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일 때문에 이 일이 있다” 많은 것을 설명해주는 문장입니다. 명확한 원인과 결과를 제시해 주는 말이니까요. 그러나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그렇게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만남’이라는 시작이 명확해도, 그 결과의 모양새는 복잡하지요. 하나하나의 ‘끝’에 대해 설명할 길도 넘쳐납니다. 우리는 여러 갈래의 결과에 대하여 얘기해보고자 합니다. 시작부터 끝까지의 길을 되돌아보고자 합니다. 계속 꺼내보고 싶은 것부터, 덮어두고 싶은 것까지. 그것은 우리 [人과관계]의 성찰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아직 끝나지 않았을지도 모르죠.  

 

1.

“어릴 때 친구가 평생 가는 친구야. 대학교 친구랑은 진짜로 친하기 힘들어.”

 

그 말을 믿었다. 어쩌면 그게 족쇄였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렴 너는 친한 친구 중에서도 가장 친한 친구였으니까. 어릴 때부터 인연을 쌓은 ‘평생 가는’ 친구. 사소한 일상부터 혼자 감당하기 힘든 비밀까지 우린 서로의 대부분을 공유했다. 너와 난 어색해질 리도 없고 어색해져서도 안 된다 생각했다. 그러나 믿음이 크면 그 반동도 큰 법. 평생 똑같을 것 같던 우리의 관계에도 반동이 왔다. 우리는 여전히 친한 친구였지만, 동시에 어색한 친구가 됐다. 스무 살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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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문득 너와 나의 관계가 돌연변이처럼 낯설었다 ⓒ영화 <돌연변이>

 

친한 사이, 어색한 사이, 모르는 사이. 십 대의 내 인간관계는 이렇게 세 집합으로 분류가 가능했다. 20대로 접어들며 거기에 이상한 집합 하나가 추가됐다. 아니, 정확하게는 대립적이라고 생각했던 관계가 교집합을 만들어냈다. ‘친한 사이’와 ‘어색한 사이’의 교집합 말이다. ‘친한 동시에 어색한 친구’라니. 나는 이 돌연변이 같은 관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몰라 혼란스러웠다.

 

도대체 이 변종은 왜 탄생했는가. 관계의 변종이나 생물의 변종이나 원인은 같다. 환경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스무 살, 내가 대학교 근처로 이사하면서 우린 사는 곳이 달라졌다. 사는 곳이 달라지니 만나기가 힘들어졌고, 함께 아는 지인 같은 것도 더 이상 생겨나지 않았다. 물리적인 환경만 문제는 아니었다. 너는 직장인이 됐고 나는 대학생이 되면서 각자가 경험하는 것과 고민하는 것이 달라졌다. 내겐 나만의 삶이 네겐 너만의 삶이 생겨버렸다. 서로의 세계는 시간이 갈수록 견고해졌다.

 

2.

환경의 변화. 이것은 우리 관계의 변화에 대한 너무나 간단한 설명이었다. 서로의 내면 깊숙한 곳을 안다고 자부했던 우리의 관계가 겨우 이런 이유로 바뀌었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 변종의 존재를 무시하려고 애썼다. 자주 카톡을 보내고, ‘좋아요’를 누르고, 약속을 잡아 만나고. 이제는 당연히 아는 것이 아니게 된 너의 일상과 고민을 듣기 위해, 네가 알고 싶을 나의 일상과 고민을 전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하면 서로 함께 있지 못한 시간과 공간의 간극을 메꿀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애써 연락을 하면 할수록, 또 만나면 만날수록, 공유할 수 있는 삶의 범위가 줄었다는 사실만 확인할 뿐이었다. 하나를 설명하기 위해선 열을 설명해야 했고, 설명을 들어도 “아, 그래?”로 끝. 이야기는 현재가 아니라 과거에 머물렀다. 함께했던 추억과 함께 아는 지인의 소식을 팔아 간신히 대화가 이어졌다. 만날 때마다 비슷한게 그리고 간신히 이어지는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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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와 “그래”밖에 할 말이 없어 ⓒ무한도전

 

관계의 변화를 알리는 가장 요란한 신호는 침묵이다. 어느 순간 우리는 연락이 뜸해졌다. 우리를 꼭 묶어주던 끈이 풀려나 버렸고 우리는 각자 부유했다. 그나마 서로의 행방을 알리던 것도 그만두었다. 멀어지게 된 건 누구의 탓도 아니었다. 하지만 애써 만나려 하고 애써 대화를 이어가야 하는 관계가 되어버렸다는 것. 그 사실 자체가 내게 실망감을 주었다. 말한 대로, 믿음이 너무 커서였을까. 애써야 하는 관계가 되었단 걸 인정하기 싫었다. 차라리 애쓰지 않음으로써 그 사실을 무시하려고 했다. 너는 여전히 내 가장 친한 친구여야 했으니까. 그러기 위해 자연스럽지 않은 대화와 만남은 없어야 했다.

 

동시에 나는 수많은 인간관계의 폭풍에 휩쓸렸다. 스무 살 대학생의 동기, 선배, 후배, 애인, 동아리 활동을 같이하는 사람, 아르바이트하다 만난 사람……. 이 수많은 관계를 만들어 유지해 나가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그러나 나와 같은 환경에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꽤나 즐거운 일이기도 했다. 마치 어릴 적 너처럼, 새로운 환경을 공유한 사람들은 내가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다 알고 있었다. “어릴 때 친구가 평생 가는 친구야. 대학교 친구랑은 진짜로 친하기 힘들”다고? 거짓말.

 

3.

나의 관계 기억 용량은 한심할 만큼 작아서, 새로운 관계가 저장되자 오래된 관계는 나도 모르게 지워져 있었다. 희한한 역설이다. 믿음으로 시작된 이상한 강박이 우리를 멀어지게 했는데, 믿음이 뒤집히면서 그게 더 심해진 꼴이다. 그리고 이것을 복원하는 방법은 알 수 없었다. 아마 너도 그랬을 것이다.

 

그랬던 어느 날 갑자기 네게서 전화가 왔다. 오랜만에 휴대폰에 뜬 너의 이름에 조금 의아했지만 한편으로는 설렜다. 전화를 받자 너는 울음을 터뜨렸고, 나는 그간 몰랐던 너의 인생을 들었다. 너의 아픔을 듣는 내내 나의 마음도 너무 아팠다. 그것이 무슨 이야기였는지는 사실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네가 어떤 아픔을 겪었는지 내가 알게 된 것이 아니라, 네가 내게 너의 아픔을 말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한테 말해야 할지 몰라서 너한테 먼저 전화했어.”

 

저 멀리 있던 네가 무한한 거리를 넘어 내게 와락 안겨든 것 같은 한 마디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나는 내가 예전과 한 치의 변함없이 너를 아낀다는 것을, 네가 예전과 조금도 다름없이 나를 믿는다는 것을 느꼈다. 아픔과 위로 사이 우린 그 어떤 어색함이나 거리감도 느끼지 않았다. 각자의 세계에서 부유하던 우리는 순식간에 서로를 찾아 가까워졌다.

 

4.

우리의 관계는 변종이 아니라 가변성이었다. 우리는 언제든지 가장 막역한 친구가 될 수 있는 사이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어색한 동시에 친한’이라는 수식은 실망할 거리가 아니었다. 그 문장의 역설은 관계가 아니라 강박에 있었다. 너에 대해 자세히 그리고 많이 알아야 한다는 강박이 우리 관계의 가변성을 변종으로 바라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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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우리는 이어져 있다 ⓒ드라마 <연애시대>

 

다른 많은 관계도 그럴 것이다. 공유하는 것들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서로의 일상에 대해 잘 알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함께하는 시간이 줄지도 모른다. 그런 것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관계라는 건 공통된 주제를 아는 것도, 서로의 일상을 아는 것도,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서로의 존재에 대한 응원. 이것이 너와 나의 관계이고, 다시, 다른 많은 관계도 그럴 것이다. 그것만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나는 이제 너에 대해 더 많이 알기를 안달하지 않는다. 네가 나에 대해 낱낱이 알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다만 네가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게 관계를 바로 보는 법이라고, 믿는다.

 

글. 콜드브루 (gocoldbrew@naver.com)
특성이미지 ⓒ 드라마 <응답하라 19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