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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혐의로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구속되었다. 청문회에서 보여준 태도에 대한 비난과 함께 세월호 반대 집회를 사주했다는 의혹까지 더해져 조 전 장관의 수감에는 많은 이목이 집중되었다. 구속과정에서 다른 정치인들과의 차이점이 있었다면 조 전 장관의 ‘민낯’이 화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너무 다른’ 조윤선의 화장 전후 모습”, “비포 & 애프터… 구속 후 초췌해진 조윤선”, “조윤선·김고은·김연아, ‘무쌍’에게 아이라인이란?”. 조윤선 전 장관의 구속 이후 쏟아진 기사들의 제목이다. 구속 자체가 아닌 조 전 장관의 외모에 초점이 맞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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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뉴스 갈무리

 

모순적이면서도 익숙한 여성성의 굴레

 

정치인 조윤선을 이야기할 때 그의 외모는 빠지지 않는 화제였다. 조 전 장관은 서울대학교라는 학벌과 사법고시 출신이라는 경력과 더불어 화려한 외모로 주목받았다. 조윤선의 외모와 여성성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의 정치 행보에 가장 먼저 따라붙는 수식어였다.

 

2015년 5월 JTBC ‘썰전’에서는 남성패널들이 ‘조윤선과 나경원의 미모 대결’이라는 제목 아래 이들의 외모를 비교하며 누가 더 예쁘다고 생각하는지에 따라 ‘윤선파’, ‘경원파’를 자처하기도 했다. 

 

남성 연예인과 패널들은 시사 프로그램에 나와서 여성 정치인을 정치인이 아닌 ‘여자’로 환원한다. 정치적 권력과 지위로 계산했을 때는 우위를 점하지 못하는 남성들도 자신보다 지위가 높은 여성에 대한 외모 평가에 있어서는 거리낌이 없는 것이다. 이는 그들에게 ‘젠더 기득권’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여성 패널도 대권 주자인 반기문과 문재인에게 ‘잘생김 대결’ 따위를 시키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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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TBC썰전

 

이는 익숙한 모습이다. ‘젠더 기득권’을 쥔 남성들은 언제나 여성들을 구석구석 평가하고 규정해왔다. 가부장적 위계 위에서 여성을 평가하는 위치에 있었던 남성들은 여성 정치인의 외모도 술자리 농담처럼 쉽게 소비할 수 있다.

 

김경진 국민의당 수석 대변인이 조윤선을 ‘예쁜 여동생’이라고 칭할 수 있는 권력도 여기에서 나온다. 이는 김 대변인이 조 전 장관보다 권력이 강하거나 정치 경력이 많아서가 아니었다. 김 대변인은 단지 남성이기 때문에, 여성인 조 전 장관을 자신과 동등한 정치인이 아니라 ‘예쁜 여동생’으로 호명할 수 있는 것이다.

 

여성성이라는 굴레에 갇힐 수밖에 없는 여성들에게 외모에 대한 칭찬과 비난은 가장 큰 모욕이자 약점으로 작용해 왔다. 때문에 이러한 명명은 간단하고 효과적으로 여성 정치인을 평가하는 도구가 되었다.

 

 

언제나 인간이기 전에 ‘여성’으로 호명되는 이들

 

 

정치면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언제나 그들의 여성성 자체에 주목받아왔다. 16대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의 대변인이 되었던 조윤선은 이회창 후보의 강하고 남성적인 면을 보조해줄 ‘부드럽고 여성적인’ 대변인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는 사이 그가 응당 평가받아야 하는 것들, 정치관, 정책, 행동, 발언은 가려졌다.

 

현재 대선 후보들과 선거 운동을 함께하는 부인들도 마찬가지이다. ‘내조 정치’라며 경쟁하듯 앞다투어 대권 주자의 행보에 동참하는 이들의 모습에서는 미셸 오바마와 같은 개인의 캐릭터보다는 모성, 내조, 부드러움과 같은 전형적인 여성성만이 강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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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널A 뉴스

 

이는 조윤선 만의 문제도, 정치권 안의 여성들 만의 문제도 아니다. 여성 일반은 학교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언제나 주체이기 이전에 여학생으로, 여직원으로, 어머니로 호명된다. 조윤선의 ‘민낯’을 조롱하는 행태가 문제인 것은 이 때문이다.

 

여성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방식의 외모 평가와 조롱은 오랜 시간 사회와 언론 속에 녹아들어 여성들에게 남성적 시선(male gaze)를 주입한다. 여기에 익숙해진 여성들은 남성적 시선을 답습해 ‘나도 여자지만’으로 시작하는 동조를 보내며, 이에 반대하는 여성들은 끊임없는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어떤 쪽으로든 이는 비극이다.

 

 

‘민낯’이 아니라 행동에 초점을

 

 

정국에 대한 답답함과 분노가 더해갈수록 사람들은 명쾌하고 자극적인 ‘사이다’를 기대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윤선의 ‘민낯’은 쉽고 재미있는 자극제이다. 정권을 등에 업고 승승장구하던 정치인의 비참한 말로는, 화려한 화장과 ‘민낯’의 대비와도 언뜻 겹쳐 보인다.

 

조윤선 전 장관이 ‘민낯’과 같은 가볍고 여성혐오적인 유희 거리로 소비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가 화장을 했는지 안 했는지 보다는 누구의 지시로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세월호 반대 집회를 사주했는지 등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민낯에 대한 조롱이 아닌, 그를 제대로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더 높여야 한다.

 

글. 유디트 (ekitales@gmail.com)

*이글은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