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나를 왜 낳았어?”

20여 년 만에 용기 내어 물어본 건데, 엄마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네가 생겼으니 낳았지.” 허무함에 힘이 빠져버릴 뻔했지만 그래도 다시 물었다. “그럼 결혼은 왜 했어?” 그제야 날 한 번 쳐다보며 하는 말이 “네가 생겼으니까 결혼했지.” 아니 그러니까 스물두 살 지금의 내 나이 때 뜻하지도 않게 덜컥 생겨버린 아기를, 그래서 평범한 대학생이던 당신의 삶을 전복시켜버릴 그 아기를, 나를, 왜 지우지도 않고 결혼해서 낳았느냔 말이다.

“낙태라니. 무슨 그런 소리를 하니. 나는 절대 그러면 안 되는 줄 알았어.”

그렇구나. 나는 어떤 대단한 대답을 기대했던 걸까.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엄마는 “네 동생은 계획해서 낳았어” 하며, 갑자기 아들이 얼마나 갖고 싶었는지를 이야기하느라 내 질문은 이미 잊어버리신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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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이기 전에 꿈많은 여성이었던 그녀를 위해 이 글을 쓴다 ⓒtvN 응답하라 1988

그녀에게 애초에 선택권은 없었다

 

“절대 그러면 안 되는” 게 맞다. 우리나라에서 낙태는 불법이다. 엄마에겐 나를 낳아 키우는 수밖에는 다른 (합법적인) 선택지가 없었다. 그래서 잘 다니던 4년제 국립대를 자퇴하고 나와서 결혼을 했다. 그리곤 아빠가 일하던 강원도 산골짜기 동네의 좁은 집에서, 말도 못 하는 어린 아기인 나랑 단둘이 온종일을 보냈다. 그래도 어쩌면 엄마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아빠는 예의 ‘책임지는’ 남성이었고, 80만 원 안팎의 월급으로나마 먹고살 수는 있었기 때문이다.

더 문제는, 우리 엄마와는 다르게 어쩔 수 없이 불법을 선택한 여성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병원을 수소문해 차가운 불법 수술대에 누워, 불법의 몸이 되었다. 이렇게 불법을 선택하는 여성들이 한 해 2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물론 ‘어쩔 수 없이’가 아닌 이들, 그러니까 저 가부장적 시혜에 다름없는 ‘책임’을 거부하고 기꺼이 낙태를 선택한 여성들도 그 불법에 포함되는 것만은 어쩔 수가 없다. 그것은, 일차적으론 여성에게 가해진 ‘출산의 의무, 가족 유지의 의무’라는 윤리적 억압과 ‘출산 시의 불이익’라는 실제적 억압, 이차적으론 그 억압을 가까스로 뚫고 나온 ‘신체와 생활에 대한 최소한의 자기 결정’마저 용납치 않는 제도적 징벌의 야만스런 결과물이다.

2011년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이 시행한 ‘전국 인공임신중절 변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낙태 사유에 대한 응답(중복응답)으로 ‘원치 않는 임신’이 50.7%, ‘미혼’이 26.4%, ‘경제상 양육 힘듦’이 17.9%, ‘사회 활동 지장’이 8.5%에 달한다. 미혼 상태에서 원치 않는 임신을 했는데, 출산하면 취직을 하거나 직장 생활을 지속하기는 어렵고, 아기를 낳아 기르기에는 돈도 너무 많이 들기 때문에 낙태를 했다는 것이다. 과연 그녀들의 사정은 개인적이기만 한 것일까? 낙태죄가 ‘어떤’ 여성을 구속할 것인지는 너무나 명백하다. 그것은 물론 모든 여성을 구속할 것이나, 어리고 가난할수록 ‘그녀’의 삶은 더 고통스러워질 테다.

낙태는 줄지 않고 여자만 더 죽었다

 

논란의 의료법 개정안이 정말로 적용된다면, 이 여성들은 그 어떤 병원에 가서도 불법 낙태 수술을 받을 수 없게 된다. 낙태 수술을 포함한 ‘비도덕적인 진료행위’를 한 의료인에 대한 처벌이 최대 ‘자격정지 1년’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자격정지 1년이면 사실상 병원은 문을 닫아야 하므로, 의료법 개정안이 입법되면 앞으로 모든 의료인은 낙태 수술을 거부할 것이라는 말도 있었다. (*현재 보건복지부는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임신중절수술’을 포함하는 것에 대해 재검토 중이라 밝혔다. 여성단체들과 산부인과 의사들의 반대 여론에 의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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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ite Daily

 

폴란드의 ‘검은 월요일’ 시위가 정부의 낙태 전면 금지법 개정 철회 선언을 끌어낸 것이 지난 3일이다. 이날 폴란드 여성들은 옷걸이를 들고 거리로 나왔다. 옷걸이는 자가낙태를 의미한다. 낙태가 불법화되었을 때 폴란드의 여성들이 가정에서 스스로 낙태를 하기 위해 옷걸이를 사용했다고 한다. 낙태를 엄격하게 금지할수록 출산율이 증가하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이고, 모성 사망률만 증가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안전하지 못한 불법 수술을 받거나 스스로 낙태를 시도하다가 여성들이 죽음에 이른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의 이번 의료법 개정 시도는, 아니 그전에 이 시도를 가능케 한 우리 사회의 ‘낙태죄’ 의식 자체가, 여성들의 손에 옷걸이를 쥐여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정말 ‘저출산만’ 해결되면 되나요?

 

낙태금지법은 국가가 출산정책으로 여성의 몸을 통제해온 유구한 역사와 관련이 깊다. 중국에서는 산아제한정책을 통해 여성들에게 불임수술과 낙태를 강요해왔고, 루마니아 같은 나라에서는 출산장려정책으로 여성들이 5명의 아이를 임신하도록 강요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1960년대부터 “덮어 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둘도 많다” 등의 표어를 걸고 산아제한정책을 시행했고, 2000년대에 이르러선 다시 출산장려정책을 펼쳐왔다. 1980년대부터는 남아선호사상이 강해지면서 여아를 임신한 경우에는 낙태를 강요받기도 했다. 여성의 몸이 여성의 소유가 아니라 국가의 소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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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나은복지세상

1978년 노르웨이에서 낙태 허용 범위가 ‘사회경제적 요인으로 양육이 어려운 경우’에서 ‘여성이 요청할 경우’로 확대되었을 때 오히려 낙태율은 낮아졌다. 노르웨이 여성들은 이전보다 ‘낙태를 선택하는데 더 많은 고민이 되고 더 선택하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사회경제적 조건에서 벗어나 여성이 온전히 선택의 주체가 되었을 때, 여성은 자신의 신념과 가치에 입각한 온전한 자신의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낙태는 여성의 이기심과 윤리 부재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복잡한 논의를 제쳐 두더라도 여성들이 낙태하지 않고 아기를 낳아 기르게 하고 싶다면, 혹은 원치 않는 임신으로 지워지는 태아의 권리를 지키고 싶다면, 여성에게 출산과 육아가 부담되지 않는 사회적 환경을 만드는 게 최우선이다. 괜히 여성의 윤리의식을 비난하기보다는 말이다. 그게 상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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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가 낳을 건가요 ⓒ연합뉴스TV

 

 
반짝반짝 빛나는 삶을 위하여

 

“낙태금지법 덕분에 반짝반짝 빛나는 제가 태어났다구욧!”이라고 말할 줄 알았다면 유감이다. 반짝반짝 빛나기는 무슨, 먹고 살 직장 구하기는 어렵고, 그렇게 돈 벌어도 내 한 몸 누일 집 얻기도 힘들다. 이미 태어난 사람들의 삶은 이토록 불안한데, 낳으라는 말은 왜 이렇게 쉽게 하는가. 아니 그렇다고 내가 괜히 태어났다고 원망하는 건 아니고. 내가 날 낳아준 어머니께 감사하는 마음과 별개로 낙태의 여부는 국가가 아닌 여성 스스로가 숙고해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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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스페셜 ‘엄마의 전쟁’

 

어쩌면 나보다 더 반짝반짝 빛났을지도 모르는 젊은 엄마의 인생에 대해서 가끔 생각해본다. 태아의 생명만큼 여성의 삶도 소중하게 생각해주는 사회였다면 우리 엄마는 더 행복했을 것이다. 나를 낳고도 하고 싶은 공부 계속하고, 좋은 직업을 얻어 커리어를 쌓았을지도 모른다. 국가가 낙태를 금지하는 대신 공공보육 인프라에 신경 썼다면, 육아나 교육이나 노동의 조건이 평등한 사회였다면, 나아가 여성이 자기 자신에 대한 권리를 충분히 전개할 수 있는 사회였다면, 모든 여성은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10월 15일, 보신각 검은 시위에서 사회예술가 홍승희 씨의 발언을 되새겨본다. “자궁은 누가 함부로 간섭할 수 없는 나의 것이지 공공재가 아니다. 여자는 원치 않는 임신을 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 예비신부, 엄마이기 전에 인간이다.

 

글. 다정(tsb0231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