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X씨 소문 들었어요, 걸레시라고…”

 

여성 XX씨가 게임 플레이 중에 들은 말이다. 상대방과 특별히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니다. 그저 게임 ID에 자신의 본명이 들어가 있을 뿐이었다. 그 이름이 딱 봐도 ‘여자이름’인 게 문제였다. 상대는 계속해서 ID 속의 ‘여자이름’을 가지고 ‘농담’을 걸었고, 같은 팀 플레이어들은 그 농담에 낄낄거렸다. XX씨 본인에게 그것은 어떻게 봐도 성폭력이었다. 게임이 끝나고 그는 해당 플레이어를 ‘성차별 발언’ 사유로 신고했다. 처리가 어떻게 됐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런 경험은 사실 특별한 일이 아니다. 근래 게임 내 성차별, 혐오 발언 문제는 뜨거운 이슈다. 게임 내 여성 플레이어들이 점차 늘어나는 데다, 근 몇 년간 성행한 페미니즘 이슈의 영향인지 그에 대한 문제제기도 활발하다. 여성들은 게임 내 성폭력 상황을 아카이빙하고 심한 사유에 대해선 경찰에 직접 신고하기도 한다. 그러나 몇몇 개인에 대한 직접 신고가 게임 전반의 성폭력을 효과적으로 줄이고 있지는 못하다. 이미 게임 문화 내부에 자리 잡은 여성혐오 정서가 견고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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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위터 계정 ‘옵치하는 여자들’

 

게임 내 여성혐오 문제는 최근 대세 게임으로 떠오른 오버워치에서 특히 이슈화됐다. 그러나 이는 비단 해당 게임의 문제가 아니라 게임 산업 전반에 깔린 지독한, 그리고 아주 오래된 문제다. 게임 내 성차별, 혐오 발언 문제가 급증했다는 근래의 추세는 사실 이미 예전부터 행해져 오던 문제가 이제야 논쟁적으로 점화되기 시작했다는 것에 다름없다.

 

당장 LOL, 오버워치 등 인기 게임에 접속하면 ‘박아줘’나 ‘질사'(질내사정을 줄인 말) 따위의 포르노적 은유가 담긴 아이디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문제는 그러한 언어 대부분이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객체화하는 남성욕적 문화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불특정다수 여성을 일종의 섹스 오브젝트로 자리하게 하는 언어들은 여성 유저의 입장에서 불편할 수밖에 없다.

 

“여자 없냐? 따먹고 싶네”… 남성들의 ‘성폭력적 놀이문화’

 

게임 채팅 중엔 은근한 여성 혐오적 농담이나, 아예 성희롱을 일삼는 언어 행위도 숱하다. 여성 유저가 보이거나 여성의 이름이 아이디에 포함된 유저가 있을 땐 (마치 서문의 사례와 같이) 그 유저를 특정하여 성폭력이 쏟아지는 일을 보기가 어렵지 않고, 음성 채팅 상에선 신음을 내달라는 등 성적인 요구를 하는 경우도 이미 여러 번 고발된 바 있다. 게임 내 전투기술이 종종 ‘자박꼼'(‘여자에게 성기를 박으면 꼼짝 못 한다’라는 뜻의 은어)에 비유되고, 동작 모션 반복을 통해 강간행위를 연상시키거나, 게임 내 전투 양상을 강간이나 성행위에 비유하기도 한다.

 

일련의 행위들은 익명성이 강조된 온라인상에서 가벼운 장난으로 가장된다. 그러나 실제 그 장난에 직접 타깃이 되는 누군가를,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간접적으로 불쾌감을 느낄 누군가를 가정했을 때 그것은 피해 정황이 명백한 언어 성폭력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가령 불특정한 누군가(여성)를 ‘따먹고’ 싶다는 발언은 같은 여성을 음식과 같이 ‘먹는 대상’으로 범주화시킨다는 점에서 충분히 문제가 있다. 실제로 많은 여성 유저들이 게임 플레이 중 여성을 가리키는 혐오 발언 때문에 불쾌했던 경험을 토로하고 있다.

 

문제의 원인은 무엇일까? 누군가는 언어 성폭력을 주도하는 일부 어글리 유저들이 문제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미 많은 수의 여성 유저들이 일상적인 폭력의 경험을 토로하는 와중에 그것이 몇몇 비정상적인 소수만의 문제라 말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애초 게임 내 언어 성폭력이 많은 ‘정상인’들에게 배척받는 특수한 경우의 수였다면, 이미 나름의 자정을 거치거나 최소한의 저항 담론이라도 나와 있어야 옳다. 참다못한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이제야 막 터져나오는 게 아니라 말이다. ‘특수한 개인의 만행’을 넘어 게임 내 놀이문화 자체를 의심해봐야 하는 건 그래서다.

 

카톡방, 웹사이트부터 게임까지… ‘성 인지’ 부재의 연장

 

‘여성혐오 문화’, 사실 작년 한 해 동안 우리는 그 비슷한 흐름을 익히 경험해 왔다. 고려대, 연세대 등 캠퍼스 내부에선 ‘카톡방 성희롱’ 사건이 달마다 터져 나왔고, 7월엔 신촌 인근 대학들의 온라인 커뮤니티 ‘타임테이블’이 익명 게시판의 여학생, 여대 대상 여성혐오 문제로 문을 닫기도 했다. 여러 이슈를 관통하는 문제의 핵심은 하나였다. 보편 남성 집단 내부에 자리 잡은 뿌리 깊은 여성혐오(Misogyny)문화. 특정-불특정 여성에 대한 대상화, 성애화, 사물화를 동반한 ‘농담’들은 바로 그로 인해 쉽게 당연시되고 정당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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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카톡방 폭로는 언어 성폭력 이슈의 포문을 열었다 ⓒ 고함20

 

최근 문제가 된 게임 내 언어 성폭력도 결국은 마찬가지다. 남성 유저 중심의 폐쇄적 커뮤니티, 보장된 익명성, 가볍고 Un PC한(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냉소주의적 ‘개드립’ 트렌드, 과장된 형태의 사회적 남성성까지. 지금껏 남성들의 전유물처럼 존재해온 게임은 여성을 하나의 소유물, 성적 대상 혹은 숭배와 멸시의 대상으로 바라보며 그를 통해 자신의 남성성을 인정받는 전형적인 ‘남성문화’를 형성하기 더없이 좋은 공간이다.

 

즉, 애초 여성이 배제된 (혹은 없다고 생각하는), 그리고 익명성이 보장되는 상태에서 남성들은 아마도 실제 여성 지인들 앞에선 스스로 수행하게 될 최소한의 자기통제를 의도적으로 상실하곤, 마치 술자리 속 ‘우리끼리’의 음담패설처럼 혐오성 발언을 농담으로 소비하는 것이다. 바로 그 우리끼리 술자리처럼 이 또한 사회의 총체적 성 인지 능력 부재로 인한다. 공간을 공유하는 유저들 간 성 인지의 부재 속에서 혐오 섞인 말은 아주 쉽게 전파된다.

 

산업의 문제, 시스템의 필요성

 

바로 전 게임에 성희롱을 당한 ‘여성 XX씨’에게 가장 큰 두려움은 다음 게임, 혹은 그다음 게임에서 언제든지 똑같은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이는 게임 산업, 나아가 사회 자체에 깔려있는 혐오 정서가 개선되지 않는 이상 극복하기 어려운 두려움이다. 개인 여성들이 대응할 방법은 고작 ID를 남자처럼 짓거나, 부러 말투를 험하게 하는 등 자신의 ‘여자 같음’을 숨기는 것 정도에 불과하다.

 

게임 내 성폭력을 고발하는 ‘전국 디바 협회’ 등의 트위터 계정이 등장하긴 했지만 아직까진 민간차원의 부분적 노력이다. ‘남성의 영역’에 들어온 많은 여성들은 여전히 그 공간의 폭력적 문화를 감내하거나, 떠나야 한다. 구조 전반의 인식을 전환할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건 다분히 사회적인 문제다. 이 사회 다른 많은 영역이 그랬듯이 ‘남성의 영역’이라 믿어져 온 게임도 사실은 ‘남성의 영역’ 따위가 아니고, 그 전에 그 어떤 ‘누군가의 영역’에도 타인을 혐오할 권리 따윈 주어질 수 없는 거니까.

 

글. 인디피그(ghin2800@gmail.com)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