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체된 도로에서 사람들이 하나둘 차에서 내린다. 춤을 추며 노래 부른다. 춤과 노래는 그들이 다시 차를 타고 아무 일 없었던 듯 다시 현실로 돌아오며 끝난다. 뮤지컬 영화의 시작 시퀀스는 탁월한 강렬함이었다. 잠시 환상 속에 떠 있듯 노래하다가 아무렇지 않게 현실로 돌아오는 단호한 리듬. 영화 <라라랜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러한 리듬감을 따라 진행된다. 비슷한 장면에 인물만 달리 배치해서 연출한다거나, 미아와 세바스찬의 테마로 같은 곡이 반복적으로 흐르는 것이 그렇다. 그 리듬감은 언뜻 경쾌해 보이지만 기존의 청춘 서사를 답습하는 도구가 된다.

 

마치 평행이론처럼 <라라랜드>는 <비긴 어게인>과 닮아있었다. 두 음악영화는 일정한 리듬으로 규격에 맞춘 듯한 주제의식을 설파했다. 그건, 청년이라면 응당 가져야 할 꿈과 그에 대한 조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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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라라랜드(위), 비긴 어게인(아래) ⓒ 영화 장면 일부 캡처

 

돈과 명예보다는 낭만을

 

리듬감이 만든 도식은, 주인공들의 갈등과 방황에서 두드러진다. <라라랜드>의 세바스찬은 정통 재즈를 동경하며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바를 갖는 것이 꿈이다. 그 와중에 그는 옛친구로부터 정통 재즈와는 거리가 먼 밴드의 키보드를 맡아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그렇게 경제활동으로써의 음악을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배우 지망생이자 자신의 여자친구인 미아와 갈등한다.

 

 

<비긴 어게인>에서 그레타와 데이브가 헤어진 이유 역시 유사하다. 톱스타가 되면서 데이브가 변했기 때문이다. 이때 긍정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건 정통 재즈와 그레타가 하는 거리의 음악이다.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은 주인공이 될 수 없고, 그 모든 방황(돈과 명예에 대한 유혹)을 이겨낸 사람만이 이야기를 풀어나갈 권한을 갖는다. 현실에서도 돈이 안 되지만 보람 있는 일을 하는 사람= 청춘이라는 인식이 팽배한데, 현실과 환상의 사이에 있는 영화에서조차 청년의 꿈은 이런 뻔한 도식에 갇혀 있다.

 

 

재능은 늘 준비되어 있을 것

 

 

가장 쉬운 말 중의 하나는 노력하면 된다는 말이다. <라라랜드>와 <비긴 어게인>이 청춘의 꿈을 다루고 있지만 쉽게 와 닿지 않았던 건 ‘노오력’ 신화를 답습하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말한다. 그들에게도 온갖 장애물들이 있었다고. 하지만 그들이 마주한 장애물과 나의 장애물은 높이부터가 큰 차이를 갖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차와 집이 있다. 하다못해 뉴욕이라는 도시에 연고가 있어 신세를 질 수도 있다.

 

물질적인 것뿐만이 아니다. 아직 발견되지 않았을 뿐 반짝반짝 빛나는 재능도 있다. 유명인들이 그레타의 노래를 트위터에 올리기 전에, 세바스찬이 밴드 키보드 연주를 제의받기 전에, 그들에게는 기회만 오면 내보일 재능이 있었다. 현실 대다수는 내가 뭘 잘하는지, 아니 뭘 원하는지조차 모른다. 모든 문제는 거기서부터 출발한다. 숨겨진 재능을 적재적소에 보이기만 하면 돈과 명예를 얻을 수 있다는 상승곡선의 서사는 유행한다. 꿈이 바로 코앞에 있는데 왜 손을 뻗지 않느냐는 교살 칠판 위의 격언만큼이나 뻔한 이야기를 언제까지 봐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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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들. ⓒ스카이에듀

 

 

이미 사회적으로 궤도에 오른 인물들과 상승곡선의 서사. 이런 것들이 청춘 일반의 꿈과 좌절을 대표하는 캐릭터나 스토리가 될 수 있을까? 인류학자 리처드 로빈스는 그의 저서 <세계문제와 자본주의 문화>에서, 디즈니식 사실주의를 문제 삼은 바 있다. 디즈니 월드의 한 기획자는, 디즈니식 사실주의에 대해 ‘부정적이고 바람직하지 않은 요소들을 모두 빼고 긍정적인 요소들로만 구성한 일종의 이상적 세계’라 말한다. 이런 이야기 속에서는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바라볼 수 없으며 그 문제들은 오히려 장벽을 뛰어넘을 기회로 제시된다는 것이다. <라라랜드>와 <비긴 어게인>. 두 영화는 짐짓 어른의 영화인 척하지만 실상 디즈니다운 부분이 많은 영화였다. 라라랜드와 비긴 어게인에 드러난 장애물과 그것을 극복하는 단순한 방법이 대표적이다. 청년 예술가가 성공하는 법이란 진정성 있는 예술적 역량이고 감동적인 무대 하나가 그들의 인생을 변화시킨다.

 

 

생각해보면 이해할 수 없는 것들투성이였다. 청년 예술가가 갖는 장애물이란 유명해질 기회의 부재나 연인과의 갈등뿐만이 아니다.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음악과 연기라는 꿈을 위해 학교를 포기하고 몇 년 간 타지에 나가 사는 그 모든 것을 용인하는 집안과 특별한 수입이 없어도 깔끔하고 넓은 집에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비현실적 형편은 영화 속에서 간단히 무시되었다. 디즈니식 사실주의는 이런 식이다. 청년예술가가 갖는 현실적 문제들을 건너뛰고 아주 뻔한 장벽을 뛰어넘으며 이상적 세계를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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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세계에서 갈등이란  반드시 극복 가능한 것이고 꿈이란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 인어공주

 

 

꿈을 얻되 포기할 사랑이 있을 것

 

미아와 세바스찬, 그레타와 데이브는 결국 이별하게 된다. 서로에게 돌아서는 장면 또한 비슷한데, 미아는 세바스찬의 밴드 공연을 보다 세바스찬의 연주에 열광하는 팬들을 보며 낯선 감정을 느끼고, 그레타는 데이브의 공연을 보다 공연장을 빠져나온다. 어느 순간 낯설고 멀어진 사람을 보며 각자의 길을 간다. 꿈과 사랑의 교환. 낭만적인 이야기다. 허나 그 낭만은 어디서 오는지 우린 알 수가 없다. 수많은 청춘 서사 속 그들의 꿈은 곧잘 사랑과 자리다툼을 한다. 꿈과 사랑이 언제나 동등한 위치에 놓일 수 있을까? 현실 속 청년들이 그런 낭만적인 사랑을 누리고 있을까? 이는 마치 사랑 또한 청춘이라면 누려야 할 필수과정인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소위 몽상가라고 불릴만한 사람들이 마침내 꿈을 이루는 서사. 이 모든 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다만 화려한 영상과 음악이 모든 것을 정당화하기 전에, 클리셰로 청춘이라는 단어를 뒤덮기 전에, 진짜 우리 이야기는 어디 있을지 생각할 기회가 있으면 좋지 않을까. 준비된 재능 따위 없고, 꿈과 사랑을 등치 시킬 만큼 낭만적이지도 않으며, 현실에 안주하고 싶은 수많은 청년이 스크린 바깥에만 존재한다는 건 못내 아쉬운 일이다.

 

 

글. 샤미즈(ndhhdm9019@naver.com)

대표이미지. ⓒ라라랜드 공식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