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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계정의 대응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지만 연합뉴스는 트윗을 삭제하지 않고 있다.

ⓒ 트위터 캡쳐

 

지난 3일 트위터에서 <연합뉴스> 트위터 계정의 ‘헛발질’이 화제가 되었다. ‘남편 출근하자 “택배요”… 50대 주부 잔혹 살해 고교생 징역 18년’이라는 뉴스를 본 한 트위터 이용자가 왜 이 사건의 가해자인 고교생에게는 “남성이라는 성별표기를 하거나 ‘ㅇㅇ남’이라고 부르지 않냐”며, 일부 욕설을 섞어 ‘한남뉴스’라고 비난했다.

이에 <연합뉴스> 트위터 계정 관리자는 공식 계정을 통해 “그런다고 해서 욕하고 저주할 일인가요?”라는 트윗을 남겼고 이 글은 현재까지 9800여 회 공유(리트윗)되고 있다.

관리자가 공식 계정과 개인 계정을 헷갈렸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사건은 단순히 재미있는 해프닝으로 넘기기에는 시사하는 바가 많다. 기사 제목에 대한 트위터 이용자의 문제 제기와 여기에 대한 <연합뉴스> 측의 반응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기사 제목에 문제제기를 한 트위터 이용자는 왜 ‘남자 고등학생’은 ‘남고생’이거나 ‘살해남’으로 명명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는 그러므로 ‘ㅇㅇ남’이라는 딱지를 붙여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그동안 대체 왜 여성들에게 ‘ㅇㅇ녀’라는 이름을 붙여왔냐는 의미로 해석된다. 지난 2015년 8월 고등학생 여성이 지적 장애인을 학대한 사건을 두고 언론이 ‘악마 여고생’이라고 부른 것이 대표적인 예다.

여고생, 여대생, 여교사 등은 너무나 당연하게 쓰이는 데 비해 남고생, 남대생, 남교사라는 말은 익숙하지 않다. 이는 단순히 ‘기분탓’이 아니다. 지난 1개월간 ‘여고생’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뉴스는 무려 1661건이었던 것에 반해 ‘남고생’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뉴스는 23건밖에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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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생과 남고생이 들어간 기사의 수는 수십 배나 차이가 난다.

ⓒ 네이버 캡쳐

 

이뿐만이 아니다. 포털사이트 뉴스창은 차별적 표현과 자극적  제목으로 뒤덮여 있다. 이렇게 ‘망한’ 기사 제목들이 탄생하는 것은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 우리가 차별적이고 혐오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살해되어 가방에 담긴 피해자를 ‘가방녀’로, 고양이 밥을 주다 벽돌에 맞아 사망한 사건을 ‘캣맘 사건’으로 불러온 기자들이 의도적으로 피해자를 모욕하기 위해서, 혹은 적극적으로 여성 혐오를 표출하기 위해서 그러한 이름을 붙였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최대한 빠르고 효율적으로 내용을 전달해야 한다는 목표 속에서 차별적 언어에 대한 경계는 덜 중요하게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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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를 가방女라고 표현했던 SBS 모닝와이드.

ⓒ SBS 뉴스 캡쳐

 

트래픽 경쟁으로 인한 기사의 상품화도 여기에 한몫한다. 대부분의 인터넷 언론사들이 광고를 주 수입원으로 삼는 만큼 기사의 클릭수는 곧 돈이 된다. 비슷한 내용의 뉴스 중 어떻게든 눈에 띄기 위해 각 언론사들은 점점 더 자극적인 제목을 만들어낸다. 그중 최악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지난해 6월 <헤럴드경제>의 기사이다.

 

신안군의 초등교사가 마을 주민들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한 사건을 두고 해럴드경제는 ‘만취한 20대 여교사 몸에서 3명 정액… 학부형이 집단 강간’ 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20대, 여교사, 정액 등 자극적이고 일명 ‘잘 팔릴 만한’ 단어들을 마구잡이로 짜깁기한 것이다. 이는 기사 내용을 잘 전달하려다가 생기는 실수라고 볼 수도 없고, 사건을 유희적인 콘텐츠로 포장한 것이다. 언론사가 지켜야 할 보도 윤리나 피해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찾아볼 수 없는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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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에 항의하는 한 시민이 헤럴드경제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 페이스북 ‘강남역 10번 출구’ 페이지

 

이렇게 의도하지 않았든 혹은 의도했든 차별적이거나 혐오적인 기사가 등장했을 때, 무비판적으로 그 기사를 받아쓰는 언론의 관행은 여러 문제를 재생산한다. 최근에는 특검에 소환된 최순실이 때아닌 민주주의를 외치며 절규하자, 이를 보고 있던 한 청소노동자가 ‘염병하네’라고 말했던 사건이 있었다.

 

1월 25일 이 사건을 처음으로 보도한 날 기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 청소노동자에게 ‘청소아줌마’라는 이름을 붙였고,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수백 건의 보도에서 그는 계속해서 ‘청소아줌마’로 불리고 있다. 일단 한 번 편리한 이미지가 생기면 이어지는 수많은 보도에서는 이를 문제의식 없이 받아쓰는 것이다.

 

기사 제목들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최근의 지적이 아니다. 거의 매일같이 언론의 부적절한 기사 제목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심지어 ‘ㅇㅇ녀’에 대한 문제의식은 ‘개똥녀’가 등장한 2005년부터 제기되었다. 10여 년 동안 언론에서의 혐오적이고 차별적인 단어사용을 지적해왔음에도 고치지 않는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ㅇㅇ남은 왜 없냐’라는 비판에, ‘그런다고 욕하고 저주해도 되는거냐’며 대답하는 <연합뉴스> 계정의 모습은 씁쓸한 블랙코미디를 보는 것 같다. 이들은 그동안의 비판을 제대로 듣고 있기는 했을까? 언론은 사건을 직접 경험할 수 없는 일반의 사람들이 사건을 보는 눈이 되어준다. 이러한 목소리를 ‘저주’라고 넘기지 않고, 보도에 반영하는 책임의식이 필요하다.

 

글. 유디트 (ekitales@gmail.com)

*이 글은 오마이뉴스(www.ohmynews.com)에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