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이 촛불시위에 나왔는데 그들이 유권자입니까?”

“고등학생들이 유권자는 아니라는 사실을 적시한 제 말이 막말입니까? 제 말이 고등학생 비하라 여기는 많은 학생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유권자 될 때까지 열심히 폭넓게 학교에서 공부나 좀 하렴. 세상일에 나서고 싶거든 먼저 충분히 진실을 알아본 후에 해. 니들은 아직 더 많은 경험이 필요해. 서두르지 마.

 

정미홍 전 KBS 아나운서의 이달 17일, 19일 자 발언이다. 박사모 집회와 SNS에서 정미홍 전 아나운서가 했던 얘기는 짧은 네 문장으로 요약된다. 청소년들은 공부나 해라, 너희는 시위에 나오지 마라, 너희는 아직 어리다. 어른인 내 말이 맞다. 다소 전형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뻔한 기성세대의 케케묵은 레퍼토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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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홍 페이스북 캡쳐

 

그보다 한 달여 전에도 이와 비슷한 청소년 혐오 발언들은 넘쳐났다. 수능 며칠 전 시위에 참여했던 고3 학생들이 페이스북 등 SNS에서 화제가 되었고 사람들의 여론은 “공부나 해라”, “지금 너희에게 중요한 건 집회가 아니다”, 혹은 “기특하다”였다. 청소년들의 시위 참여에 대해 잘했다, 혹은 잘못했다 하는 평가를 하기 전에,  청소년들을 당연한 시위 참여 주체로 보는 여론은 존재하지 않았다. 11월 초 국회에서 선거연령을 낮추자는 얘기가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학생들은 아직 뭘 몰라. 그들에게 투표권을 줘서는 안 돼’라는 기성세대의 반응들이 대부분이었다.

 

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청소년들이 감히 세상일에 나선 걸까

 

이번 이슈에 접근하는 청소년들의 모습은 ‘최순실 게이트’라는 거대한 사건에 흥분한 이례적인 현상일까? 하지만 그들이 단순히 ‘흥분’해서 시위에 나왔다고 얘기하기에는 그들이 겪어온 정치적 경험들이 너무 많고 그 무게가 무겁다.

 

세월호, 역사 교과서 국정화, 정유라 입시 비리, 모든 것이 청소년과 연결된다 ⓒ진보네트워크센터

 

세월호 사건으로 또래들이 정부의 도움 없이 차가운 바다에서 죽어가는 것을 본 청소년, 자신들이 공부하게 될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가 정부에 의해 밀어 붙여지는 것을 본 청소년, 열심히 공부하지 않아도 대학교에 입학하는 정유라를 보며 무력감을 느낀 청소년. 그들이 바로 지금 시위에 나온 청소년들이다. 이 모든 일에서 절대적 약자 및 피해자의 위치에 서 있던 청소년들이 박근혜 정권에 대해 분노하고 하야를 외칠 근거는 충분하다. 최순실 게이트는 그 분노의 시작점이 아니며, 청소년들의 시위 참여는 흥분이 아닌 당사자성에 기반을 둔다.

 

이번 시위는 자격이나 능력 없는 청소년들이 미성숙하지만 ‘감히’ 나선 일일까? 나이주의에 기반을 둔 청소년의 미성숙함에 대한 편견은 청소년들에게 ‘어른 말을 믿고 순종하는’, 주체가 아닌 대상으로서의 정치적 정체성을 강제로 부여한다. (막상 당사자성을 지닌 주체는 청소년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나이의 차이가 성숙함과 미성숙함을 나눌 수는 없다. 민주주의 정신에 따르면 누구나 집회에서 “너희같이 어린 애들은 이런 데 오는 거 아니야”, “아이고 기특하네” 등의 가치판단을 당하는 대상으로 취급받지 않아야 한다. 동시에 정당하며 당연한 정치 참여 주체로서 인정받을 권리가 있다. ‘당사자성’을 강하게 가지는 청소년들에게 “감히 세상일에 나서지 말라”는 것은 청소년을 억압하는 기득권층의 횡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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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

 

당사자 없이, 혹은 당사자의 입장을 생각하지 못한 채 이루어지는 정치적 논의는 탁상공론에 불과할 수 있다. 그에 앞서 그 논의에서 당사자의 발화 자격을 박탈시키고 당사자를 배제하려는 기성세대의 움직임은 논점의 핵심을 다루는 것을 실패하게 하고, 논의의 정당성을 떨어뜨린다.

 

성인인 당신은 과연 성숙한가요

 

청소년들은 아직 경험이 부족하니 서두르지 말라는 정미홍의 발언은 그런 의미에서 어불성설이다. 성인이 되면 경험이 풍부하고 아는 것도 많으니 투표를 할 수 있고 세상일에 나설 수 있다는 그의 논리는 성숙함과 미성숙함에 대한 이분법적 논리를 전제로 한다. 하지만 사회에서 뭐든 잘할 것처럼 여겨지는 ‘성숙한’ 자칭 어른들은 결론적으로 ‘미성숙한’ 청소년들을 바다에서의 죽음, 왜곡된 교과서, 능력주의의 패배에서 구해주지 못했다. 오히려 이 모든 사건의 원인 제공자는 성인이었고 직접적 피해자는 청소년이었다. 정미홍의 논리라면 4.19혁명, 광주 민주화 운동, 유관순 열사의 독립운동도 모두 미성숙한 청소년이 세상일에 감히 나선 사례가 될 뿐이다. 20살을 기준으로 성숙함과 미성숙함을 나누고, 청소년을 행위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사회의 잣대는 얼마나 부질없는가.

 

어른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정치의 모든 것을 아는 성숙한 사람이라는 단언을 할 수 없다. 그건 청소년들도 마찬가지이다. 정치의 모든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은 청소년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우리 모두 정치에 대한 완벽한 지식습득이 불가능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본인의 자리에서 자신의 권리를 위해 정치판에 가능한 한 크게 소리를 내는 것뿐이다. 성숙과 미성숙을 가르는 편견적 태도는 성인들이 형성해 놓은 권위주의 의식과 기득권에의 집착이고 그 자신들도 겪어온 ‘청소년 혐오’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일 뿐, 정당성을 가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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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청소년도 시민이다

 

정미홍의 발언은 정치 참여 주체로서의 청소년의 정치적 정체성을 무시하고 미성숙함에 대한 편견을 답습한다. 이 발언에서의 궁극적인 가장 큰 문제점은 ‘시민으로서의 청소년’을 부정한다는 것이다. 정미홍의 발언은 청소년 혐오를 넘어서 청소년을 참정권을 가진 시민에서 배제하고 시위참여를 금기시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참정권은 시민의 기본권에 명시되어있는 기본권이다. 시민으로서의 청소년을 인정하지 않는 정미홍의 발언과 이를 뒷받침하는 사회적 풍토는 단언컨대 기본권을 지켜야 할 민주주의 정신에 어긋난다.

 

정미홍의 발언에는 청소년도, 시민도, 민주주의도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기성세대가 규정한 청소년’이 존재할 뿐이다. 그녀의 발언이 대상 이 없는 ‘막말’에 그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글. 모킹버드 (sinjenny9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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