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은 여성혐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명품백 보다는 내 손을 잡아주는’이라며 전형적인 ‘김치녀’ 이미지를 노래하던  <Miss Right>의 가사, ‘여자는 최고의 선물이야’등 온갖 대상화를 일삼던 <호르몬 전쟁> 그리고 트위터 공식계정에서 한 말들까지.

 

스스로 곡을 창작하는 컨셉과 청소년들의 꿈을 지켜주겠다는 의미를 표방하는 방탄소년단에게 여성혐오는 치명적이다. 그래서일까? 방탄소년단과 빅히트는 자신들이 자초한 여성혐오 꼬리표를 떼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다. 소속사는 지난여름 여성혐오 가사에 대해 “사회에서의 여성의 역할이나 가치를 남성적인 관점에서 정의 내리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할 수 있음을 알게 됐다”라며 사과와 함께 피드백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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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 공식 트위터(좌)

방탄소년단 ‘호르몬 전쟁’가사(우)

 

13일 발매된 방탄소년단의 앨범 <You Never Walk Alone>도 그런 피드백에 대한 결과물이다. 자신들이 더는 여성혐오를 일삼는 그룹이 아니라는 점을 어필한 흔적이 여기저기 보인다. 수록곡 <Not Today>에 담긴 ‘유리천장’ 이야기는 여성혐오 아이돌 꼬리표를 떼기엔 어려워 보인다. 오히려 방탄소년단이 얼마나 부족한 인식으로 여성문제를 바라보고 있는지를 증명할 뿐이었다.

 

방탄소년단의 전략

 

<Not Today>는 흔한 응원 노래다. 절망할지라도 오늘은 아니라며 자신들의 실패담과 성공담을 늘어놓으며 ‘우리도 열심히 해서 성공했으니 너희도 할 수 있다’라는 논리로 절망을 이겨내라고 주문한다. 문제는 뜬금없이 등장하는 유리천장이다.

 

네 눈 속의 두려움 따위는 버려
Break it up! Break it up!
널 가두는 유리천장 따윈 부숴

 

방탄소년단은 유리천장을 없애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을 손쉽게 희석해버렸다. 가사를 통해 유리천장이 여전히 굳건한 이유를 단순히 용기와 두려움의 문제로 치부해 버린다. 여기서 여성혐오에 대한 피드백으로 주던 기대감은 배신당한다. 여전히 여성이 겪는 사회적 차별을 바라보는 인식의 게으름이 나타난다.

 

유리천장은 인종 혹은 특정 성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보이지 않는 벽에 의해 더는 위로 갈 수 없는 현상을 뜻한다.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서 나타나는 문제이며, 그에 따라 유리천장 문제를 해결한다는 말은 그 구조적 문제를 해결한다는 뜻이다. 억압받는 자의 출세를 유리천장이 깨진 사례라고 여기는 경우가 있다. 출세는 단순히 한 개인의 매우 특별한 사례일 뿐 그것이 구조적으로 해결됐다는 뜻이 아니다.

 

유리천장이 단순히 용기나 노력의 문제였다면 그 문제는 이미 해결됐어야 한다. 유리천장은 아래에 있는 사람이 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유리천장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이 자신이 유리천장 위에 서 있다는 인식과 변화 의지가 동반되어야 구조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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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오오오오력 ⓒ morikinoko8888

 

구조의 문제를 단순히 개인의 용기와 노력을 통해 해결하라는 말은 같은 맥락에서 그간의 ‘노력 신화’와 다를 것이 없다. 유리천장을 깨라며 용기와 노력을 노래하는 방탄소년단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따뜻한 위로의 말이 아니라 유리천장이 왜 비롯됐는지에 대한 인식의 부족일 뿐이다.

 

수많은 사람이 치열한 노력에도 깨지지 않는 유리천장 앞에서 좌절한다. 힐러리 클린턴의 낙선으로 유리천장의 굳건함을 확인한 사람들 앞에서 힐러리가 할 수 있는 말은 희망뿐이었다. 방탄소년단은 그런 굳건한 유리천장을 두고 ‘따위’라는 말을 사용했다. 적어도 방탄소년단에게 유리천장은 ‘따위’의 것일 수 있겠다. 시스젠더헤테로남성(생물학적 성별과 정신적 성별이 일치하는 이성애자 남성)으로서 가지는 젠더권력을 남용하며 여성혐오를 일삼고 유리천장 위에 서 있는 그들이다. 지위에 대한 성찰을 보여주지 못한 상태에서 ‘따위’라며 유리천장을 얘기한 방탄소년단은 무례하다. 

 

그들이 유리천장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기저에 무엇이 있든, 그것이 실제로 이뤄지는 페미니즘 논의들을 담지 못했다는 것이다. 가사에 페미니즘적 사고가 아닌, 이미지를 위한 전략적 선택만이 담겨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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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탄소년단 ‘Not Today’ 뮤직비디오 캡쳐

 

전략은 성공했다. 유리천장이라는 단어를 선택하며 방탄소년단은 많은 것을 얻었다. 소속사의 피드백과 랩몬스터의 방 사진에 있던 책 <맨박스>는 이미 방탄소년단에게 깊게 남아있는 여성혐오 이미지를 희석했다. 남자 아이돌 중 이례적으로 노래에 유리천장을 언급하며 부술 대상으로 지목한 것은 그들에게 완벽한 면죄부를 주기 충분해 보인다. 실제로 발매된 후 방탄소년단 팬덤에서는 자신이 응원하는 가수가 이만큼이나 페미니즘 인식이 늘어났다며 자화자찬했다. 방탄소년단은 순식간에 여혐아이돌에서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자신들의 노래에 적용한 착한 아이돌이 됐다.

 

자신들의 변화를 인정받기에 지금까지의 방탄의 행보는 질적으로 부족했다. 변한 척이거나, 변했거나, 사과 몇 번과 유리천장을 가사에서 ‘언급’하는 것은 단편적이다. 최소한 자신들의 성찰 과정을 나타 냈거나, 가사에서 극적인 변화를 보여 줬어야 했다.

 

방탄소년단이 경험한 유리천장?

 

방탄소년단이 자신들이 겪은 유리천장에 대하여 얘기하는 것이라고 옹호하는 목소리도 있다. 즉, 자기들이 겪었던 힘듦에 관해서 얘기하며 자신들도 해냈으니 대상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노래라는 것이다. 허나 노래 서사를 살펴봤을 때, 자신들의 고난과 역경을 얘기하기보다는 성공에 대해서 말한다.

 

Too hot, 성공을 doublin
Too hot 차트를 덤블링
Too high we on 트램펄린
Too high 누가 좀 멈추길
우린 할 수가 없었단다 실패
서로가 서롤 전부 믿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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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이…소수자? ⓒ 트위터 캡쳐

 

노래에서 자신들에 대한 얘기는 이 부분이 전부다. 자신들이 겪은 유리천장과 힘듦을 얘기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유리천장 논의의 핵심은 당사자성이다. 방탄소년단이 최소한 유리천장이라는 단어 속에 들어 있는 소수자는 아니다. 동시에 유리천장은 해결된 문제가 아니라 아직도 진행 중이다. 결국 유리천장이라는 단어를 당사자가 아닌 집단이 자신에게 쉽게 적용하는 것은 비난받기 쉽다. 

 

방탄소년단만의 문제는 아니다

 

방탄소년단은 정말로 노력했을 수도 있다. 여혐논란에서 깊은 성찰을 통해 새롭게 출발하는 좋은 의미로 이번 앨범을 준비했을 수도 있다. 진짜로 그랬다고 해도 부족한 면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Not today> 가사에서 남성으로서 자신들의 젠더권력에 대한 고민이 적었음이 여실히 존재하고 있다.

 

방탄소년단은 한국 음악계에서 유리천장으로 인한 차별이 심한 곳에 서 있다. 힙합 음악에서 수많은 여성 래퍼들은 여전히 남성권력 아래 놓인다.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에서조차 상위라운드로 진출하는 여성 래퍼는 볼 수 없으며, 그들이 소비되는 방식은 실력이 아니라 외모와 갈등에만 있다.

 

‘유리천장’ 단어의 문제는 그 지점에 있다. 유리천장 위에 서 있는 이들이 유리천장 아래의 이들을 호명하며 유리천장을 부수라고 주문한다. 성차별의 문제를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과 분리했을 때 발생하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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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n ‘SNL 코리아’ 캡쳐

 

비단 방탄소년단만의 문제는 아니다. 여전히 다양한 분야에서 성차별이 실재하며, 문제를 자신과 분리하려는 시도는 계속된다. ‘방탄소년단’이기에, 혹은 ‘그들만’이 부족해서 문제인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일들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방탄소년단이 ‘여성혐오 아이돌’에서 벗어나는 날은 언제인가? 최소한 인기 남자 아이돌이 가지는 권력과 지위에 대한 성찰과 인식, 페미니즘을 전략과 이미지로 소비하는 방식이 사라져야 한다. 이후에 문제에 대한 논의와 인식을 노래에 담아낸다면, 그때라면 기회가 생기겠다. 오늘은 아니다.

 

글. 통감자(200ys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