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집은 즐거운 공간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즐겁지만은 않은 공간이었다. 가건물에서 기숙사로, 고시원에서 아파트로, 가족의 집에서 나의 방으로, 옮길 때마다 ‘집’과 ‘집 속의 나’에 대해 상상하곤 했다. 상상할 때면 자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집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 이것은 ‘잘 모르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1. 내 방이 낯설었다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 아침의 내 방은 항상 밝았다. 떠오르는 해 때문이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6시 반은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항상 나 아닌 누군가에 의해 내 방의 불은 켜졌다. 일어나서 공부하렴. 그 누군가는 집의 엄마이기도 했고, 기숙사의 사감 선생님이기도 했다. 분명 밝았지만, 갑자기 들어오는 빛 때문에 찡그린 눈 안에서 그 방은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어두웠다.

 

졸린 눈을 하고서 책상에 앉으면 방 안에는 책상과 책, 연필, 그리고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침대와 옷장보다 책상과 책장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던 방이었다. 책장과 책상만 까만색이었고, 나머지 모든 가구와 벽지는 흰색이었다. 까만 책상 의자에 앉으면 전면 창문이 내 앞에 보였고, 창문 밖은 항상 깜깜했다. 까만 새벽 속 흰색 내방은 튀었고, 그 속의 까만 책상과 책장은 더 튀었다.

 

이 까만 새벽에 공부를 하고 있구나. 넌 성공할 거야. 그 방에 앉아 혼자 끊임없이 되뇌었던 것 같다. 까만 책상 오른편에 놓인 흰색 침대에 눕고 싶은 내 마음을 모른 척하려고 그렇게도 자기암시에 집착했던 걸까. 때때로 그 방은 내 방이라기보다는 책들의 방처럼 느껴졌다. 책들에게 잡아먹힌 것 같다는 불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낯선 방이었다.

 

내 방이라기보다는 책들의 방이었다 ⓒ한국산업포털

 

수능이 끝나고 방에 있는 책들을 버리며 자신에게 물었다. 그렇게 되뇌었던 ‘성공’을 이루어냈니? 방 한쪽 벽면을 가득히 채우고 있던 책들을 괜히 짓밟고, 찢으면서 생각했다. 아니, 이게 성공이라고 믿고 싶지 않아. 길었던 학창시절 그 6시 반 아침, 밝았던 방들 속 나는 어두웠다. 공부 때문에 행복하지 않던 12년이 ‘대학교 합격’이라는 결론으로도 보상되지 않는다는 걸, 과정에서의 불행이 결과의 행복으로 치환될 수 없다는 걸, 까만 책장을 비우면서야 깨달았다. 책장을 비우는 것은 곧 내 방의 파괴와 같았다. 낯설었던 방이 더 낯설게 느껴졌다.

 

대학교 입학 후 자취를 시작했다. 아침의 내 방은 더 이상 밝지 않았다. 대신 불을 켜줄 사람도 없고, 까만 새벽에 혼자 불을 켜고 있으면 성공할 거라 믿던 어리고 순진했던 나도 없었다. 이제 작은 자취방의 어둠 속에서 침대 속에 아기처럼 웅크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단지, 밝은 해가 방을 밝게 만들 때까지 기다릴 뿐이다. 햇살 때문에 눈을 찡그릴 때쯤, 그때야 일어난다. 게으른 과정이 하나의 성스러운 의식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 반복되는 작은 의식은, 어릴 적 방의 불을 켰던 이에 대한 뒤늦은 반항일까. 노력만 하면 성공할 거라 믿었던 어리고 순수했던 시절에 대한 미안함의 표현일까. 수면권이 보장되지 않을 만큼의 입시 경쟁을 부추겼던 사회에 대한 울분 때문일까. 때때로, 이 반복적이며 저항적인 무언의 의식이 무엇 때문이든 상관없다는 생각을 한다. 본가의 방, 고등학교 기숙사의 방, 지금의 자취방까지, 그 모든 아침의 방들이 사실 단 한 순간도 밝았던 적 없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에.

 

글. 모킹버드(sinjenny97@naver.com)

 

 

2. 집 = 돌아가고 싶은 공간?

 

‘빨리 집 가고 싶다’.

 

밖에 나가면 하루에도 몇 번씩 듣는 일상적인 얘기다. 너무 많이 들어서, 누구에게나 ‘집’은 편안한 공간이라고 생각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 집은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공간이었다.

 

어릴 때는 반지하의 작은 집에서 살았다. ‘가난’이라는 사회적 인식을 대변하는 반지하의 집이란 항상 부끄러운 공간이었다. 친구들이 ‘너희 집 놀러 가도 돼?’라고 물을 때마다 두려웠고,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혹시라도 친구들이 나를 보고 있지는 않은지 살피며 반지하의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집을 무섭고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공간으로 만든 것은 사회적 시선보다는 아빠였다. 그는 집 안에서 항상 무기력하게 누워있거나 게임을 하거나 화만 냈다. 아빠는 엄마와 돈 문제를 포함한 여러 문제로 갈등이 있었고, 물건을 던지거나 소리를 질렀다. 동생들은 울었다. 나는 집안의 첫째로 부모님의 싸움을 말리고, 동생들을 달래는 역할을 맡았다. 아주 작았던 집안은 조용할 날이 없었고 내가 안락하게 쉴 수 있는 공간도 당연히 없었다.

 

고등학생이 된 후 반지하를 ‘탈출’ 해 5인 가족이 쓰기에 충분한 ‘지상’으로 이사를 하고 나서도, 성인이 된 후에도 집에 대한 이미지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나를 안락하게 만들어 줄, 나만의 온전한, 편안한 공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점차 커가면서 나도 아빠와 지속적으로 다투게 됐다. 아빠는 나의 옷, 머리, 음식 등 모든 것을 재단하고 관여했다. 성인이 된 후 몇 년간 길고 지루한 싸움이 지속됐다. 정신이 아픈 것 같았다. 혼자만의 시간이 절실히 필요했다.

 

나만의 온전한 공간이 필요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

 

많은 갈등과 고민 끝에 결심하고 친한 친구들에게 집을 나가야겠다고 알렸다. 친구들은 ‘집 나오면 고생’이라는 말과 함께 어떻게 부모님과 연을 끊을 생각마저 하냐며 ‘너무 매정하다’는 말만을 남겼다. 집을 나올 수 없는 상황에서 발버둥 치는 내게 ‘집 나오면 고생’이라는 말은 큰 상처로 돌아왔다. ‘집을 나오면 이것보다 행복하진 않을까?’하는 고민이 공허하게 울렸다.

 

집을 나오기로 했다. 나오는 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고 부모님과 여러 갈등이 있었다. 결국 서울에 본가가 있지만 서울에서 자취를 시작하게 됐다. 방세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알바를 여러 개 해야 했다. 돈을 부담하는 것 자체가 경제적으로, 심리적으로 큰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온전한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사실이, 아빠의 눈치를 더는 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던 삶 중에 나를 가장 편안한 상태로 만들었다. 책상 하나, 책장 하나, 침대 하나, 행거 하나, 작게 화장실이 딸린 약 사 평의 작은 방에서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집의 ‘편안함’을 느낀다.

 

아직 주거 불안정을 겪고 있고, 하우스 푸어다. 또, 때로는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져 우울해질 때도 있다. 그래도, 이런 게 집인가 보다. 사람들이 말하던 ‘돌아가고 싶은 공간’이 이건가 싶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무도 관여하지 않는 이 작은 공간에 평범한 누군가처럼 누워서 글을 쓰고, 웹툰을 읽고, 잠을 잔다. 온전한 나의 공간이다.

 

 

 

글. 엑스(kkingkkang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