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둘째 주 주말, 서울혁신파크에서 ‘청년주간: 너를 듣다’ 행사가 열렸습니다. 나를 말하고 너를 듣기 위해, 곳곳에서 청년들이 모였습니다. 그들은 왜 이곳에 온 걸까요? 그 이야기들을 공유합니다.

 

11월 13일, 2016년 청년주간이 마무리되었다. 청년주간의 마지막을 장식한 세션은 <가장 특별한 위로, 힘들었던 당신과 나를 위해>라는 이름으로 진행됐다. 세션엔 박주민 의원, 영화감독 이길보라, 홍재희 씨, 뉴스타파 최경영 기자가 참여해 ‘피해자의 권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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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왜 피해자의 권리를 말하는지 의아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사회를 맡은 서울대 로스쿨 인권법학회장 박아름 씨는 클로징 세션이 오프닝 세션의 연장 선상에서 기획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프닝 세션에서 청년에 대한 시혜적 시선에 대해 지적했다면 클로징 세션에서는 이들에게 당연히 주어져야 하는 권리에 대해 말하고자 했다”며, ‘권리’라는 추상적 개념을 구체적인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전달하고자 이와 같은 주제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당신은 ‘순수한’ 피해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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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들은 특정한 이미지로 대상화된다 © 영화 <돈크라이마미>

 

‘피해자’ 하면 으레 떠올리게 되는 이미지가 있다. 수많은 영화, 드라마, 뉴스에서는 의도적으로, 혹은 관습적으로 피해자를 정형화한다. 성폭력 피해자는 연약하고 순결한 소녀로 그려진다. 피해자의 가족은 가난하지만 단란하게 살아가며, 아무리 비극적 사건을 맞이해도 폭력을 쓰거나 소란피우지 않고 누군가 정의를 구현해주기를 기다리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이러한 이미지에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사람들은 순수한 피해자가 맞는지 의심하기 시작하고, 사회는 피해자들에게 더 불쌍해질 것을 요구한다.

 

뉴스타파의 최경영 기자는 내부고발을 취재했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우리나라에서 피해자는 순결하고 깨끗해야 하고, 사회에 불만을 가져서도, 돈을 받아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가령 피해자는 피해의 회복을 위해 금전적 보상을 받을 수 있고 이는 피해의 본질과는 다른 층위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들이 돈을 받는 순간 그 행위를 미심쩍거나 잘못된 것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세월호 유가족에게 가해지는 비난 여론에도 일조했다. 정부에서 보상금을 지급할 당시 ‘결국 돈 받으려고 그런 것 아니냐’는 비난 때문에 일부 유가족들은 보상금을 거부하기도 했다. 보상금은 피해자로서 받아야 하는 당연한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에게 가해지는 결벽적 프레임 때문에 유가족은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다.

 

“이것은 시위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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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시스

 

피해자의 순수성에 대한 강박은 피해자들의 과거 행적을 들춰내어 평가하는 잣대가 된다. 세월호 유가족 김영오 씨의 단식 투쟁 당시, 그는 과거 이혼 경력, 노조 활동 이력 등을 빌미로 잡혀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난을 받았다. 사람들에게 (세월호) 유가족으로서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선 ‘좋은 아버지’, ‘순종적인 사회 구성원’임을 증명해야 했던 것이다. 유가족들이 대리운전 기사를 폭행해 논란이 되었을 때도 이들이 피해자이기 때문에 더욱 엄격한 도덕적 기준이 적용되었다.

 

이러한 프레임으로 인해 피해자들은 끊임없이 자기검열에 빠지고 행동을 제약받게 된다. 세월호 참사 직후 유가족들은 청와대 앞에서 행진을 하며 ‘이것은 시위가 아닙니다’ 라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정치적인 의도가 있다고 낙인 찍히는 것이 두려워 집회를 하면서도 집회라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박아름 씨는 “피해자들은 한없이 눈물만 흘리는 게 아니라 슬픔과 억울함과 분노를 느끼지만, 이를 과격하게 표출하는 순간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다”며 피해자를 규정하는 프레임이 이들의 행동까지 옭아맨다는 점을 지적했다.

 

내가 피해자라고?

 

53471-4© 영화 <아버지의 이메일>

홍재희 감독은 피해자의 권리가 보장받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로 사회 구조의 문제를 꼽았다. 피해자들이 권리를 찾을 수 있게 돕는 사회 시스템이 부재하는 한 피해자들은 자신이 피해자라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가정폭력의 경험을 통해 피해의 악순환을 설명했다. ‘빨갱이’라는 낙인 때문에 평생을 비정규직이나 실직자로 살며 사회 구조의 피해를 입은 아버지는 그 실의와 분노를 가족에게 행사했고, 반복되는 아버지의 폭력을 경험한 가족들은 점차 이를 일상으로 여기게 되었다. 부당한 낙인으로 사회에서 배제된 이들을 구제하는 시스템, 폭력에 고통받는 이들을 돕는 시스템이 없는 한 이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인식하기가 어려워진다.

 

장애인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이길보라 감독은 청각 장애인들이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소통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에 피해 사실을 자각하고 문제를 해결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했다. 수화를 통해 문자를 배우는 청각 장애인들은 문자 언어에 능숙하지 못하기 때문에 교육과정에서 배제되기 쉽고, 공장이나 노점과 같은 열악한 환경에 내몰리는 구조적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나 이들은 언어의 한계 때문에 자신이 어떤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는지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다. 또한 자신이 피해자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부당함을 호소하고자 해도 통역의 문제로 피해 상황이 사회 내에서 정확히 공유되지 못하고, 피해에 저항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

 

이렇게 자신이 피해자라고 생각지 못하게 된 이들은 다른 피해자들에도 공감하지 못한다. 여기서 구조적 모순이 발생한다. 사회에서 배제된 피해자는 또다시 낙인 찍히는 것이 두려워 가해자에 동조하고, 또 다른 피해자들을 만들어내는 데 기여하게 된다. 재개발 문제로 국가에 의해 피해를 입은 이들이 세월호 유가족들의 문제에는 공감하지 못하고 기득권의 편을 드는 것이다. 홍재희 감독은 이를 “피해자라는 자각을 가지지 못한 자의 말로” 라고 표현하며, 넓은 의미에서 이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이러한 구조의 피해자라고 이야기했다.

 

권리는 당연히 주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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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국민은 헌법 21조에 의거하여 집회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그렇다면 구조 속에서 피해받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있는 이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박주민 의원은 토론 말미에서 “우리도 우리의 권리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어디까지가 법이 보장하는 권리인지, 혹은 구체적인 법률로 기술되지 않더라도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에 대해서 모르고 있기 때문에 피해가 발생해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는 어떤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권리를 요구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모두가 존재 자체로 누려야 하는 권리는 마땅히 의무보다 앞선다. 폭력의 피해자에게도, 유가족에게도, 청년에게도 각각에게 주어지는 권리가 있다. 우리는 우리에게 어떤 권리가 주어지는 지를 알아야하고, 시혜적 정책의 대상이 아니라 권리의 주체로서 당당히 그 권리를 누려야 한다.

 

글. 유디트 (ekitales@gmail.com)

사진. 유디트

특성이미지 © 영화 <로렌스 애니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