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무표정이면 화난 것처럼 보이니까 항상 웃어야 해.”

 

어렸을 때부터 친척 어른들과 학교 선생님에게 수없이 들었던 말이었다. 날카로운 눈매와 뾰로통해 보이는 입매는 많은 오해를 불렀다. 한 번은 이런 타박을 듣고 거울 앞에 서서 눈을 접고 입꼬리를 손으로 올려보기도 했다.

 

사근사근하게 웃고 있는 여성이라는 이미지는 일종의 강요이고 굴레다. 이를 반영하듯, 가만히 있어도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입꼬리를 올리는 성형 수술까지 등장했다. 여성들은 이력서 사진을 찍을 때 모두 똑같이 턱을 당기고, 눈을 크게 뜨고, 이가 보일 정도로 활짝 웃어야 한다. 여자 아이돌은 방송에서 조금이라도 웃지 않고 있으면 태도가 나쁘다고 비난받는다.

 

 

웃지 않는 것이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건 한참 뒤의 일이다. 비슷한 문제의식을 느낀 어떤 이는 소셜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텀블벅’에 <웃지 않는 여자를 응원한다>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정색’한 여성의 그림이 들어간 엽서와 에코백, 배지를 만들고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지난 2월부터 펀딩을 시작했는데, 3월 10일 기준 목표 금액(200만 원)의 156%에 이르는 돈이 모였다. 후원자는 150명. 얼마나 많은 여성이 웃음을 강요받아왔는지 보여주는 지표다. 지난 1일, 이 프로젝트를 만든 ‘ImPeach'(닉네임)씨와 서면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아래는 그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

 

 

 

ⓒ Impeach

 

 

 

– 프로젝트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먼저 제 소개를 하겠습니다. 텀블벅에서 <웃지 않는 여자를 응원한다>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ImPeach’입니다. 닉네임은 여성을 규제하고 재단하는 모든 문제에 대해 의문을 제기(Impeach)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웃지 않는 여자를 응원한다>는 여성에게 유달리 웃음을 강요하고, 웃지 않으면 비난까지 하는 한국사회의 풍조에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시작된 프로젝트입니다. 왜 남자와 달리 여자는 ‘웃는 표정’이 기본값으로 인식되는지, 왜 여자의 무표정은 공격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지, 왜 여자는 싹싹하고, 살갑고, 잘 웃어야 하는지, 조금이라도 의문이 생기신다면 제 프로젝트를 한번 봐주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으셨나요?

 

간호사 친구 덕분에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어느 날 친구에게 중년의 남자 환자로부터 클레임이 들어왔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이유가 본인을 치료할 때 활짝 웃지 않아 깊은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치료에 실수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저 웃지 않아 클레임을 걸었다니. 믿을 수 없어 재차 물어봤더니 친구는 아주 평온한 표정으로 여자 간호사들에게는 꽤나 자주 들어오는 클레임이라고 대답할 뿐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여성노동자는 암묵적으로 ‘웃음’에 대한 강요를 받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로 여자 연예인들은 예능에서 불쾌한 농담을 들어도, 애교를 강요받아도 웃어야 하며 조금이라도 무표정의 순간이 있으면 방송 태도 논란이 일어나곤 하죠. 남자 연예인들은 무표정은 물론이며 욕을 해도, 무례하게 굴어도 재미있는 해프닝 혹은 그저 고유의 캐릭터라며 넘어가는데 말이죠. 여성에겐 너무나 익숙한 ‘웃음’에 대한 강요라 저조차도 인지하지 못했던 부분이었어요.

 

그래서 ‘웃지 않는 여자’ 프로젝트를 시작하리라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제 친구와 같은 일을 겪은 여성들이 분명 많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들에게 ‘웃어야 한다’는 역할을 덜어주고 싶었어요. 애초에 그 역할은 우리의 것이 아니었으니까요.

 

 

레드벨벳 아이린은 라디오스타에 출연했다가 잘 웃지 않고 말수가 적다는 이유로 태도 논란이 일기도 했다.

ⓒ MBC 방송화면 캡쳐

 

 

 

– 그런데 ‘웃지 않는 여자’라는 아이디어를 실제로 프로젝트를 탄생시키는 것 사이에는 실천의 간극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에코백, 배지 등의 구체적인 물품을 정하고, 또 텀블벅이라는 펀딩 시스템을 통해 프로젝트를 진행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원래 직업이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제품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자연스럽게 하게 된 것 같아요. 그저 문제제기를 하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많은 사람의 공감을 끌어내고 참여시키고 싶었어요. 뭐든지 사람이 모여야 힘이 생기니까요. 사람들의 참여를 얻을 수 있는 공간이 텀블벅과 같은 크라우드 펀딩이라고 생각해서 이렇게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 그런 장점들 때문에 최근 크라우드 펀딩을 통한 재미있는 프로젝트들이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특히 텀블벅에서는 페미니즘 굿즈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는 것 같아요.

 

텀블벅에서 ‘페미니즘’이라는 카테고리를 추가해야 하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정말 추가해달라는 말은 아니랍니다!).아주 반가운 현상이라 생각하고, 더 많은 페미니즘 굿즈들이 텀블벅에 올라왔으면 좋겠습니다. 어쩜 다들 하나같이 너무 멋있고 예쁜지 모르겠어요.

 

 

텀블벅 <웃지 않는> 프로젝트에서는 에코백, 엽서 등의 리워드를 제공한다.

ⓒ Impeach

 

– 좀 더 근본적인 이야기로 들어와 보자면, 페미니즘이라는 것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모르던 아주 어린 시절부터 관심을 가져왔던 것 같아요. 그때는 페미니즘이라는 개념이 알려지기 전이라 제가 무언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 학교에서든, 집에서든 ‘예민한 애’ 취급을 받기에 십상이었어요. 왜 나는 반장선거에서 표를 제일 많이 받고도 반장이 아닌 부반장이 되어야만 하는지, 엄마는 왜 자꾸 내가 좋아하는 장난감 칼이 아닌 인형을 사주는지, 궁금한 게 많았거든요.

 

특히 명절 때 친척들이 모이면 남자들은 하나같이 거실에서 무료한 표정으로 소파에 늘어져 티비를 보고, 여자들은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하는 등 끊임없이 일하는 게 이상했어요. 사실 화가 났어요. 왜 성별로 일하고 안하고가 나눠지죠? 사실 따져보면 제사는 아빠의 조상이지 엄마 조상은 아니잖아요. 남자 친척들에게 가 왜 남자들은 일 안 하냐고 따졌더니 ‘애가 벌써 이기적이다’, ‘쟤는 커서 뭐가 되려고 저러냐’라는 말들을 들었죠.

 

저는 커서 아주 잘살고 있고요!

 

– 그렇죠. 확실히 그때는 페미니즘이라는 언어조차 대중화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최근에는 대선 후보들도 앞다투어 페미니스트 선언을 하는 진풍경도 있었죠. 이제는 페미니즘이 일종의 트렌드처럼 여겨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말이 나온 김에 대선 후보분들에 대해 잠시 얘기하자면, 이제라도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진다니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페미니즘을 위한다는 공약이 대부분 출산과 육아에 치중된 건 굉장히 유감입니다. 여성의 인권이라는 것이 ‘엄마’로 존재할 때만 보장받을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후보자분들이 좀 더 ‘엄마의 편리’가 아닌 ‘여성의 인권’에 대한 공약을 펼쳐주셨으면 해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질문에 답하자면, 페미니즘이 이렇게 트렌드가 된 건 여성들이 ‘페미니즘’에 대해 깨닫고 나서 생긴 ‘분노 ‘때문이라 생각해요. 그동안 남성 중심적 사회가 마음대로 여성들을 억압하는 룰을 정한 것에 대한 분노, 그 보이지 않는 룰을 우리가 모른 채 따르고 있었다는 분노. 한편으로는 우리가 공부하고 문제를 제기한다면 충분히 이 룰을 바꿀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는 게 아닐까요. 저 또한 그렇습니다.

 

– 이런 현상들에 <웃지 않는 여자들>과 같은 프로젝트들이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요?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사회가 바뀌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웃지않는 여자> 프로젝트처럼, 여성의 웃음과 같이 아주 사소하고 개인적인 것으로 보이는 것 까지도 페미니즘과 관련이 있으니까요. 변화 할 힘을 만들려면, 사람이 모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앞으로도 열심히 아주 작은 것까지 문제제기를 할 예정이니 그 문제에 대해 함께 떠들어주시고, 공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학교에서, 직장에서 많은 여성들이 ‘여자’답게 웃을 것을 강요받습니다.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가 고생이 많습니다. 많이들 힘드시리라 생각합니다. 특히 직장인들은 생업인 경우가 많기에 여성이라 강요받는 것들에 대해 저항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한에서 주위 분들에게 많이 이야기하고, 불합리한 상황에서는 저항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웃지 않는 여자들’을 응원합니다.

 

글. 유디트 (ekitales@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