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_내_성폭력 고발이 파장을 빚고 있다. 박범신 소설가, 박진성 시인을 시작으로 문단 인사들에 의한 성폭력 사건들의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그 흐름 속에서 트위터 계정 ‘고발자5’가 등장했고, 또 다른 B시인의 성폭력 사실을 고발했다. 예고와 시창작스터디에서 고발자와 사제지간으로 만났던 배용제 시인이다.

 

‘고발자5’의 증언에 따르면 배용제 시인은 “손금만 봐도 질 모양과 보지 모양을 알 수 있다”, “네가 문학에서 벽을 느끼는 건 탈선을 하지 않아서 그렇다” 등 성희롱 발언을 일상적으로 일삼았으며, 몇몇 학생을 그의 창작실로 불러 스킨십을 시도했다.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학생은 의도적으로 수업에서 배제시켰기 때문에 학생들은 반발을 할 수도 없었다. 또한 선생으로서의 권위를 악용하여 강제 성관계를 맺고, 학생과 학부모를 상대로 금품을 갈취하기도 했다고 ‘고발자5’는 밝혔다. 모든 고발 내용은 트위터 계정 ‘고발자5 @third_rate_kind’에서 읽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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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발자5’ 트위터 화면 갈무리

 

문단을 시작으로 다양한 집단에서의 성폭력 경험 폭로가 이어지고 있지만, 그것은 여전히 극히 일부일 뿐이다. 폭로된 사건들조차 문제의 해결에 가닿았다고 하기엔 너무도 부족하다. 아직도 폭로는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녀들은 어떤 심정이며 우리는 어떻게 이 폭로들을 바라보아야 할까. ‘고발자5’의 고발 경험에 대해 직접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신상 보호를 위해 인터뷰 내용은 5명의 인터뷰이들의 답변을 종합하여 구성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Q. 고발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A. 우리가 겪은 게 성폭력이라는 것을 깨달은 건 작년 즈음이다. 처음에는 한 친구가 배용제 시인과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고, 다른 친구들도 같은 경험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때 친구들의 피해 사실을 모으고 법적으로 해결을 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집단고소를 준비했었으나 여러 가지 어려움에 부딪혀서 무산됐었다.

그러던 중 트위터에서 00_내_성폭력 해시태그가 떴다. 해시태그를 본 한 친구가 작년에 (성폭력을) 공론화 시키고 싶어 했던 친구들에게 연락했다. 다시는 우리와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랐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다시 용기를 내야한다고 생각했다.

 

Q. 작년에 집단고소를 준비했었던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듣고 싶다.

A. 처음 친구들과 성폭행 사건을 신고해보자고 의견을 모았을 때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하는 월요법률상담을 받았다. 그곳에서 성폭행 사건의 특성상 증언만으로도 시작이 가능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집단의 이름으로 고소가 되는 건지, 진술은 어디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질문 목록을 꽤 많이 적어서 변호사를 찾아갔었다. 그런데 변호사를 만나보니 증거가 없이는 고소가 어렵다고 하더라. 그렇게 상담이 끝나버렸다. 같이 용기를 낸 우리 모두 크게 무기력감을 느꼈고, 공적으로는 이 일이 해결될 수 없겠다 생각했다.

결국은 각자 연락을 끊는 것에서 끝내는 것이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때는 ‘문단’이라는 벽이 높아 보였고, ‘성폭력 피해자’, ‘스승을 배신한 학생’이라는 낙인이 두려웠다. 아직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아이들이었기 때문에 스스로 힘이 없다고 느꼈고 배용제 시인의 행동은 단지 ‘도의적’으로 문제가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제는 페미니즘이 사회적으로 크게 대두되었고, 우리도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점차 깨달았지만 그 때는 ‘성폭력에 대해 우리 자신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지 않을까’ 자책했었다. 내가 그 때 강경하게 말했더라면, 이건 문제가 있는 거라고 내가 더 빨리 알아차렸더라면, 알아차렸는데도 내가 숨어버려서 이렇게 된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Q. 고발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5명이 모여서 ‘고발자5’라는 트위터 계정을 새로 개설하여 폭로를 진행했다. (폭로 이후 집단고소 준비를 함께 했던 습작생6이 합류했다.) 이런 방식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

A. 우리의 신상정보가 공개되는 것이 두려웠다. 만약 이 공론화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가해자는 처벌받지 않고 우리의 신상만 공개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처음 트위터에 글을 올릴 때 배용제 시인과의 사건 외 개인적인 부분은 의도적으로 왜곡하여 기재하기도 했다.

또 다른 이유는 따로따로 자신의 계정에 올리는 것보다 배용제 시인을 고발하는 하나의 계정을 통해 한꺼번에 고발하는 것이 공론화 면에서 도움이 될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우리 계정을 통해 사람들이 배용제 시인에 얽힌 사례들을 모아보기 좋다. 이렇게 하니 얻게 된 의외의 효과 중 하나는 (배용제 시인에 의한) 다른 피해자들이 도움을 청할 곳이 분명해졌다는 것이다. 우리의 폭로 이후에 많은 제보가 들어오고 있다.

 

53024-4 ⓒ ‘고발자5’ 트위터 화면 갈무리

 

Q. 트위터 리트윗이 2200을 넘었고, 기사화되기도 했다. 지금 심정은 어떤가.

A. 예상보다 큰 관심을 받게 되어서 놀랍다. 이렇게 파급력이 있을 줄 몰랐다. 그만큼 그의 죄질이 나쁜 것이었음을 다시금 실감했다.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참 많아 감사하고 큰 위안을 받는다. 이렇게 기사화도 되고 실시간검색에도 이름이 올랐으니 우리의 다른 목표였던 다른 피해자를 막는 것에도 영향이 있지 않을까 싶다.

 

Q. 고발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어려움에 관해 이야기해달라.

A. 한 번도 이런 일을 겪어본 적이 없었고, 우리는 여전히 어리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 하고,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글을 올리거나, 누군가에게 연락을 할 때마다 신중해야 했다. 끊임없이 우리 서로에게 물어 의견을 나누고,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하며 어려움을 극복했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 큰 힘이 되었다.

바뀌는 게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나를) 힘들게 했다. 많은 관심과 응원을 받았지만 끝까지 배용제 시인이 바뀌지 않는다면, 문단 속에서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불안하고 두려울수록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야겠다는 생각으로 버티고 있다.

 

Q. 혹시 고발 이후에, 공론화 과정에서 겪었던 문제가 있다면 이야기해달라.

A. 기자들의 자극적인 헤드라인 때문에 2차 피해를 보고 있다. 아침에 ‘배용제’가 실시간검색어에 떠있는 것을 보고 눌렀다가, 나에게 한 성희롱 발언을 그대로 헤드라인으로 써 깜짝 놀랐다. 기사화해주시는 것은 감사하지만 기사를 쓰는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정신적, 육체적 상처에 대해 더 생각해주셨으면 한다.

 

Q. 배용제 시인으로부터 개인적으로 사과하는 내용의 문자를 받았다고 들었다. 어떤 내용이었고 그 문자를 받았을 때 기분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A. 고발 내용을 올린 지 열두 시간 쯤 되었을 때, 고발에 참여한 친구 중 한 명에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처음에는 받지 않았으나 “나 때문에 그렇게 상처가 많았니?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하고 사과하마”라는 내용의 문자가 왔다. 그리고 한 시간에 걸쳐 전화시도를 했다.

피해자에게 받지 않으려는 의사가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락을 계속 시도했다는 것 자체가 압박으로 다가왔다. ‘고발자5’ 계정에 개인적으로 연락하는 일에 대한 불쾌감을 분명히 표시했음에도 한 차례 문자가 더 왔으며, 제 3자에게 피해자의 연락처를 함부로 공유한 정황도 밝혀졌다. 여섯명 전부도 아닌 한 명에게만 연락을 지속적으로 연락을 취하는 저의도 이해하기 어렵다.

가해자와 개인적으로 연락을 취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아마 용서할 수 없을 것 같다. 그가 올린 성의 없는 사과문을 보면서 그의 사과에 진정성이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계속해서 다른 피해자들의 사례 제보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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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제 씨의 사과문에 대한 저희의 입장입니다” ⓒ트위터 ‘고발자5’

 

Q. 이 사건이 어떻게 해결되기를 바라는가.

A. 솔직히 잘 모르겠다. 각자마다 원하는 방향이 조금씩은 다르다. 누군가는 배용제 시인이 법적 처벌을 받기를 원하고, 누군가는 그가 문단에서 떠나기를 바란다. 또 진정한 사과를 바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과는 기대조차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단 한 가지 공통된 바람은 그저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지 않는 것이다. 이번 기회로 문학을 다루는 공간으로서 있는 문단이 권위주의와 남성우월주의적 인식으로 물들어있다는 게 이번에 명백히 밝혀졌다고 생각한다. 계속해서 스스로가 속해있는 공동체에 질문을 던지는 태도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 같다.

 

글. 다정 (tsb0231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