그러다 문틈 사이로 사회의 모습을 슬쩍 보게 되면, 벌써부터 치사하고 더럽다는 생각이 들어 아예 문을 열기가 싫어진다.

 

채용 공고는 모두에게 알려지지 않는다

 

A가 X 회사의 면접을 보러 간다고 말했다. 매일매일 채용 공고 사이트를 드나드는데 나는 왜 X 회사의 공고를 못 봤을까? 의아했다. 다급히 어디서 공고를 봤냐고 물었다. A는 자신의 대학교 사이트에서 봤다고 말했다. 이야기를 듣던 다른 친구가 자신의 대학교 사이트에는 그런 공고가 없었다고 슬퍼했다. 나는 얼른 우리 학교 사이트에 들어갔고, X 회사의 공고가 있었음을 확인했다. 내 학교가 배제당하지 않았음에 안도했고, 곧바로 안도하는 내가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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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일보

 

사실 비슷한 일들은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볼 수 있었다. 페이스북에선 종종 선배들이 자신의 인턴 자리 이어받을 사람(후임)을 구하고 다녔다. 회사는 나름 업계에서 규모가 큰 회사였고, 그 인턴 자리를 이어받는 사람들은 학맥으로 엮인 사람들이었다. 취업의 필수 스펙으로 여겨지는 인턴의 기회는 그렇게 그들만의 리그에서 은밀하게 공유된다.

 

그러나 이런 시스템에 대한 반발은 없을 것이다. 자신들만 알고 있는 문이라는 것은 얼마나 달콤한 유혹인가. 해리포터가 9와 3/4번 승강장을 통과할 때 얼마나 짜릿한 기분이었겠는가. 게다가 자신이 어떤 문의 존재를 모른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배제당하는 사람은 자신이 배제당하는 것을 알 길이 없고, 속하는 사람은 자신의 소속에 감사한다. 시스템은 당연히 공고해져 간다.

 

그러므로 구인을 ‘하지 않는 것 같은’ 회사에 대고 “도대체 저 회사는 언제 채용을 하는 거지?”라고 묻는 건 틀릴 수 있다. 때로는 “도대체 저 회사는 어디서 채용을 하는 거지?”라고 물어보는 게 맞는 질문이다.

 

이력서는 너에 대해서만 묻지 않는다

 

학벌의 기준을 통과해 예의 ‘문’을 얻었다고 해도, 안심은 금물이다. 그 문을 통과할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니까. 이력서는 그 시작이고 핵심이다. 그리고 이력서는 나에 대해서만 묻지 않는다는 점에서 확실히 ‘문제’다.

 

한 이력서는 나에게 부모님의 나이, 학력, 직장, 직위를 물었다. 키와 몸무게, 주량을 묻는 곳도 있었고, 부모님과 함께 사는지 자취하는지를 묻는 곳도 있었다. 이게 나의 업무 능력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아니 이게 업무 능력과 관련이 있다면 그건 더 심각한 문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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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경제

 

그러나 선택의 기회는 없다. 나는 회사에서 궁금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대답을 해야 한다. 하지만 정작 내가 회사에 대해 궁금한 연봉은 알음알음으로 알아내야 한다. 연봉은 알려주지도 않으면서 희망 연봉은 적어내라고 한다. 나는 파놉티콘에 갇힌 죄수마냥 쩔쩔대며 혹시라도 실제 연봉보다 높은 연봉을 쓸까봐 내가 받고 싶은 연봉보다 낮은 금액을 기재한다.

 

부모님의 학력과 직장, 직위를 쓰는 칸은 모든 항목을 다 기재할 때까지도 비어있었다. 고졸 학력으로 대기업에 들어간 우리 아빠는 아마 높은 직위까지 올라가시지는 못 했을 것이다. 아빠는 술만 마시면 고졸의 서러움을 말했다. 그런 아빠에게 회사에서 무슨 자리를 맡고 있냐고 물어볼 수 없었다. 딸의 취직에 자신의 직위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상처받을 테니까. 고민하다  나는 ‘퇴직’이라 적었다.

 

‘학벌’은 계속된다

 

취업의 첫 단계는 채용 공고를 확인하고 이력서를 내는 것이다. 이 첫 단계에서부터 내가 나온 학교는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때로는 내 부모님이 나온 학교까지도. 첫 단계뿐만이 아니다. 아빠를 보건대 아마 사회, 혹은 회사를 나올 때까지 학교는 누군가를 배제하고 누군가를 속하게 할 것이다. 학벌주의는 사회에 들어가려고 할 때, 사회생활을 할 때, 사회를 나올 때까지 계속된다.

 

대학생이 자라면 (자연히) 직장인이 되는 줄 알았던 부모님은 대학생과 직장인 사이에 취준생이라는 어정쩡한 단계가 있다는 것에 당황해한다. 취업의 문 따위는 부수고 들어갈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자식이 문고리를 잡고 늘어져야 한다는 것에 놀라워한다. 그리고 눈치 없는 이 취준몬은 직장인으로 진화하는 것을 어영부영 미루고 있다. 정말이지

 

더러워서 못 해먹겠네” 하며.

 

글. 콜드브루 (gocoldbrew@naver.com)

특성 이미지 출처 : https://redneckpriest.com/2008/05/13/closed-doo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