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둘째 주 주말, 서울혁신파크에서 ‘청년주간: 너를 듣다’ 행사가 열렸습니다. 나를 말하고 너를 듣기 위해, 곳곳에서 청년들이 모였습니다. 그들은 왜 이곳에 온 걸까요? 그 이야기들을 공유합니다.

 

청년은 누구나 한때 청소년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청소년이 제도권 내의 ‘학생’이었던 것은 아니다. 학생이 아닌 삶을 선택한 뒤에 학교 밖에서 자란 청소년들도 청년이 되며, 학업을 선택하든 취업을 선택하든 각자 10대 이후의 삶을 살아간다.

 

청소년참여활동단체 혜욤에서는 2016 서울 청년주간을 맞아 학교 밖 청소년이 10대 이후 청년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컨퍼런스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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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서울 청년주간

 

학교 밖 청소년이란?

 

‘학교 밖 청소년’은 법적으로 인정된 초, 중, 고등학교 또는 이에 준하는 교육 기관에 진학하지 않은 모든 청소년을 일컫는 용어다. 쉽게 말하자면 제도권 내의 학생이 아닌 청소년이다.

 

혜욤에서는 학교 밖 청소년이라는 단어보다 비제도권 청소년이라는 단어의 사용을 더 지향한다. 행정적 이유로 만든 ‘학교 밖 청소년’이라는 용어는 청소년을 ‘학업’이라는 단일 기준으로 구분하고 있어, 청소년의 잠재성 발굴을 저해하며 개성을 무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학교 밖 청소년이라는 용어의 존재 자체가 함의하는 ‘비제도권 청소년에 대한 사회의 배타적 분위기’에도 주목해야 한다. 학교 밖 청소년이라는 단어가 존재한다는 점은, 사회적 기준에 맞춰서 청소년을 자의적으로 구분하고 있는 세태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는 용어는 학교 밖 청소년이고, 혜욤도 행정적으로 통용되는 이 용어를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는다.

 

학교 밖 청소년, 청년이 되다

 

컨퍼런스에선 청년이 된 학교 밖 청소년의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대학교에 진학한 패널, 남들보다 일찍 베이커리에서 경력을 쌓기 시작한 패널, 혜욤 활동가인 패널. 모두가 ‘학교 자퇴 후’라는 수식어를 제외하고는 일반 청년들과 다르지 않은 개개인의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삶에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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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밖 청소년을 검색하면 어두운 이미지만 나온다 ⓒ세계일보

 

물론 그들도 학교 자퇴 후 마냥 행복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학교 밖’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후 그들을 힘들게 했던 건, 다른 게 아니라 사회의 시선이었다. 동정 어린 시선, ‘공부 못 했구나’로 시작하는 잔소리, ‘왜 자퇴했냐’는 편견 어린 질문들까지. 학교 밖 청소년을 대하는 사람들의 말에는 ‘너 비행 청소년이었지’라는 가정이 이미 전제되어 있다.

 

사회에서 그들은 청년이 되고 나름의 ‘잘 살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나서야, 학교 밖 청소년이라는 틀을 깬 정상적 인간으로 인정받았다. 그것도 그들이 나름 사회적 기준에서 ‘성공한 삶’을 살고 있기에 가능했다. 만약 그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하지 못한 학교 밖 청소년 출신 청년이라면? 사회는 청년이 된 비제도권 청소년의 실패 요인을 그들이 학교 밖 청소년이었다는 점에서 찾으려 하고 ‘너희는 역시 비정상적인 형태의 청소년이야. 그래서 너희의 성공은 있을 수 없어’라는 억지 굴레를 씌우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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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ikinoko8888

 

그런 점에서 학교 밖 청소년이라는 개념이 ‘청소년은 미성숙하다’라는 청소년혐오의 전제와 맞닿을 때 더 큰 혐오가 만들어진다. ‘약하고 미성숙한 청소년이 학교까지 안 다닌다니’라는 식의 사고 양산은, 순식간에 학교 밖 청소년을 비정상적인 존재로 만든다. 이는 곧 그들의 실패에 대한 당연하다는 듯한 질책과, 성공에 대한 과소평과로 이어진다. 그들의 노력이 노오력이 되는 과정은 남들보다 쉽게 당연시된다. 그래서 ‘청년들이 노오력을 안 한다’는 비난은 청년이 될 현 대한민국 37만 명의 학교 밖 청소년에게 더욱 가혹하다.

 

사회에 의해 N포세대로 불리는 청년들의 이미지가 학교 밖 청소년의 ‘학업을 포기했다’는 편견을 담은 이미지와 겹쳐질 때, 청년들의 이미지는 얼마나 소모적이며 가벼운가. 또, 청소년과 청년에게 포기라는 이미지를 씌우려는 기성 언론, 기성세대, 그리고 이 사회의 모습은 얼마나 몰지각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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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욤 컨퍼런스

학교 밖 청소년, 그들을 위한

 

현재 한국엔 학교 밖 청소년들을 위한 사회적 창구가 몇 되지 않는다. 청소년 지원센터 꿈드림, 대안학교, 혹은 혜욤과 같은 청소년참여활동단체 정도 뿐이다. 더불어 컨퍼런스 참가자들은 대안학교의 재정적 부담과 꿈드림 센터의 실적 중심적인 현황을 지적하기도 했다.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한 사회 인식의 미흡함뿐만 아니라, 제도적 결함도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학교 밖 청소년, 그들을 위한 제도는 어디에 있으며, 그들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어디에 있는가. 그들을 위한 정신적, 제도적 방안 중 어떤 것도 성공적인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청년은 누구나 한때 청소년이었다. 그리고 청소년은 누구나 ‘청년’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향해 자란다. 학교 밖 청소년도 마찬가지이다. 청년으로 자라는 학교 밖 청소년에게 대한민국은 좋은 사회가 아니라는 것이 슬픈 이유는, 그들에게 청년으로서 속해 있는 사회가 더 좋을 것이라는 말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학교 밖 청소년, 그리고 그들이 될 ‘청년’은, 사회에게 얼마나 만만한 존재인가.

 

글‧사진. 모킹버드 (sinjenny97@naver.com)

기획. [청년은 XX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