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삶을 살면서도 우리는 하나 이상의 유행을 겪는다. 그러나 그저 경유할 뿐, 마냥 즐길 수 없는 유행도 존재한다. ‘블랙20 다이어리’는 그런 유행을 들여다본다. 어딘가 불편한, 강제된 듯한 유행을 아카이빙한다.

 

케이블 채널에서 자주 방영해주던 영화가 있다. 츠즈미 유키히코 감독의 2LDK다. 2LDK는 일본의 주거 공간을 표현하는 단어로, 풀어쓰면 방 두 개와 거실, 부엌, 식사룸이 딸린 집을 일컫는다. 주인공인 노조미와 라나는 같은 소속사에 몸담은 배우지망생과 무명배우다. 그들은 어쨌든 연예계 지망생이라는 공통점으로 묶여 함께 2LDK에 살아가지만, 전혀 다른 성격을 갖고 있으며 어쩐지 잘 맞지 않는다. 전반부 내내 위태위태한 감정선을 유지하던 둘은 후반부에 폭발하며 서로에게 물리적 폭력을 행사한다.

 

내가 누군가와 집을 셰어하기 전까진 그 감정들이 잘 와 닿지 않았다. 대놓고 말은 못하고 속으로 비웃기만 하다가 어느 날 어떤 계기에 의해 폭발해서는 서로에게 톱을 들이밀고 전기충격을 가한다니. 괴상했다. 하지만 낯선 도시에서 낯선 사람과 집을 쉐어한지 반년이 넘어가는 지금, 돌이켜보니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바로 영화엔 한 번도 얼굴을 보이지 않는, 둘의 소속사 사장이다.

 

노조미와 라나가 사는 ‘2LDK’는 소속사 사장이 자신의 전 애인에게 제공했던 집이다. 나잇대가 비슷하니까, 배우 지망생이니까, 여자니까, 뭐 이런 정도의 공통점으로 그들은 같은 집을 소개받고, 생활하게 된 것이다. 삶이 비슷하다 하여 공간을 나누고, 생활을 나누는 것이 쉬운 건 아니다. 그럼에도 그 둘은 녹록지 않은 도시 생활에 밀려 함께 살아야 했고, (사실 수입이 거의 없는 무명배우와 지망생에게 선택지가 얼마나 있을까) 파국은 어쩌면 필연이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서울에서 ‘집’ 아닌 ‘방’ 구하는 것조차 어려웠던 나는 그 어려움에 밀려 셰어하우스를 선택했고, 그 결과 생활리듬, 돈, 건강 모든 게 엉망이 됐다.

 

왜 셰어하우스에 사나

 

셰어하우스에 대해 불평하기 전에, 누가 너보고 거기에 살라고 강요했냐는 볼멘소리를 들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아니 청년들에겐 선택지 자체가 별로 없다.

 

청년 임금 상승률에 비해 주택 비용은 더 높게 증가한다. 국토연구원 이수옥 선임연구원의 ‘청년 주거문제 완화를 위한 주택정책 방안’에 의하면, 청년 임금 상승률은 2013년 기준 1.8~1.9배 상승한 데 반해 주택 가격은 2.2배, 전셋값은 2.3배 뛰었다고 한다. 이런 현실에서 ‘적절한 가격’의 월세방을 찾다 보면 고시원에 살거나 주민기숙사를 배정받는 것이 그나마 나은 선택지가 된다.

 

그마저도 생활은 여의치 않다. 주민기숙사는 경쟁률이 상당해서 자리가 나지 않고, 세면대가 없는 화장실이나 어떤 가구 옵션도 딸리지 않은 방 등이 현실적인 문제가 된다. 고시원은 모두가 알다시피 공간이 좁고 시끄러우며(옆 방 소리가 다 들린다) 도난 위험이 높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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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 1실 고시원 ⓒ세계일보

 

기본적인 공간이 보장된 원룸은 내가 가진 돈으로는 월세나 보증금을 감당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런 ‘현실’에서 각종 기업형 셰어하우스의 SNS 계정이 나타난다. 자신들이 모든 해결책을 가지고 있는 양 말한다. 청년 주택난 기사를 링크하며 자기들은 그 문제의 가해자가 아닌 듯한 태도를 보이고, “같이의 가치를 짓는다”는 식의 속 편한 소리만 한다.

 

비용절감? 글쎄….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대부분의 셰어하우스는 기업이다. 이윤을 추구하고 손해를 최소화하는 기업. 그럼에도 그들은 말한다. 비용은 낮추고 삶의 질을 높여 청년들의 주택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협동조합도 아닌데 말이다. 나도 처음엔 그게 맞는 줄 알았다. 보증금은 고작 두 달 치 월세에, 방뿐만 아니라 공용공간이 있는 ‘집’에서 살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 모든 기대는 부질없는 것이었다.

 

보증금이 저렴하다는 건, 순전히 소비자의 관점에서 봤을 때 ‘급하게 집을 구하는’ 경우에만 좋았다. 몇백에서 몇천의 목돈이 없는데 본가에서 분리되어야 할 상황 말이다. 보증금은 어차피 계약 기간이 끝나면 돌려받을 돈이란 얘기다. 하지만 월세는 달랐다. 정말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면 월세가 저렴해야 하는데, 월세는 웬만한 원룸 월세 그대로다. 내가 관리비 포함 월 44만 원을 지불한 셰어하우스는, 정확히는 내 ‘방’은 고시원과 다름없었다. 공용공간은 어땠느냐고? 부엌과 거실 일체형에 식탁 의자는 단 하나뿐이었다. 식탁에서 밥을 먹으면 바로 옆에 있는 화장실에서 하우스메이트가 일 보는 소리가 다 들릴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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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았던 셰어하우스

 

그곳만 그렇게 열악한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분명한 건, 시설이 좋은 셰어하우스는 차라리 그 월세로 원룸에 가는 게 나을 만큼 여러 가지 장애물이 있다는 사실이다. 비용도 그렇고 너무 많은 수용인원, 혹은 개인 공간의 부족함(1인실이 없거나 있어도 하나뿐) 등이 그렇다. 월세는 단 몇만 원 차이로도 선택의 기로가 나뉘는데, 거의 10만 원 가까이 차이가 나니 단념하게 되는 것이다.

 

‘청년주택난’, 정책에 양보하세요

 

셰어하우스를 검색하면 꽤 상단에 링크되는 기업이 있다. 여러 호점 중 미아동에 위치한 집의 1인실이 비었고, 그 기업의 셰어하우스 중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어서 계약을 하려 했다. 3층짜리 단독주택의 3층 방이었다. 그 집의 매니저는, 겨울에 외풍이 심한 편이라 방이 싸게 나왔다고 말했다. 계약하고 보증금 선금을 입금한 다음 날 전화가 왔다. 봄이 되면 외풍이 상관없으니 월세가 3만 원 오른다는 말을 깜빡했다고.

 

참고로 그 집엔 에어컨이 딱 한 대 있었고 그마저도 2층 거실에 있었다. 같은 논리면 여름엔 더우니까 월세를 낮춰야 하지 않냐고 따질 여유는 없었다. 매니저가 계약을 취소하면 보증금 선금을 돌려줄 수 없다고 엄포를 놨기 때문이다. 그녀는 한술 더 떠, “뭘 잘 모르나 본데, 부동산 법이 이게 맞는 거니까 앞으로는 집 계약할 때 신중하라”면서 훈수도 뒀다.

 

이런 기업이 청년주택난을 논한다. 자기들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히어로라도 된 것처럼 마케팅한다. 사업의 주체가 청년이라고 해서 그 결과가 반드시 청년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건 아님에도 자꾸만 청년 타령을 한다. 여타 (이기적인) 부동산 업자들과는 다르다며, 손쉽게 선(善)의 위치를 선점하고 멋대로 방세를 올리던 그 기업은 셰어하우스 쪽에선 아주 유명한 기업이었다.

 

삶의 공통점이 있다고 하여 함께 사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비슷한 나이라 해서 삶의 공통점이 있다고 보는 것도 무리다. 그럼에도 많은 셰어하우스들은 단지 목돈이 없는 젊은 사람들을 ‘청년’이라는 큰 카테고리로 엮어 장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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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꿈꾸는 셰어하우스 ⓒpixabay

 

그들이 청년을 팔아 장사를 하는 사이, 청년 주택 정책은 뒷걸음질 치고 있다. 서울시가 진행 중인 역세권 2030 청년 주택 사업은, 그 시작부터 의문투성이였다. 과연 역세권에 지은 주택이 청년들이 부담할 만한 비용으로 제공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이름만 그럴싸했던 정책은 민간 투자사에 대한 특혜로 이용됐다. 민간 투자 기업들은 청년 주택 사업에 참여하면서 취득세, 재산세 감면 및 건물의 용적률을 높일 수 있는(층수를 일반 주택보다 높게 지을 수 있다) 혜택을 받는다.

 

투자사에게 돌아간 혜택이 청년의 이득으로 연결된다면 좋겠지만, 정작 이 정책의 주인공이어야 할 청년들은 큰 이득을 받지 못한다. 민간투자사들에 의해 지어진 임대주택의 극히 일부만 공공임대주택으로 이용되고, 나머지는 준 공공임대주택으로 남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준 공공임대 주택의 방세는 주변의 다른 방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물론 셰어하우스에서의 생활이 만족스러운 사람도 분명히 있다. 앞서 말한 기업형 셰어하우스만 해도 입주자 인터뷰를 통해 그들이 얼마나 생활에 만족하는지 친히 증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년 주택 문제에서 몇몇 좋은 경험담이 누군가의 불편함을 앞설 만큼 돋보여서는 안 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집을 공유한대”, “그것 참 좋네”라고 당장의 문제를 가려서는 안 된다. 청년주택난은 실재하고 셰어하우스에 만족한 고객보다 상처받거나 그 정도 돈이 없어 기회도 얻지 못한 청년이 훨씬 많다. 청년주택난은 정책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몇몇 기업이 ‘청년’이라는 꼬리표를 장식처럼 사용하며 마케팅할 문제가 아니다. 그 달콤한 마케팅 뒤엔, 나와 같은 피해자들이 산재해있기 때문이다.

 

글. 샤미즈(ndhhdm9019@naver.com)

특성이미지. ⓒ영화 ‘2LD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