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집은 즐거운 공간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즐겁지만은 않은 공간이었다. 가건물에서 기숙사로, 고시원에서 아파트로, 가족의 집에서 나의 방으로, 옮길 때마다 ‘집’과 ‘집 속의 나’에 대해 상상하곤 했다. 상상할 때면 자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집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 이것은 ‘잘 모르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1. 혼자인 우주

 
어렸을 땐 형과 같은 방을 썼다. 우리는 침대 두 개를 조금 띄워두고 사용했는데, 잠버릇이 고약한 나는 종종 침대 틈새 바닥에서 눈을 뜨곤 했다. 거기서 자주 악몽을 꿨다. 침대 사이 구덩이에 빠져 벌벌 떨던 꿈속의 나를 기억한다. 침대 위론 귀신이나 악마 같은 것들이 나를 찾아 돌아다녔다. 그 나잇대 아이들이 상상할 만한 가장 끔찍한 형상을 하고 말이다. 기억나는 선에서 그게 아마도 생애 첫 악몽이다.

 

대학에 와선 자취를 했다. 월세 37만 원의 고시원. 그리 푹신하지 않은 침대와 딱 그 침대만 한 여유 공간, 그리고 구석의 책상이 내 가진 공간의 전부였다. 한 칸짜리 좁은 방엔 창이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주방 환기용 작은 창문 같은 것이 있긴 했다. 다만 주방이 없으므로 주방용은 아니었고, 바깥으로 딱 붙은 옆 건물 덕에 볕이 들지 않았다. 불을 끄면 방은 항상 어두웠다. 그 어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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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기사링크)

 

넌 왜 그렇게 집에 들어가기 싫어해? 언젠가 질문받았다. 뭐라고 할까, 우주 속에 혼자 있는 것 같아. 어딘가 좀 젖어있는 느낌으로 나는 그렇게 말했다. 아마도 외롭다고. 좁고 어두운 방에서 잠에 들 때면 정말 그런 기분이 들곤 했다. 귀가가 점점 늦어졌고, 이어폰을 꽂고 자는 습관이 생겼다. 빠르거나 시끄러운 음악이 좋았다. 마음에 공백이 생길 틈 없게, 잘게 썰린 박자를 몸속으로 때려 넣어야 했다. 음악이 없는 날엔 종종 가위에 눌렸다.

 

예컨대 생활을 위한 매우 강박적이고 소모적인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믿었다. 그것을 끝없이 밖에서, 밖에서, 밖에서 끌어다 썼다. 친구들, 술자리, 게임이나 SNS, 연애 따위가 그를 위해 소비됐다. 전형적이고 의존적인 집착이었다. 우정이나 사랑, 혹은 성격 같은 단어들로 포장해 놓은 자기 위안의 어디쯤에서 나는 누군가에게 혹사당했고, 또 누군가를 착취해갔다. 때마다 외로움은 좋은 핑계였다.

 

일방적인 소모를 위한 관계는 역시 그 끝이 좋을 리 없다. 겨울, 고시원 좁은 방의 계약이 끝날 때 즈음 나를 둘러싼 관계 대부분은 파탄을 맞았다. 너를 위해서만 살게 되는 것 같다고, 마치 갉아 먹히는 것만 같다고 누군가는 말했다. 우습게도 혼자 있기 싫다고 매일 밤 난리를 치던 그 방에서 혼자가 되어 나왔고, 아마도 그 해로부터 찬바람 두어 번을 더 맞고서야 ‘혼자’인 우주를 가까스로, 아니 조금은 받아들인 것 같다.

 

문득 어린 날의 악몽을 떠올려 본다. 침대 사이 좁은 곳에서 여러 허상들에 몸을 떨던 나날들. 그때 조금 덜 어렸다면 그곳에서 나올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 공간은 20대의 고시원 방으로도 치환된다. 나에게 또 타인에게 너무 많은 허상들을 강요하던 나날들. 그게 ‘혼자인 우주’를 벗어나는 길이다, 믿었던 시간들. 이제 조금은 달라졌을까? 방 밖으로 자연광은 어쨌든 밝다.

 

@인디피그

 

2.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의 유명한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는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는 걸 안다. “집은 편안한 공간”이라는 명제를 통째로 부정하긴 어렵지만, 부모님의 간섭이나 형제자매와의 신경전으로부터 자유로운 나만의 공간이 없다면 집은 완벽하게 편안한 공간이기 힘들다.

 

기억 속 가장 오래된 집은 거실도 넓고 방도 3개나 있었다. 그 집은 상시 거주를 위해 지어진 건 아니었고, 근처에 딸린 축사를 관리하던 사람이 하루 이틀 묵으려고 만든 가건물이었다. 집은 몹시 추웠고 가장 작은 방 하나에만 온기가 돌았다. 엄마, 아버지, 남동생, 나 4명이 작은 방 하나에 다닥다닥 붙어서 온갖 의식주를 해결했다. “방에서 혼자 자는 게 무섭다”고 말하는 친구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우리 가족은 방이 2개 있는 집으로 이사를 했다. 하지만 여전히 내 방은 없었다. 방 하나는 아버지의 차지였고, 아버지가 혼자 쓰는 방보다 조금 작은 방에서 엄마와 남동생과 내가 복작이며 지냈다.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면 부자가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순진한 중학생이었기에, 아버지가 쳐들어와 가정폭력을 행사하는 엄마의 방이 아닌 ‘내 방’에서 조용히 공부하고 싶었다.

 

친구들과 부대끼며 살던 고등학교 기숙사를 거쳐 대학생이 되었을 때 처음으로 내 방을 갖게 됐다. 침대와 책상이 차지하는 공간을 빼면 사람 하나 발 뻗고 누울 수도 없게 작은 방이었지만 그곳에서 나는 공부도 할 수 있었고, 혼자 조용히 술잔도 기울일 수 있었고, 좋아하는 음악을 크게 틀어놓을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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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tbc

 

다만, 내 방에 친구를 데려오고 싶진 않았다. 사람들은 자취를 시작하면 친한 친구들을 매일 같이 부른다는데 나는 오겠다는 친구도 대차게 거절했다. 왜냐고? 방이 좁기도 했지만, 나만의 공간에 타인을 들이고 싶지가 않았다. 누군가의 발길이 닿는다면 내 공간이 아니게 되지 않을까, 이상한 경계를 했다. 내가 온전히 자유로운 나로 있기 위해서 타인은 불필요하다 생각했다.

 

이전의 기억을 돌이켜보면 엄마나 남동생, 친구들과 함께하던 방들은 조금 편한 공공장소에 지나지 않았다. 그곳에서 나는 어른스러운 맏딸, 엄마가 없을 때 밥을 챙겨주는 누나, 유쾌하고 부지런한 룸메이트의 역할을 충실해야만 했다.

 

스물다섯 살의 나는 스무 살의 첫 내 방보단 조금 넓은 ‘내 방’에서 산다. 이제는 종종 친구도 데려온다. 어렵게 사수해낸 혼자만의 ‘내 방’에서 수년간 성장한 자아가, 친한 친구의 출입을 허락할 만큼은 단단해졌나 보다.

 

@아레오

 

글. 인디피그(ghin2800@gmail.com), 아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