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라의 이화여대 입학 특혜는 공정한 입시에 대한 모두의 믿음을 무너뜨렸다. 그 믿음이 있었기에 중고등학생 시절을 바쳐 ‘실력’을 쌓기 위해 노력해왔고, 결과에서 비롯한 격차도 감수해온 것인데. 믿음이 사라진 자리에는 매 순간 시간에 쫓기고 잠을 쫓으며 공부하던 학생들과 자녀의 성적이 오르내릴 때마다 마음 졸이던 수많은 부모의 분노가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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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불어민주당

 

 

특혜를 향한 강한 분노는 뒤집어 보면 공정성에 대한 높은 사회적 요구를 의미한다. 이 맥락에서 수능은 가장 투명하고 객관적으로 실력을 측정할 수 있는 최선의 입시 제도라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어왔다. “나는 당당하게 수능을 치르고 대학에 들어왔다”거나 “재수생 입장에서 정유라를 보면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다”라는 반응도 최소한 수능은 공정하다는 믿음에서 나온다. 그러나 과연 수능은 공정한가?

 

 

수능에서 받은 성적이 정유라가 누린 특혜와 다르게 인정받는 것은 ‘내 실력’으로 이룬 성취이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졌을 때, 가장 뛰어난 성취를 보이는 사람이 가장 큰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다. 그 논리에 따르면 높은 수능 성적을 거둔 사람이 명문대에 입학할 자격을 얻는다는 결론은 매우 자연스럽게 들리지만 현실은 논리처럼 명쾌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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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수능은 기회 균등이 아니다

 

우선, 수능이라는 기회는 모두에게 균등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제도적으로는 그렇게 주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고등학교 교과과정을 이수한 학생이라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출제된다고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균등하지 않다. 각 고등학교에 따라 교육의 질은 천차만별이다. 교육의 범위를 학교 밖으로 확대하면 그 차이는 더욱 벌어진다. 사교육, 어학연수, 정서적인 지원 등 개인의 사회경제적 환경에 달린 조건들은 무수히 많다.

 

 

올해 초 경기도교육청에서 발표한 ‘통계로 보는 교육정책’ 자료에 따르면 월평균 가구소득이 높은 가구 자녀의 수능 점수 소득이 낮은 가구의 자녀보다 평균 43.42점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도교육청은 “성적은 개인의 학습 습관과 태도, 부모의 경제적 자본과 양육 태도, 학교 분위기 등이 복합적으로 나타난다”는 입장을 함께 밝혔다. 이와 비슷한 자료가 거의 매년 나오지만, 여전히 한날한시에 똑같은 문제를 푼다는 이유만으로 수능은 공정한 출발선인 것처럼 포장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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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교육통계센터

 

 

외부적 조건들의 차이들은 너무나 쉽게 외면당하지만, 내부적 조건, 노력의 차이는 모든 결과의 차이를 설명해내는 단 하나의 요인으로 크게 주목받는다. 노력만 한다면 점수를 올릴 수 있으므로 높은 점수는 그만큼 많은 노력의 결과라는 신화가 자리 잡은 것이다. 이 신화에는 낮은 점수가 환경이 아니라 너의 부족한 노력 탓이라는 암시가 담겨있다. 물론 어려운 환경에서도 열심히 노력해 훌륭한 성과를 거둔 이들은 항상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존재가 노력하면 되는데 왜 노력하지 않느냐는 다그치는 시스템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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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누가 노오력을 믿나요? ⓒ 아마미 하루카

 

 

 

성취를 보상받는 것은 당연하지 않다

 

 

심지어 성적은 노력을 그대로 반영하지도 않는다. 남들과 똑같이 노력하고도 훨씬 큰 성취를 거두는 이들이 있다. 이들의 자질은 운 좋게 좋은 환경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점에서는 정유라의 돈과 다를 바 없지만, 모두에게 실력으로 대접받는다. 어디서부터 타고난 자질이고 어디까지 후천적인 노력인지 구분하기도 어렵지만, 자질이든 노력이든 성취는 보상받을 만한 것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게 박혀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취가 보상으로 이어지려면 한 가지 조건이 더 충족되어야 한다.

 

개인의 성취에 보상이 따르는 것은 단지 그가 잘났기 때문이 아니다. 사회가 탁월한 실력을 갖춘 이들을 우대하는 이유는 그들의 실력이 사회 전체를 위해 쓰일 것이라는 기대에 있다. 사회 구성원들은 더 유능한 사람이 더 큰 책임을 지는 사회가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고 그 성과가 모두에게 혜택을 가져다준다는 전제 아래 유능한 사람이 조금 더 많이 받아도 된다고 합의한 것뿐이다.

 

하지만 당장 치열한 경쟁에 휘말린 수험생들에게 이런 말들은 공허한 울림에 그친다. 수능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는 바짝 더욱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다짐하는 순간마다, 지금 내가 쏟은 노력과 그로 인한 성취에 대가가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는 마음만 자랄 뿐이다. 수능으로 대표되는 현재의 경쟁적 입시 체제에서는 사회 전체를 이롭게 해야 한다는 보상의 조건은 잊히고, 개인의 출세를 위한 투자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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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지 않는 것도 실력? ⓒ SBS 

 

 

규칙이 지켜지지 않는 사회

 

개인의 실력에 따라 사회 구성원 간 격차를 정당화할 수 있느냐와 어느 정도까지 정당화될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격차가 정당화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정도에 한계가 있어야 한다. 아무리 실력이 형편없다고 하더라도 최소한의 생존권은 보장받아야 하며, 또 정말로 뛰어나더라도 초월적인 특권을 휘둘러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실력만 있으면 다 된다’는 사고방식에 사로잡힌 사회는 종종 한계를 잊어버린다.

 

특히 한국 사회의 주류가 이 한계를 무시해왔다. 내게 우연히 주어진 환경과 자질 덕분에 얻은 실력으로 사회로부터 혜택을 입고 있으니 사회에 기여해야겠다는 사명의식은커녕, 나는 남들보다 노력해서 남들과 다른 실력을 갖추고 있으니 당연히 다른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특권의식에 사로잡힌 것이다. 이는 천재라는 소문이 자자했던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검찰 수사에서 보인 태도에서 극적으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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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짱을 끼고 수사를 받는 우병우 전 민정수석 ⓒ 조선일보

 

 

특권의식 안에는 민중이 ‘개돼지’이며 ‘미개’하다고 비웃으며, 그들은 실력이 부족하니까, 노력을 안 했으니까 존엄하지 못한 삶이라도 감수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 이는 규칙을 지키지 않고 있는 자신들을 합리화하는 핑계일 뿐이다. 실력에 따른 ‘공정한’ 결과처럼 보였던 많은 것들은 수능이 그렇듯 단지 우리가 그렇다고 믿어온 것들이다. 정유라를 향한 분노를 넘어 수능의 공정함과 실력주의에 대한 우리의 관습적인 믿음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글. 진(bibigcoma@hanmail.net)

대표 이미지. ⓒ 월드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