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일 때문에 이 일이 있다” 많은 것을 설명해주는 문장입니다. 명확한 원인과 결과를 제시해 주는 말이니까요. 그러나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그렇게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만남’이라는 시작이 명확해도, 그 결과의 모양새는 복잡하지요. 하나하나의 ‘끝’에 대해 설명할 길도 넘쳐납니다. 우리는 여러 갈래의 결과에 대하여 얘기해보고자 합니다. 시작부터 끝까지의 길을 되돌아보고자 합니다. 계속 꺼내보고 싶은 것부터, 덮어두고 싶은 것까지. 그것은 우리 [人과관계]의 성찰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아직 끝나지 않았을지도 모르죠.  

 

“헤어지자”

“왜?”

“내가 이제 너를 안 좋아해.”

 

1.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이별 통보, 잠시 한숨, 이해하기 힘든 순간의 머뭇거림, 힘들게 내뱉은 ‘왜’와, 그리 힘들어 보이진 않는 대답까지. 이별은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았다. 애인, 아니 전 애인의 목소리는 담담하기만 했다. 짧고, 담담하고, 힘든 시간 끝에 전화기를 내려놓는다. 그리고 울었다. 오랜만에 아주 찌질하게 울었다. 하필 술자리여서, 애꿎은 분위기만 순식간에 망가졌다. 그렇게 파괴적으로 울면서도 알았다. 아무리 울어도 바뀔 건 없겠지. 그렇게 애인과 헤어졌다.

 

우리는 꽤 깊은 관계였다. 오래 알고 지낸 사이였고, 그만큼 오랜 친구였다. 사귀기 전에도 나는 우리 사이를 ‘인생의 친구’니 하는 오글거리는 말로 곧잘 포장하고 다녔다. 그 긴 관계는 200일 남짓한 연애로 순식간에 깨졌다. 오랜 관계의 짧은 파탄. 그런 생각이 들어 더 슬펐을까. 한동안, 이별에 시달리는 다른 많은 사람처럼 기묘한 감정 상태를 경험했다.

 

2.

미운 감정이 솟구쳐 오르다가도, 미안함에 다시 슬프고, 다시 미워지고, 미안하고, 슬픔은 돌고 또 돌고, 계속, 감정은 바뀌어서 공허하고. 윤종신, 버즈, 브라운아이즈, 임창정 등은 아주 정석적인 절차였다. 찌질함이 넘쳐나는 이별 발라드는 제법 훌륭한 감정의 배출구이자, 또 공급원이었다. 그러나 한 명의 임창정이 되어 침대를 헤엄치면서도, 한편으로는 헤어지자는 애인을 ‘질척하게’ 붙잡지 않은 것에 대해 스스로 대견하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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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많이 들었던 노래는 임창정 노래였다 (으악) ⓒNH EMG

 

‘대견스러움’은 왜 헤어졌는지 반추하는 과정에서 나온 자기보호 심리였을까? 사실은 그를 원망했던 것 같다. 이후, 나는 친구들에게 얼마나 전 애인이 ‘매정한지’를 일일이 늘어놓고 다녔다. 그러니까, 전 애인은 내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나쁜 사람이 됐다. 친구들은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전 애인이 잘못했네” 식의 위로를 건넸다. 연애가 어땠는지는 상관없었다. 연애 전 관계가 어땠는지도 상관없다. 그것을 돌아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갑자기 차인 것’만으로 동정받는 ‘착한 사람’으로 남고 싶었다. 차인 건 나니까, 불쌍한 건 나고 그는 나쁜 사람이야, 라는 식으로 자기 위로를 하고 있었다.

 

3.

이제는 헤어지고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연수로 따지면 3년이 지났다. 그 시간, 그와 나 사이는 여전히 요원하다. 긴 요원함 속에서 바뀐 것들도 있다. ‘친구’로 연결돼있던 페이스북은 ‘친구추가’로 바뀌었고, 필사적으로 ‘착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나도 바뀌었다. 이제 와 그를 생각할 때 드는 생각은 미안함과 두려움뿐이다. 이건 마치 끊어진 관계의 끈을 테이프로 칭칭 감아 붙잡고 있는 것과 같다. 그 테이프의 이름이 미안함과 두려움일 것이다.

 

술자리 안줏거리로 그를 씹고 뱉던 때를 생각한다. ‘나쁜 너’를 보내던 ‘착한 나’의 모습을 생각한다. 얄팍한 위로에 젖어있던 때, 우리 관계의 끝에 내가 느낀 감정은 미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 미워하던 감정이 미안함과 두려움으로 뒤집혔다는 점에서 이건 참으로 민망한 참회 서사다. 그래, 지금 나는 그때를 버리지도, 흘리지도 못하고 있다. 3년을 공들여 덧붙인 테이프(미안함과 두려움)는, 술자리 농담으로 훌훌 털어내기도 “그땐 그랬지”하며 스리슬쩍 버려내기도 마땅치 않다. 그렇게 3년 전 ‘착한 사람’의 찌질한 원망을 전복시킨 건, 그리고 그 안에다 미안함과 두려움을 박아 넣은 건, 페미니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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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살인사건은 하나의 계기였다 ⓒ 뉴시스

 

페미니즘을 접한 후, 내 과거의 많은 부분이 부끄러운 것, 혹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으로 인식됐다. 이를테면 페이스북의 ‘김치녀’ 테러를 보며 낄낄거리던 과거, 불평등한 노동이 왜 문제인지 생각할 필요도 없던 명절, 짝꿍인 여자애에게 ‘드세다고’ 핀잔을 주던 학창시절 같은 것들. 페미니즘은 무의식에 젖어 있던 모든 과거를 한꺼번에 재편해내는 힘을 가졌다. 그것은 괴로운 인정의 과정이고, 그 속에선 과거의 작은 사건 하나하나마저 생경해진다. 당연히, 연애도 그렇다.

 

4.

고백건대 내 애인이 ‘여성’스러웠으면 했다. 애교가 많고, 치마나 블라우스 같은 옷을 입길 바랐다. 단발인 애인이었지만, ‘청순’하다는 긴 머리를 가끔 그려보기도 했다. 내조하듯 챙겨주길 바라기도 했다. 예를 들면 도시락이라든지 사소한 연락 등등. 전 애인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바라는 ‘여자’의 모습에 가깝지 않았다. 그럴 생각도 없었다. 애교도 없었고, 연락을 먼저 하지도 않았고, 치마보다는 바지를 많이 입었다. 그러니까, 나는 그에게 나만의 환상 속 성 역할을 부여한 셈이다.

 

물론 그 성역할은 나에게도 적용됐다. ‘오다 주웠다’ 같은 이상한 츤데레에 환상을 가졌고, 힘든 일이 있어도 얘기하지 않아야 했고, 감정표현을 많이 하면 안 된다고 알았고, 데이트할 땐 무조건 내가 계산해야 한다는 시대착오적 발상에 시달렸으며, 외려 그 모든 것들에 스스로 부담을 느끼기도 했겠지. 지금에서야 알았지만, 나는 참 맨박스 깊은 곳에 앉아있었다. 페미니즘은, 이렇게 내 연애의 비루했던 면면을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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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판타지를 가지고 살았다 ⓒ tvN

 

그리고 짧은 이별을 다시 생각해 본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이별 통보, 잠시 한숨, 이해하기 힘든 순간의 머뭇거림, 힘들게 내뱉은 ‘왜’를 회고한다. 원망했던 이별의 이유엔, 나의 그 폭력적인 잣대도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헤어지던 날 나쁜 건 애인이고 피해자는 나였지만, (그렇게 생각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내 연애에서 나쁜 사람은 나다. 다분히 폭력적인 맨박스에 나는 자리하고 있었고, 몰랐다고 해서 내 인식이 정당화되지 못한다. 결국, 연애를 파경으로 몰고 간 것은 나다. 3년 전에도 알았으면 좋았겠지만, 불행하게도 지금에서야 알게 됐다.

 

5.

나에게 페미니즘은 성찰의 계기가 됐다. 관계를 하나 잃고 나서야, 다시 돌아볼 수 있게 됐다. 알지 못했다면, 평생 생각하거나 돌아보지도 못했겠다. 그 성찰이 페미니즘이 아니더라도 가능했더라면, 더 일찍 했더라면 어땠을까?

 

맺어온 모든 관계를 떠올려본다. 전 애인에게 그랬듯이, 어떤 방식으로든 관계의 끈을 헐렁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을까? 언제 어디서든 폭력적인 잣대는 나타나기 마련이다. 교수님, 가족, 친구, 반려동물 모두에게 찾아가 물어볼 수 없는 노릇에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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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급주의

 

관계는 어렵게 맺어지고 쉽게 끊어진다. 그렇게 깊다고 생각한 사람과도 하루아침에 끊어져 버린다. 관계를 표현할 때 ‘끈’이라는 표현도 그런 위험함과 약함에서 비롯된 표현 아닐까. 끈이 주는 인상은 어딘지 모르게 약하고 위태롭다. ‘끈이 끊어진다’는 말은 어느새 더더욱 으스스하고 허무하다.

 

이런 조심스러움, 그것은 두려움이다. 또다시 끊어질 어떤 관계에 대한, 그리고 그것이 나의 무지와 폭력으로부터 시작될지도 모른다는 데에 대한 무서움 말이다. 어렵게 맺어지고, 쉽게 끊어지는 관계. 그래서 더 조심스러워야 한다. 나에게 이제 모든 관계는 ‘취급주의‘인 셈이다.

 

글. 익명(editor@goham2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