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나는 혼자 있기를 원했다. 실제로도 혼자 있던 시간이 많았던 시기였다. 많은 사람이 참사 이후 가족을 떠올렸다고 하지만 나는 가족을 떠올리지 않았다. 언론이나 TV에서 소중한 사람들에게 ‘함께 있을 때 잘해주자’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이 싫었고 실제로 그렇게 하지도 않았다. 내가 궁금한 것은 가족에게 어색한 애정표현을 하는 방법이 아니라, 그래서 앞으로 내가 위험한 상황에 처할 때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그해 5월 초 서울지하철 2호선에서 발생한 사고와 해당 전동차에 탑승하고 있던 승객들의 행동이 나에게는 새로운 매뉴얼로 다가왔다. 승객들은 기다려달라는 서울메트로의 안내를 듣지 않고 탈출했고, 나는 ‘나 역시 똑같은 상황이라면 그렇게 하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가상의 상황과 그것을 타개할 방법을 끊임없이 상상했고, ‘컨트롤타워’의 ‘명령’ 중 무엇을 명심하고 무엇을 흘려들어야 할지를 고민했다.

 

실패와 자괴감으로 똘똘 뭉친 내가 괜히 기도 해서 부정이나 타지 않을까, 온갖 비합리적인 생각을 했다. 무신론자였던 나는 침대에서 무릎을 꿇고 세상에 존재한다고 믿고 싶은 아무 신에게나 닥치고 빌었다. 언제부터인가는 그 기도도 하지 않았다. 참사의 진행과 정부의 방침은 기도를 순진하고 단순한 행동으로 만들었다.

 

참사 며칠 후였다. 달리는 버스에서 스마트폰을 보는 일은 반복되던 일이지만 그날만은 멀미가 났다. 정확히 말하면 지하철로 갈아타자 속이 울렁거렸다. 결국 환승 출구로 가지 못하고 벤치에서 생수를 벌컥벌컥 마셨다. 여전히 화면의 숫자는 그대로다. 당분간은 카운트되지 않을 것임을 나는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것은 무엇일까? 기적같이 빠르게 줄어드는 실종자 수? 의인들의 사연? 나와 같은 마음인 사람들의 리플? 그게 무엇이든 나는 미친 듯이 안도감을 찾아 헤맸다.

 

53712-2

ⓒ 고함20

 

 

“서명하기 싫어요”

 

“아르바이트 승무원은 장례비를 못 받는대.” TV 앞에서 나는 엄마한테 괜히 그렇게 말을 걸었다. 세간의 주목에서 상대적으로 멀어지고 있는, 학생이 아닌 탑승자에 대해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나와 또래인 그를 오래오래 기억해야겠다는 의무감이 싹텄다. 엄마, 나도 그 사람과 다르지 않아. 미안해. 엄마한테 안 좋은 일이 생겨도 나는 엄마를 구할 수 없을 거야. 내가 비슷하게 죽어도 애쓰지 마. 어쩔 수 없어. 진짜 하고 싶었던 마구잡이식의 걱정, 혹은 두려움은 속으로 삼켰다. 단원구가 ‘잘 사는 동네는 아니다’라는 뉘앙스를 담은 말들과 함께, 배에 탑승한 학생들의 경제 상황에 대한 비난이 쏟아질 때였다.

 

홍대입구역 출구에서 약속을 기다렸다. 세월호 진상규명 서명운동을 하는 분이 다가왔고, 내가 이미 서명했음을 알리자 그는 내 맞은편 돌의자에 앉아있던 사람에게 다가갔다. 그가 연거푸 서명 용지를 내밀었지만 앉아있던 사람은 손을 내젓고 방향을 바꿔 앉으며 끝내 서명을 거절했다. “싫어요”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맑은 날씨에 그 말이 날벼락처럼 들렸다. 그때쯤 SNS에서 “지하철에서 내려보니 누가 내 노란 리본을 잘랐다”는 글을 읽었다. 나는 습관처럼 손을 뒤로 뻗어 가방의 리본을 매만졌다. 아직 리본은 무사하다. 이건 오래전 약한 충격에 부딪혀 망가져 버린 플라스틱 조립 레고가 아니었다. 쉽게 끊어질 리 없음을 믿었지만,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무기력이라면

 

2014년 4월 16일 이후 ‘내가 놓친 죽음은 어디에 있을까’라는 질문은 죽음에 관한 것들을 습관적으로 떠올리던 나에게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뉴스로 쏟아지는 약자들의 이야기가 나와 다르다고 생각한 것은 착각이었다. 슬픈 것을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설득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인간의 기억이 가장 강력한 기록이라는 것을 상기하고 싶다. “나는 사건과 상관없는 사람인데 어떡하라고?” 같은 물음은 이미 무의미해졌다.

 

어느 날 나는 이를 악물고 sns의 ‘세월호봇’을 팔로우했다. 정해진 시간에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기사를 매일매일 올려준다. 어느 대학가 식당에서 “세월호 얘기 왜 이렇게 계속하냐”는 푸념을 들은 이후였다. 의외로 그런 사람들은 한 다리 건너마다 있었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죄책감을 지지 않고 살고 싶은 마음은 욕심이다. 나는 매초 매 순간 무언가에 빚을 지고 있다. 슬프게 살겠다는 것이 아니다. 염치를 갖춘 인간이 되겠다는 것이다. 아니 슬프고 무기력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사건의 본질이라면 말이다. 동시대를 사는 인간으로서 시민으로서 짊어져야 하는 무게다. 어느 날 당신이 “친구들과 저녁을 먹는 데 갑자기 세월호 이야기가 뉴스에서 흘러나와 모임의 분위기가 침체되었다”고 해도, 그것은 고쳐야 할 장면이라기 보다는 우리의 일상에 추가될 수 밖에 없는, 받아들여야 할 자연스러운 풍경일 것이다.

 

글. 블루프린트(41halftim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