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강 전 첫 글이다. 거창하기만 한 흰소리 말고 쓸모 있는 글로 시작하고 싶은데 뭐가 좋을까. 화석이라는 별명을 달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나 자신을 포함한 전국 다양한 학과의 고학번들 이와 비슷하게 신입생보다 학번이 높은 분들이 명심할 것을 적어 보겠다. 경어체가 아님을 용서하시라.

 
 
자꾸 신입생을 술자리에 부르지 마라. 신입생들도 밥 먹고 술 먹을 동기들 있다. 당신보다 더 건강한 간도 있다. 없는 건 당신이 뺏는, 안 그래도 술 마시러 다니느라 부족한 시간뿐이다. 할 얘기 있으면 공강 시간에 해라. 술자리에서 괜히 술잔 주며 “같은 학과 선배잖아” 하지 마라. 선배가 뭐나 된다고 술잔을 강요하나. 고학번이랑 같은 자리에 앉아 있어주는 후배를 존중해라. 밥 먹으면서 소화 안 되게 ‘뭐 하고 싶은 말 있으면 자유롭게들 해 봐’하지 마라. 당신 학번을 말하는 순간 자유로운 관계도 아니고 신입생은 고학번에게 큰 관심 없어서 할 말도 없다.

 
 
필요하면 구체적으로 질문을 해라. 신입생들이랑 어울리고 싶다며 당신이 “얘들아 언제는 무슨 날이니까 무조건 필참해”라고 명령하는 애들이랑 친해지려고 하지 마라. 대부분의 학생들은 캠퍼스에서 당신의 과잠 옆에 적힌 숫자를 보고 흔한 화석으로 본다. 그게 당신의 현실이다. 후배들 모아놓고 뭘 자꾸 해보려고 하지 말고 고학번은 가만히 있는 게 학과에 도움 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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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학번의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MBC 무한도전
 
 
 
 
 
 
후배가 자꾸 수업을 빠지거나 과제를 안 해오면 알려주되 잔소리는 하지 마라. 불과 몇 년 전을 떠올려보면, 때로 그건 일부러 그런 것일 때도 많았다. 굳이 이야기할거면 “학고 맞고 나처럼 고학번 되어서 졸업도 못한다”고 이야기해야지, 애초에 1교시도 못들을 거면서 왜 1교시를 신청했냐고 하지 마라. 당신도 늘 1교시를 신청하는 실수를 반복해왔지 않나.
 
 
 

술자리에서 후배를 은근슬쩍 만지고는 술 핑계 대지 마라. 개강총회 때 취해서 교수 뺨 때린 적 있으면 술버릇이 안 좋다는 건 인정한다. 굳이 후배를 자취방에 데려다 준다고 나서지 마라. 어차피 동기들이나 학생회가 알아서 챙길 거다. 후배들의 의례적 미소와 웃음을 오해하지 마라. 고학번이라서 받아주는 거지 아무 뜻도 없다. 그래도 졸업 전에 신입생이랑 캠퍼스 벚꽃 좀 즐겨봐야 대학생인 거지 생각하지 마라. 제발, 제발 그러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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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학번의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MBC 무한도전
 
 
 
 
 
군기잡지 마라. 학번이 높다고 계급이 높은 건 아니다. 과 분위기를 위해서라느니 후배를 위해서라느니 핑계대지 마라. 당신이 분위기 망치고 있는 거 당신만 모른다. 후배라고 쓰윽 반말하지 말고 안 친하면 존대해라. 후배가 당신을 “야”라고 편하게 불러도 괜찮으면 인정한다.

 
 
 

과방에 앉아서 “내가 누군지 알아?” 하지 마라. 과방에 자신보다 높은 학번이 없으면 내가 고학번이라는 자아성찰은 스스로 해라. 어차피 교수님이 보기엔 ‘너 아직도 학교에 있냐’소리 듣는 존재일 뿐이다. 아직 개강도 안 했는데 가혹한 소리한다고 투덜대지 마라. 개강 뽕에 취하기 전에 말해주는 거다. 무엇보다 아직 F학점도 안 받아봤을 신입생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라. 하려면 당장 학점 하나하나가 소중한 고학번에게 해라.

 

꼰대질은, 꼰대들끼리.          

글. 감언이설(gchhg2005@naver.com)

*이 글은 중앙일보 1월 10일자 ‘[문유석 판사의 일상有感] 전국의 부장님들께 감히 드리는
글'(http://news.joins.com/article/21100197)을 패러디했습니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www.ohmynews.com)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