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끝났으니까 살 빼고 예뻐지면 되겠네.”

 

수능이 끝나고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여성들 중에서 나만 들었던 소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뻐져서 대학가자’라는 헬스클럽 전단지가 길거리 여기저기에 붙어있었고, 페이스북에서 한창 돌아다니던 ‘대학 입학 전 해야 할 일들’에는 다이어트 항목이 항상 있었다. 친척들과 주변 사람들의 살 빼라는 잔소리도 급격하게 늘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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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트짐

 

살을 빼는 게, 예뻐져서 대학교에 입학하는 게 당연한 건 줄 알았다. 단기간에 10kg이 빠졌고 적정체중에 약간 미달하는 체중으로 대학교에 입학했다. ‘다이어트 성공!’으로 이 얘길 끝낼 수 있었다면, ‘아, 진짜 힘들었지만 살 뺐으니까 됐어’라는 말로 모든 게 마무리될 수 있었을까.

 

이후에도 다이어트를 그만두지 않았다는 게 문제였다. 아니, 그만두지 ‘못’했다는 말이 정확한 것 같다. 주변에서, TV에서, 인터넷에서 스무 살은 가장 예쁠 때라고 했다. 쉽게 그것은 스무 살의 외모로까지 이어졌다. 여자는 꽃이어야 한다고, 스무 살은 가장 예쁠 때라고 했다. 외모는 가장 먼저 보이는 ‘예쁨’이었다. 예쁜 외모가 어떤 것인지 이미 규정지어져 있었다. 적정체중보다는 ‘미용 체중’이 정상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가장 예쁠 시기에 마른 몸으로 살지 않는 건 개인의 게으름으로 인한 죄였다. 나의 스무 살, 외모 코르셋이 조여져 왔다. 코르셋을 조인 건 나의 손이었지만, 내 손을 움켜쥐고 있던 건 사회의 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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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체중? ⓒ BD Lab

 

 

먹기를 거부하며 하루에 한 끼만 먹었고, 운동에 집착했고, 매일 체중계에 올라갔다. 살은 계속 빠졌지만 미용 체중에 가까워져 가는 거울 속 내 모습은 여전히 예뻐 보이지 않았다. 0.5kg만 쪄도 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끝내 나는 조금만 먹어도 토하기 시작했고, 아무 이유 없이 몇 개월 동안 월경을 하지 않았다. 그때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거식증 초기증상이었다. 거식증은 내 얘기가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스무 살 1년 만에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태였다. 단순히 몸이 안 좋아진 것뿐만 아니었다. 거식증은 자존감 하락, 정신 건강의 피폐함도 동반했다.

 

“네가 너무 예민한 거 아니냐?”고 했다. 거식증 증상을 보이는 사람에게 ‘네가 너무 예민해서’, ‘네가 너무 외모에 집착해서’ 병이 생겼다고 말했다. 페이스북에 종종 올라오는 ‘거식증 걸린 모델’ 사진이나, 한 걸그룹 멤버가 거식증으로 인해 활동을 중단한다는 기사의 댓글에서도 사람들의 반응은 똑같았다. “외모에 너무 집착하는 건 안 좋죠.” 대꾸할 힘도 없었지만, 그들에게 되묻고 싶었다. “날 이렇게 만든 게 누군데? 거식증 환자 탓하기 전에, 이렇게 될 수밖에 없게 만든 게 누구였는지 생각해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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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식증이었다 ⓒ 디스패치

 

 

많은 질문이 날 괴롭혔다. 날 이렇게 만든 건 나일까. 거식증이 나 개인만의 문제일까. 여성, 그중에서도 20대가 가장 거식증이라는 병에 많이 노출되어있다는 것이 단순한 우연일까. 내가 예민해서 일어난 일일까. 이 모든 질문에 아니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여전히 세상은 피해자의 아픔이 ‘너의 탓’이라고 말했다.

 

나는 죄가 없었다. 대학교 카톡방 성희롱 사건은 끊임없이 터졌고, TV에서는 개그우먼들의 얼굴과 체형이 개그 소재로 쓰였으며, 시위에 나온 여성의 사진과 여고생의 졸업사진 등 여성이 나온 사진에는 항상 댓글 창에서 외모 품평회가 열렸다. 외모에 대한 평가와 비하는 너무나 일상적이었다. 나는 비하와 혐오, 조롱거리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다.  ‘나도 평가당하면 어떡하지? 뚱뚱하다고, 못생겼다고 조롱당하면 어떡하지?’라고 두려워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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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SBS뉴스 캡쳐

 

혐오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서 외모 코르셋을 입은 스무 살의 어렸던 나를 기억한다. 대한민국 여성 중에서 나만 그랬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난, 코르셋을 입을 수밖에 없었던 과거의 나 자신과 대한민국의 여성들을 탓하고 싶지 않고 탓할 수 없다. 우리에게 코르셋을 들이민 건, 이 사회였기 때문이다.

 

다만 나 자신에게 때로 질문을 던진다. 비하와 혐오의 가해자가 누군지. 나에게 외모 코르셋을 억지로 입히려는 주체가 사회인 걸 알았다면 스무 살의 나는 좀 달랐을지.

 

새학기가 시작되고 스무 살이 입학한다.  그 나이를 다시 살 수 없는 지금의 난 그 질문에 ‘모르겠다’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새학기를 맞고, 스무살이 되는 이들에게 이 이야기가 해방의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아니 바람이다. 이 이야기가 대한민국의 수많은 여성 중에서 나에게만 있었던 일은 분명 아니므로.

 

글. 모킹버드(sinjenny9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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