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광화문에 모인 집회 세력 중 하나는 ‘페미니즘’ 깃발을 들고 있었다. “혐오 발언, 혐오 문구 없는 페미존”을 만들자며 집회 내 여성혐오 문제를 꼬집었다. 같은 날 남초커뮤니티엔 이를 조롱하는 글이 즐비했다. “이런 시국에서조차 여혐민국 타도를 외치는 페미니즘”이라는 이유였다.

  

그보다 며칠 전, 숙명여자대학교에는 “내가 시위에 가지 않은 이유”를 고백한 대자보가 붙었다. 집회에서의 혐오 발언과 성폭력, 비판 대상인 대통령이나 시위 참가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를 비판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해당 대자보 또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거친 댓글들을 순화하면 다음과 같다. “집회는 못 갈망정 여혐 핑계를 대?”

 

19일 부산 부산진구 서면 쥬디스태화 앞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한겨레

 

이런 시국에 여성혐오를 논하고 있냐는 조롱들이 거세다. 이러한 지적에는 두 가지 차원의 ‘동의하지 않음’이 있을 것이다. 이런 시국에도 여혐이 빈번하다는 사실 자체에 동의하지 않거나, 여혐이 있더라도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 않거나. 전자의 경우, 집회 내 성폭력을 ‘일부’만의 문제로 넘기고, 박근혜와 최순실을 욕하기 위해 사용하는 혐오표현은 속 시원한 ‘사이다’ 발언으로 넘긴다. 후자의 경우, 시국에 집중해야 하니 성 갈등을 조장할 수 있는 여성혐오 문제는 나중에 생각하자고 한다.

 

그러니까, 여성혐오는 이런 시국의 중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설령 여혐이 있더라도, 넣어두란다.

 

뭣이 중한지 왜 따져야 해?

 

‘이런 시국’과 여성혐오. 두 문제를 저울에 올려놓고 무엇이 중요한지 비교하기 전에, 그 저울질 자체가 부당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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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여자대학교 대자보(좌) / 온라인커뮤니티 ‘오늘의 유머’ 캡처(우)

 

무엇이 더 중요하냐는 질문에 절대적인 답이 있는가. 섣불리 “그건 덜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폭력이다. 집회 현장에서의 성폭력과 성차별의 무게를 가볍게 넘길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내가 집회에 가지 않은 이유”를 쓴 여성에게는, 집회에 나가서 박근혜 하야를 외치고 싶은 의지보다, 집회에서의 여성혐오 발언과 성희롱으로부터 안전하고 싶은 의지가 더 강했을 것이다. 집회에 가지 않은 그녀의 선택은, 기본권을 침해하는 성적 위협에 대한 일종의 저항이다. 게다가 집회 참석 여부는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으로서 개인의 자유에 기반을 둔다.

  

그럼에도, 해당 대자보를 쓴 여성에게 온갖 비난과 맨스플레인이 쏟아졌다. 비난의 주체들은 누군가 집회에 불참할 정도로 ‘이런 시국의 여성혐오’가 심각하다는 것을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한 위협에 노출된 경험 자체가 부재하기 때문에 온 공감의 상실이다. 또한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국민으로서 권리를 찾겠다며 투쟁을 벌이고 있으면서, 남의 기본권은 존중하지 않는 모순이다.

 

애초 여성혐오에 대한 비판을 이분법(여성혐오가 중하냐 시국이 중하냐)의 논리에 가둔 것은 저들이다. 굳이 두 사안을 비교해서 더 중요한 것을 택하게 한 것 자체에, 여혐혐(여성혐오를 혐오하다, 즉 여혐에 대한 광의적 범위의 저항을 이른다)을 배제하려는 의도가 있다. ‘여혐혐’과 ‘박근혜 하야 집회’는 왜 공존할 수 없는가. 여성들이 차별 없는 집회문화를 요구하면, 문제를 인식하고 함께 연대하면 된다. 여혐하는 집회는 분명히 문제적이고, 여혐 없이도 얼마든지 집회할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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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당당

 

여혐을 논할 ‘때’는 원래 없었다

 

“이런 시국에”라는 말로 여혐혐을 배제하는 모습은 사실 익숙하다. 이 상황에, 이 분위기에, 로 바꾸어보면 더 명확해진다.

 

성차별은 언제 어디에나 있었지만, 성차별을 논하는 것은 늘 ‘적기’에 행해져야 한다고 요구받았다. 여성혐오를 마음껏 지적하고 비판할 수 있는 분위기라는 게 있었기는 했나 싶다. 성적 대상화가 판치는 술자리에서 “그거 차별이다”라고 지적하는 것은 “분위기 깬다”는 비난을 감수해야 했고, (누구나 ‘적기’라는 것에 동의할 수 있는) 지난 5월의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 때조차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다”, “남자 여자 편 가르고 싸움 부추기지 말라”는 소리가 나왔다.

 

저들은 결국 늘 그래왔던 것처럼, ‘여혐혐’이 불편한 것이다. 여혐혐이 남성 중심 사회의 모순을 비판하지 못하게, 그리하여 젠더 권력에서의 기득권을 지켜내기 위해, 입막음하고 싶은 것이다.

 

그들의 ‘이런 시국’과 그녀들의 ‘이런 시국’

   

여성혐오에 대한 지적이 입막음 당하는 사이, 더 노골적인 여성혐오들이 자행됐다. 아예 집회 내 여혐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여혐에 대한 지적을 국민 분열 (그들이 말하는 국민에는 또다시 남성만 있는 듯하다. 혐오로 얼룩진 통합이 어떤 의미가 있나) 조장하는 정치적 음모로 여기거나, 그도 아니면 또다시 ‘메갈년’, ‘페미나치’로 낙인찍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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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 내 여성혐오를 다룬 기사 댓글, 여혐이 없다고 말하는 중에도 여혐을 한다 ⓒ미디어오늘 캡쳐

 

자신이 하는 것이 성차별이라는 걸 모르는, 혹은 모르고 싶은 이들이 어떻게 구는지는 참 뻔하다. 차별은 없다고 하거나, 그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하는 거다. 차별주의자라고 욕먹기 싫으니까, 말 하나 행동 하나 조심해야 하는 게 싫으니까, 젠더 권력을 내려놓고 싶지 않으니까.

 

차별주의자들의 공모 속에서 여성들은 이런 시국과 더불어, ‘이런 시국의 여혐’, ‘그 저항에 대한 조롱’까지 마주해야 한다. 그녀들에게, 이런 시국이란 그렇다. 어떻게 여혐을 논하지 않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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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역시나 ‘이런’ 시국 ⓒ한겨레(좌) / 한국일보(우) 

 

 

특성이미지 ⓒ페미당당

글. 달래(sunmin532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