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둘째 주 주말, 서울혁신파크에서 ‘청년주간: 너를 듣다’ 행사가 열렸습니다. 나를 말하고 너를 듣기 위해, 곳곳에서 청년들이 모였습니다. 그들은 왜 이곳에 온 걸까요? 그 이야기들을 공유합니다.

 

어떤 청년은 청각장애인이다. 그러나 청각장애를 가진 청년들의 문제는 청년의 문제이기보다 장애인의 문제로 논의된다. 때때로 그것은 ‘벽’이 된다. 해서 그들은 청년으로서의 문제(고용, 결혼, 주거 등)를 마주하지만, 그보다도 먼저 소통권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갖는다. 장벽 없이 소통하는 것. 그것은 어떤 청년에게는 기본적인 환경이지만 어떤 청년에게는 얻기 위해 싸워야 하는 무엇이다.

 

지난 12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이하 에이유디)이 <우리의 소통권을 위하여>라는 제목의 컨퍼런스를 열었다. 청각장애인의 권리를 위한 문자통역의 필요성을 알리는 자리였다. 문자통역이란 음성언어를 문자언어로 옮기는 것이다.

 

박원진 대표가 발표를 맡았고, 그를 포함해 네 명의 청각장애인이 컨퍼런스에 함께했다. 컨퍼런스에서 오가는 대화는 모두 문자통역사가 실시간으로 속기해 스크린에 띄웠다. 에이유디가 개발한 앱 쉐어타이핑을 통해 스마트폰으로 간편하게 실시간 속기록을 볼 수도 있었다.

 

53245-1

문자통역사가 대화를 타이핑하고 있다. 속기 내용은 우측 벽면에 실시간으로 표기된다

 

소통은 기본적인 권리다

 

소통권이라는 말이 생소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헌법에서 보장하는 권리들은 소통을 전제로 한다교육권을 누리기 위해서는 학생과 교사가 서로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근로권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근로자와 고용인의 소통에 장벽이 없어야 한다. 정치적 자유는 국가에 자신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따라서 청각장애인이 겪는 소통의 문제는 그들이 기본권을 누릴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로 이어진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사회에서도 청각장애인은 배제당하기 쉽다청각장애인을 위한 통역은 그들이 시민으로서 응당 누려야 할 권리를 누릴 수 있게 하는 최소한의 장치이다.

 

소통은 다양하게 이루어진다

 

올해 8월부터 시행된 한국수화언어법은 수화를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고유한 언어로 인정한다. 이로써 모든 생활영역에서 한국수어를 통해 삶을 영위하고 필요한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가 명시됐다. 이 법이 청각장애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변화의 한 걸음인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수화를 쓰지 않는 청각장애인을 지원하는 법령은 여전히 미비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수화를 청각장애인 일반적인 의사소통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국내 청각장애인 중 수화를 주된 의사소통 방법으로 사용하는 비율은 5% 미만이다. 나머지 95% 중에선 1%만이 수화를 할 줄 안다. 청각장애인은 수화통역, 문자통역, 구화통역, 촉각통역, 필담통역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소통할 수 있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수화 대신 음성언어, 구화, 문자를 사용하는 청각장애인들이 늘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자통역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을 통해 공공기관의 행사와 교육기관에 한해서만 보장되고 있다.

 
53245-2

 

중요한 건 결국 사회와의 소통이다

 

박원진 대표는 “중요한 것은 청각장애인이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 말했다. 너무나 당연하게 들리지만 청각장애인의 언어 교육에선 이 사실이 종종 간과된다.

 

그는 어렸을 때 발음에 대해 강박적인 교육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외국어의 발음이 정확해야 외국인과 소통할 수 있는 게 아니듯 청각장애인의 발음이 정확해야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청각장애인 음성언어 교육의 목표는 ‘완벽한 발음을 할 수 있음’이 아니라 ‘상대방과 소통할 수 있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에이유디가 가장 닮고 싶은 기관으로 미국의 HSDC(Hearing, Speech&Deaf Center)를 꼽았다. HSDC가 가정환경과 지역사회를 고려하여 청각장애인을 지원하기 때문이다. 모든 청각장애 아동들에게 수화를 우선적으로 가르쳐야 한다거나 음성언어와 구화를 집중적으로 가르쳐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가 어떤 수단을 선택했을 때 가족과 지역사회와 효과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지에 따라 개별적으로 청각장애아동의 교육 문제를 다뤄야 한다.

 

잘 못 듣는 사람이 아니라 잘하는 사람이다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선진적인 청각장애인 지원 시스템을 갖추었다. 이것은 청각장애인과 지원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장애를 개인의 문제로 돌리면 지원책은 시혜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청각장애인은 지원을 요청할 때마다 왜 지원을 해주어야 하나?”라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그러나 장애를 사회의 책임으로 바라본다면 지원을 요청하는 것은 권리의 행사다. 따라서 지원에 대한 반응은 어떻게 지원해야 할까?”라는 생산적인 논의가 될 것이다.

 

소통을 지원하는 이유 또한 그러한 생산성을 지향해야 한다. 청각장애인을 ‘베풀어야 할 불쌍한 존재’가 아닌 ‘잠재성을 가진 개인’이라 인식해야 한다. 청각장애로 인해 겪는 장벽을 제거하면, 청각장애인은 다른 ‘개인’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만의 능력을 살려 무궁무진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이렇게 창출되는 가치가 지원에 드는 비용을 충분히 상쇄한다. 못 듣기 때문에 지원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잘할 수 있으므로 지원해야 하는 것이다.

 

53245-3

 

모두가 차별 없이 소통하는 세상을 꿈꾸며

 

청년은 단일한 집단이 아니다. 청각장애인 청년에 대한 논의도 청년에 대한 논의에서 함께 다루어져야 한다.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청년을 비장애인이라는 단일한 집단으로 상정한다. 예를 들어 청년 정책에 대한 논의는 일자리에 집중돼 있는데, 장애를 가진 청년이 마주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일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지원하는 것은 청년 정책으로 논의되지 않는다. 청각장애인 청년이 지원을 요청하는 것에 대한 인식 역시 청년 문제에 맞물려 있어야 한다. 청년에 대한 지원과 투자가 미래를 위한 발걸음이라고 인식된다면 장애를 가진 청년에 대한 지원과 투자도 그와 다르지 않게 인식되어야 한다.

 

미국은 청각장애인의 권리를 위해 오랜 시간 동안 싸워왔다. 우리나라도 청각장애인과 그 지원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폭넓은 의사소통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아니 그러기 위해 싸워야 한다. 이 과정에 제삼자는 없다. 모두의 관심과 행동이 이 싸움의 든든한 지원군이 될 것이다.

 

글. 사진. 콜드브루 (gocoldbrew@naver.com)
 
특성이미지 ⓒ http://www.wijzijenik.nl/page/2/
 
기획. [청년은 xx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