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포기한 n포세대에게 보내는 편지?

 

나영석 피디의 신작 [신혼일기]가 화제다. 기성세대는 조금 색다르게 관계를 맺어가는 이 커플의 모습에 열광했고, 이들의 결혼 생활 비법을 소개하는 리뷰들이 쏟아져 나왔다. “여성들이여, 당신의 재능을 인정해줄 수 있는 안재현 같은 남자를 만나라”, “결혼을 앞두고 있거나 고민하는 남성에게 추천한다” 등 결혼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 모두에게 이 프로그램은 권장됐다. 막상 권장대상자에 속하는 20대 여성인 내게 이 리뷰들은 당혹스러웠다. 대단한 ‘사랑꾼’마저 이렇다면 대체 다른 결혼들은 어떤 모습이라는 건가? 안재현을 변화시켰을 구혜선의 ‘숨은’ 노동에 경의를 표하는 동시에 역시나 결혼은 안 하는 게 좋겠다고 결심했다.

 

 

문제는 가부장제다

 

 

기성세대가 왜 [신혼일기]에 열광하는지 이해는 한다. 안재현은 기존의 가부장적 남성들과 다르다. 그는 상대의 상태를 세심하게 살피며 상대를 아낀다. 눈을 뜨자마자 구혜선의 다친 발상태부터 묻고, 우울해 하는 구혜선의 마음을 신경 쓴다. 가사를 분담하려 노력하며 무엇보다 대화를 통해 상대의 요구에 귀 기울이려 한다. 결혼생활의 행복에 관해 이야기하고, 형님들과 어울리기 위해 이러한 과정을 비하하거나 농담거리로 삼지 않는다.  “놀랍게도” 그는 결혼한 이후에도 구혜선을 사랑한다.

 

 

자세히 살펴보면 이상한 지점이 있다. 구혜선도 비슷한 모습이지만 우린 구혜선에겐 열광하지 않는다. 반응의 차이는 가부장적 결혼제도의 성별분업에서 비롯된다. 일하느라 지친 남성의 기를 보듬어주는 감정노동과 그가 편히 쉴 집을 가꾸는 가사노동은 원래 여성의 몫이었다. 자기 몫도 아닌 걸 해내는 안재현이 대견할 수밖에.

 

 

우리 세대 여성들은 의아하다. 집 밖에선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는데, 왜 집안의 일은 내 몫이 되는가? 한 명의 임금으로 살아갈 수 없게 되면서 여성의 공적 영역 진출이 적극 권장됐다. 여성의 임금노동 없이 유지되는 집은 소수였다는 점에서 성별분업은 ‘신화’에 가까웠지만 그 신화마저 무너진 것이다. 남성들은 사적 영역으로 들어오지 않았고, 여성의 노동은 여전히 여성들의 몫이었다. 이전 세대는 딸들에게만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일을 모두 가르쳤다. 딸들은 그 부당함을 몸으로 체득했고, 이것이 지금의 ‘비혼과 저출생’ 경향의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이다.

 

 

2화에서 드러난 안재현-구혜선 커플의 갈등도 이러한 맥락 위에 놓여있다. 안재현이 괜히 집안일을 하면서 ‘도와줬다’고 생색낸 게 아니다. 신혼 초기엔 가사노동의 90%를 구혜선이 했고, 구혜선의 문제 제기 이후에 나눠 하기 시작했다. 구혜선이 ‘여전히 힘들다’며 ‘더 노력해줬으면 좋겠다’고 요구하자 안재현은 “집안일이 그 정도로 많진 않다, 우린 그렇게 힘들게 살지 않았다”라고 답하며 갈등이 심화된다. 제작진은 ‘부족함에 집중하며 더 많은 노력을 요구하는 아내’와 ‘행복에 집중하며 그동안의 노력을 몰라줘서 서운한 남편’의 입장 차이로 그려낸다. 제작진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각자의 입장이란 이렇게나 주관적일 수밖에 없으니까 서로 조금씩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듣기 좋은 말이지만, 이는 문제의 핵심을 지운다.

 

 

갈등은 분명히 존재하는 가사노동의 존재를 잘 알지 못하는 가부장적 남성 때문에 발생했다. ‘엄마’는 온종일 밥을 하고, 치우고, 쉼 없이 청소하지만 잘 티가 나지 않는다. 가사노동은 ‘현상 유지’가 목표고 무급노동이다. 보이지 않는다. ‘화장실은 늘 깨끗한 거 아니야?’, ‘집에 있으면서 네가 한 게 뭐가 있어?’ 등의 속 터지는 발언이 대부분 ‘아들’과 ‘아빠’에게 나오는 이유는 이들이 가사노동을 제대로 해본 적 없기 때문이다. 논쟁 중에 언급되듯이 본가에서 미팅할 때도 가사노동을 전담한 건 구혜선이었다. 이 모습까지 본 제작진이 정답을 몰랐을 리가 없다. 그러나 제작진은 갈등 장면 직후와 프로그램 내내 안재현의 가사노동을 집중적으로 비추며 그의 입장에 힘을 싣는다.

 

 

제작진의 편집방향뿐만 아니라 ‘안재현’을 권하는 리뷰들도 불편하다. 물론 안재현은 나아졌고,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다. 그는 대화를 통해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그런데도 그에게 남아있는 가부장적 흔적을 들추고 지워내고, 새로운 습관이 자리 잡을 때까지 그를 설득하고 지지하는 ‘감정노동’은 누구의 몫인가? 구혜선의 문제 제기에 안재현은 “왜 날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이야? 우리 결혼생활이 최악이었어?”라며 동문서답한다. 구혜선은 “왜 갑자기 기분이 안 좋아졌”냐고 어르고 달래며 “지금까지 노력해줘서 너무 고맙고, 계속 노력해줘”라며 입장을 선회한다. 지금까지 네가 먹고 싼 것들을 치운 것도 나, 이런 너의 미숙함을 지적해주는 것도 나, 자신의 가해자성을 마주하고 발끈하는 너를 달래는 것도 나, 분을 삭이며 고맙다고 애교스럽게 응원해야 하는 것도 ‘나’인 여성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결혼이 행복한 일이야?”, “자기는 이 난로 같아. 나를 열 받게 해.”

 

 

기성세대와 나영석에게 보내는 편지

 

 

자신이 먹고살 건 스스로 준비하고 치우는 게 인간의 도리일 텐데, 한 성별은 조금만 노력해도 ‘괜찮은’ 사람이 된다. 안재현이 대단한 남편으로 칭송받는 동안 구혜선의 감정노동과 가사노동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자기 몫은 물론이고 남이 자기 몫을 할 수 있도록 설득까지 해내는 구혜선이 대단한 것 아닌가? 

 

 

 

성숙한 관계란 상호 성장이 보장되는 관계다. 우리가 21세기에 욕망하는 ‘성장’이 집안일을 좀 더 하라고 상대를 설득하고 그의 성찰을 일방적으로 응원하는 데에 머물러야겠는가. 가부장적 성 역할에서 벗어나려는 노력 없이는 성장과 사랑을 논하기 힘들다. 성찰은 어느 정도 각자의 몫이어야 한다. 결혼을 앞둔 남성들에겐 [신혼일기]가 아니라 페미니즘 도서를 추천해야 한다. 페미니즘을 통해 ‘보이지 않는 노동’의 존재를 인식하고 이를 체화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갈등은 자연스레 줄어들 것이다. 자신의 가해자성을 인식할 때 따라오는 부끄러움과 화끈거림을 피해자에게 푸는 실수도 면할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다.

 

 

 

예능은 예능일 뿐이라고?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나영석 피디의 성공비결은 기존의 제도에 균열이 가는 지점을 잡아내는 데에 있다. 그는 편견을 뒤집고 대안적 판타지를 제시하며 재미를 만들어 낸다. 노년의 삶은 지루할 거란 편견에 도전한 [꽃보다 할배], 대중의 시선에 갇힌 여배우들의 이야기는 재미없을 거란 편견을 깬 [꽃보다 누나], 피폐한 일상에 치여 귀찮은 고민거리로 전락한 밥의 소중함을 재조명한 [삼시세끼]가 대표적인 예이다. 그는 출연자들이 ‘오래된 친구’, ‘여배우’, ‘중년 남성’의 역할 기대를 벗어던지는 순간을 세심하게 포착한다. 익숙한 관계 지도를 벗어난 인물들은 갈등을 겪기도 하지만, 결국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된다. 

 

 

 

나영석이 ‘니 연애 니나 재밌지’의 법칙을 몰랐을 리 없다. 먹고사니즘에서 자유로운 스타커플이 가부장적 성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로맨스를 전시했다면 [신혼일기]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가부장적 결혼의 균열을 포착했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안재현-구혜선 커플을 제시했다. 이 텍스트가 기성세대에겐 어느 정도의 해방감을 안겨줬을지 몰라도 우리 세대에겐 충분하지 않다. 나영석이 현실과 판타지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중이라면 좀 더 과감해지길 권하고 싶다. 대통령 후보들이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는 2017년이니까. ‘아재 유우머’가 가득한 예능판에서 나영석 피디의 존재는 분명 희망적이다. TV에서 여성연대를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그 날까지 나영석과, 함께하는 수많은 여성 스텝들을 응원한다.

 

 

 

글. 도이니 (soein1221@naver.com)

사진. 도이니 (soein122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