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 시국선언이 줄을 잇고 있다. 최순실 씨가 대통령 연설문을 사전에 받았다는 의혹이 보도된 후(24일, JTBC), 26일 이화여대 등을 시작으로 많은 대학이 시국선언을 했거나 시국선언을 준비 중이다. 교수가 주체가 된 것도 있지만 대부분의 시국선언은 학부 총학생회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이러한 흐름 와중에, 시국선언 자체가 학생사회에서 많은 논쟁을 낳고 있다. 학교별로 세부양상은 다르겠지만, 논쟁의 주요한 포인트 중 하나는 ‘운동권’에 대한 것이다. 운동권 단체가 시국선언문 작성 과정에 참여하거나, 시국선언문에 총학생회와 함께 이름을 올렸다는 점을 지적하는 이들이 나타났다. 이른바 ‘순수’하지 못한 단체가 섞였다는, 그리하여 시국선언이 ‘불순’한 것이 되었다는 비판이다. 고려대에서는 ‘백남기’가 포함된 시국선언문 초안에 대한 비판 여론이 촉매가 되어 총학생회장단을 탄핵해야 한다는 논의까지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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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에선 ‘불순’한 시국선언문에 대한 반발로 총학생회장단 탄핵이 논의됐다 ⓒ고대신문

 

강박적 순수의 시대

 

고려해야 할 건 큰 정치적 사건이나 이로 인한 시위‧집회가 있을 때마다 반복되었던 ‘운동권 혐오’다. 순수에 시달리는 어떤 이들은, 정부를 향해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데엔 동의하지만 ‘대통령이 물러가라’, ‘청와대로 가자’는 구호는 “너무 나간 것”으로 느낀다. 시위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시위대의 맨 앞에서 커다란 깃발을 흔드는 이들과 자신을 분리하고 싶어 한다.

 

“운동권 때문에 시국선언이 불순해졌다”고 말하는 이들이 지칭하는 운동권이란 무엇인가. ‘권’과 ‘비권’을 구분하는 행위 자체가 무의미할 만큼 운동권 총학을 찾아보기 힘든 와중에 이런 비판은 일차적으로 ‘노동자’, ‘세월호’, ‘백남기’의 이름을 한 학내 단체들을 향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시국선언에 최순실 이외의 다른 ‘정치적’ 사안을 함께 포함하는 것을 이상하지 않다고 느끼는 자들이라면 누구나 운동권과 불순의 테두리 안에 갇혀버린다.

 

결국 운동권이란 실제로는 구성원 재생산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위태롭지만 이런 논란에 이르러서는 우리 학교 학생들만의 ‘순수’한 시국선언을 정치적 사안과 엮으려 애쓰는, 그리고 기어이 영향력을 행사하고야 마는 “비선 실세”가 된다. (실제로 운동권 단체가 시국선언문 초안 작성에 참여한 사실이 알려진 모 대학에선 “비선 실세를 비판하면서 총학이 비선 실세를 두고 있다”는 조롱이 있었다) 이렇게 주장하는 이들은, 그러나 시국선언 그 자체가 매우 정치적인 행동이라는 것을 종종 잊어버리는 것처럼 보인다.

 

불순함에 대한 비판(혹은 비난)이 자주 대표성의 문제와 엮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 학교 이름을 걸고 나가는 시국선언에 불순한 운동권이 섞여 있으니 그 시국선언은 학생들의 의견을 대표할 수 없고, 총학생회는 학생들의 의견도 제대로 대표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듣는 것이 당연하게 된다. 하지만 운동권의 존재를 비판하기 위해 이들이 가져온 ‘대표성’의 수사는 결과적으로 총학생회를 만장일치 없이는 어떤 정치적 입장 표명도 할 수 없는 무의미한 기구로 만들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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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학우들의 의견만을 표출할 수 있을 때만 시국선언을 하겠다고 밝혔다 ⓒ부경대학교 총학생회

 

총학생회의 권과 비권을 따지는 것이 의미 없는 상황에선 총학생회가 운동권 혐오를 발판 삼아 스스로 입을 막기도 한다. 일부 대학의 총학생회는 시국선언이 필요하다는 학생들에 요구에 ‘외부단체’와 ‘정치적 중립’을 언급하며 사실상 시국선언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비치기도 했다.

 

대학생은 구국의 지식인이 아니다

 

이 모든 논쟁의 기저엔 대학생의 시국선언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의 문제가 있다. 시국선언은 본래 교수나 재야인사 등 지식인들이 중심이 되어 진행된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4‧19 혁명과 같은 역사적 순간에 시국선언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시국선언의 주체가 당시 사회에서 차지하던 지위나 위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렇다면 지금 대학가에서 우후죽순처럼 터져 나오는 시국선언들은 과거의 시국선언과 같은 무게를 지닐까. 결코 그렇지 않다. 2016년의 대학생을 ‘한국 사회의 지성인’, ‘엘리트’라는 이름으로 묶기엔 큰 무리가 있다. 하지만 대학생은 지성인이고 엘리트며, 그렇기에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사회 변화와 무관하게 남아 있다. 일종의 지체 현상이다. 서울대 총학생회는 시국선언문에서 시간적 선후에 대한 고려 없이 ‘선봉’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이것은 국내 최고의 명문대라는 서울대 재학생들이 가지는 모종의 엘리트의식과 무관하지 않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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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뉴스

 

게다가 현재 진행 중인 최순실 게이트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파장이 큰 정치적 사안이다. 대부분이 ‘최순실 게이트는 문제’라는 주장에 공감하고 있다. 한마디로 대학생으로서 목소리를 얹지 않으면 민망해지는 상황이다. 그 과정에 (자신이) 주요하게 참여하고 싶진 않지만 운동권이 “끼어들어” 순수한 시국선언이 되지 못하는 것도 싫어하는 일련의 심리가 지금의 혼란을 낳았다.

 

제목에서 여성혐오적 워딩을 사용한 시국선언문을 게재했다가 후에 수정한 모 대학 사학과 학생회나, 타 대학의 시국선언문을 표절한 모 대학 총학생회의 사례는, 지금의 시국선언들이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라서’, ‘남들 다 하니까’ 하는 것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뚜렷하게 시사한다. 덧붙여 현시점에서 대학생의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 역시 학생사회 내부에서 이뤄져야 한다.

 

글. 아레오(areoj@daum.net)

특성이미지. ⓒ소설 ‘상실의 시대’ 표지(문학사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