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둘째 주 주말, 서울혁신파크에서 ‘청년주간: 너를 듣다’ 행사가 열렸습니다. 나를 말하고 너를 듣기 위해, 곳곳에서 청년들이 모였습니다. 그들은 왜 이곳에 온 걸까요? 그 이야기들을 공유합니다. 

 
2016 청년주간 컨퍼런스의 첫 세션은 <‘세대’에 갇힌 청년, 누가 청년을 말하는가?>를 제목으로 열렸다.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권지웅 운영위원장은, “청년을 범주화하는 과정에 수반되는 논란과 나아갈 방향에 대해 논의하는 장”이라고 세션을 소개했다. 발제와 패널들 간의 토론에서는 ‘청년’이 호명되는 방식호명 그 자체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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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문제가 진짜 청년들만의 문제일까?

 

불평등과시민성연구소 박이대승 소장은 각종 사회 문제를 청년 문제로 일축하는 데에 ‘청년’이라는 호칭이 소모되고 있다고 말했다. 청년 실업 문제는 사회의 일자리 문제다. 청년주거, 청년빈곤 등 ‘청년’이라는 단어가 붙은 청년문제들은 사실상 사회 전체의 문제라는 것이다. 문제의 규모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해결을 기대할 수 없는 건 당연하다. ‘청년’층에만 쓸 만큼의 예산을 할당해 놓고, 청년을 넘어서는 거대한 문제들을 해결하라고 하니 나아진 게 있을 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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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야 문제는 청년이 아니라 사회야 

 

최근의 정치권에선 ‘청년’이라는 단어가 난무한다. 국회 청년기본법안이나 서울시 청년수당, 성남시 청년배당이 발의되는 등, 청년 문제에 대한 정치적 접근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청년 지원 정책이 청년에게 그저 돈을 쥐여주는데 그치고 마는 근시안적인 포퓰리즘에 불과하다는 비난이 있기도 하다.

어느 청년들에게는 한 달 몇십만 원의 돈이 간절할 것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이러한 지원 제도는 ‘불쌍한’ 청년들을 사회가 도와주어야 한다는 생각 위에 자리한다. 현존하는 청년 정책의 제정과 집행에서 청년은 시혜의 대상으로 이해된다. 바로 그 한정적인 이해 위에서 사회는 청년을 위한 상품을 팔고 정치계는 청년을 위한 제도를 제정한다고 주장한다.

 

박이대승 소장은 청년 범주의 모호함과 비합리성 때문에, 그 ‘시혜적’ 청년 정책을 통해 모든 청년이 ‘청년=취직난=돈이 필요하다’는 틀에 갇히게 된다는 점을 중요한 문제로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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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 국민카드 ‘청춘대로’ , 우리은행 ‘우리청년전용창업대출’

 

 청년의 전형을 기준 잡다

 

언론도 ‘도움이 필요한 청년’의 전형을 굳히는 데 일조한다. 2016년 현재 한국 청년의 전형은 ‘N포세대’로 설정돼 있다. 아마도 사회가 상상하고 언론이 굳히는 청년의 이미지는 다음과 같을 것이다. “6평 남짓한 원룸에 자취하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생활비를 벌고, 학점도 놓치지 않으려고 열심히 공부하고, 틈틈이 취업 준비해서 어색한 양복을 입고 면접을 보기도 하는 대학생” 미디어에서 재현되는 이 이미지는, 실제 청년에게 동정, 기특함, 꾸짖음 등의 기준을 덮어씌운다.

 

53280-3난 돈이 없어서 컵라면을 먹지만 드럼 칠 때 행복한 불꽃이얌! © 한화 CF 

언론은 청년층이 마주한 사회 문제를 청년 기획으로 다룬다. 경향신문은 10월 6일 신문 1면에 삼각김밥과 컵라면 이미지를 배치하고, ‘오늘 알바 일당은 4만 9천 원… 김영란법은 딴 세상 얘기. 내게도 내일이 있을까?’라고 써넣었다. 그리고 경향일보 측은 이 파격적인 기획이 “이 시대 고달픈 청년들의 상징”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문구의 어디에도 글귀의 주인이 청년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는 없다. 가난하고, 내일을 위해 노력하지만 미래가 어두운 상황이라는 막연한 은유뿐이다. 그 은유는 왜 청년으로만 직결되는가? 반대로 왜 청년은 그 이미지로만 소비되는가? 왜 언론은 모든 청년이 ‘흙수저’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53280-4© 경향신문

 

청년도 포기 못 하는 그 이름, ‘청년’

 

헌데 기성세대만 청년을 시혜의 대상으로 포장하는 것이 아니다. 서난이 전주시 청년비례대표의원은 “청년 당사자 역시 ‘청년’의 이미지를 활용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청년’이라는 단어를 붙이게 되면, 정치적 관심과 문제 해결의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노동문제가 시급합니다”라는 문장이 “청년 실업문제가 시급합니다.”로 바뀐다. 기성세대에게 “당신 자식들의 문제입니다”라고 호소하면 비로소 정치적으로 다뤄질 만한 사안으로서 여겨진다. 관심을 얻기 위해 시도한 관점은 문제 해결에도 적용된다. 정책은 기성세대가 ‘내 자식’으로 대치된 보편적인 한 세대 집단을 ‘도와주는’ 모양이 된다.

 

모든 논란의 시작, 그래서 청년이 누구야

 

박이대승 소장은 청년문제 해결의 걸림돌로, 청년 자체가 일관적이고 체계적인 범주가 아니라는 사실을 문제로 제기했다. 그렇다면 누구를 청년으로 범주화할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청년이란, 나이를 근거로 삼아 대략 20대를 가리킨다. 그런데 의무교육이 끝난 이후인 17세부터 청년으로 보는 경우도 있으며, 그 끝의 경계는 더욱 모호하다. 만 38세, 만 39세, 만 45세 … 발제를 중심으로 한 패널들의 토론에서는 청년의 규정과 그 규정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중앙대 사회학과 이병훈 교수는 청년을 노동시장으로의 이행기에 있는 사람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모든 것을 하나로 모아 해결하려는 시도가 각 계층의 특수한 문제를 특수하게 풀어내야 한다는 사실을 놓치게 하는 것이 아닌가,” 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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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대교 생명의 다리 (패러디)

 

이에 대해 박이대승 소장은 보다 근원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민주주의 정치 체제 하에서는, 보편성과 평등의 원리가 지켜진 이후에야 특수성을 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청년으로서의 권리가 아니라 인간, 시민, 국민으로서의 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해 벌어지는 문제에 청년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만약 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한 ‘청년’이 있다면, 사회나 국가는 청년 전체가 아니라 그 사람만을 위한 사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어떤 청년이든, 청년이기 이전에 시민이니까.

 

글. 이설(yaliyalaj@gmail.com)

사진. 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