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시간 30분마다 한 명의 여성이 살해당하거나 살해 위협을 받고 있다. 1.9일에 한 명꼴로 여성이 애인 혹은 남편에 의해 살해당하거나 살해 위협을 받고 있다. 이것이 단지 ‘한 여성’의 문제인가.

 

한국여성의전화가 2016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언론에 보도된 살인사건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16년 한 해 동안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에 있는 남성에 의해 살해당한 여성은 최소 82명, 살인미수로 살아남은 여성은 최소 105명으로 나타났다. 또한 피해여성의 자녀나 부모, 친구 등 주변인이 중상을 입거나 생명을 잃은 경우도 최소 51명에 달했다.”

 

남성에 의한 여성 살해는 어떤 극악무도한 살인범이 갑자기 여성의 삶에 불쑥 나타나 죽이는 사례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함께 밥 먹고, 이야기 나누고, 시간을 보내고, 심지어는 사랑을 속삭이던 남성들이 어느 순간 살인범이 되어버린다. 지난해 언론에 보도된 사건에서 82명의 여성이 그렇게 살해사건의 피해자가 됐다. 당신이 평소와 다름없이 보낸 지난 일주일 동안, 어떤 여성들은 사랑한다고 믿었던 남성의 손에 죽어갔을지 모른다. 누구도 이 죽음을 가벼이 여길 수 없다. 82개의 삶 하나하나가 송두리째 사라진 것이다.

 

ⓒWomen’s Aid 

 

애인이나 배우자에 의해 살해(위협)당한 여성이 남성보다 비정상적으로 많다면, 우리는 그것을 젠더 문제로 보아야 한다. 왜 여성은 일상적으로 폭력의 대상이 되는가? 왜 그들은 친밀한 관계에 있던 남성들에 의해 죽는가? 이것은 가부장제에서 기인한 폭력이다. 가부장제는 남성은 강자, 여성은 약자가 되는 젠더권력에 따른 성의 지배구조다. 케이트 밀렛은 성 정치학 이론에서 “가부장적 사회의 지배는 폭력이라는 규칙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여성살해는 ‘일반적’인 문제다

 

여성들이 폭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 문제를 고민하는 데, 여성폭력의 현황 통계보다 절망스러운 것이 있다. 지극히 일반적인 문제를 두고, ‘일반화’를 거부하는 남성들의 반응이다. 그들은 “모든 남성이 그런 건 아니”라며 재빨리 폭력 가해자와 자신을 분리한다. 데이트/가정 폭력 사건이 젠더 문제로 환원되는 것을 몹시 억울해하며 “일반화하지 말라”고 말한다.

 

가부장제의 폭력성은 쉽게 개인의 병리적 일탈로 치부된다. 그것의 ‘일반성’을 지우기 위함이다. 남성에게만 폭력 행사가 한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미 기울어진 젠더권력의 일반성을 가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국여성의전화>의 ‘2016 데이트폭력 실태조사’에서 성인 여성의 61.2%가 데이트 관계에서 폭력 피해를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수많은 통계와 경험들이 여성이 겪는 폭력의 일반성을 입증한다.

 

ⓒ조선일보

 

‘남성’ 가해자에 의한 ‘여성’ 피해자 구도의 일반화를 경계하는 것은, 잠재적 가해자로 비치는 것을 꺼리는 남성들의 심리를 반영한다. 잠재적 피해자로 살게 된 삶들이 있으므로, 잠재적 가해자의 존재는 필연적이다. 실제적인 위협자일 수도 있고, 불특정한 남성 집단 전체에 대한 두려움일 수도 있다. 이별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성관계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남편보다 늦게 귀가했다는 이유로, 전화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상추를 봉지째로 상에 놓았다는 이유로 어떤 여성들이 죽거나 죽을 위협을 당했다.

 

그들과 같은 세상에 사는 여성들은 사랑을 할 때조차 폭력성을 경계할 수밖에 없다. 애인이 나를 때리거나 죽일까 봐 의심하고 불안해하고 한편으로는 죄책감을 느끼는 모순은, 잠재적 피해자로서 여성이 견뎌내는 몫이다. 그들의 일부는 진짜 피해자가 된다. 잠재적 가해자 취급에 분노한다는 남성들은 무엇을 견뎌내는가?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 당시, 고용주의 ‘갑질’ 문제가 사회의 화두로 떠올랐다. 모든 계약상의 갑이 ‘갑질’을 하는 것은 아님에도 ‘갑질’이란 용어가 자리 잡은 것은, 빈번하게 발생하는 부당 대우 문제에 ‘갑’과 ‘을’이라는 권력관계가 개입되어 있음을 지적하기 위함이다. 젠더폭력 문제도 마찬가지다. 여성이 압도적으로 피해자가 되는 성별화된 폭력 문제 이면의 젠더 권력을 지적하고, 그것을 사회문제화하여 해결되도록 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현상에 대한 분석을 두고 일반화의 오류를 말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흐린다.

 

ⓒ나우미

 

폭력문화에서 자유로운 남성이 있는가

 

가부장제의 폭력 문화에서 자유로운 남성은, 물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여성폭력 사건을 두고 일반화를 운운하는 남성은 해당하지 않는다. 직접적인 폭력의 가해자가 되지 않더라도 폭력문화에 가담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여성을 향한 폭력의 심각성을 무시하거나 피해자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다.

 

최근 래퍼 아이언의 여자친구 폭행 논란을 두고 아이언을 “상남자”로 칭하거나, 피해자의 성적 취향을 조롱하는 반응들이 있다. 이들은 데이트 폭력의 정당화에 적극적으로 가담한다. 데이트 폭력이나 가정 폭력 사건에서 여성이 ‘왜’ 남성에게 맞았는지에 집착하는 것은 가해자의 관점이다. 조금이라도 피해자에게서 흠결을 찾아내 그들이 피해자가 된 이유를 규정함으로써, 해당 범죄를 특수한 일로 치부하는 것이다. 형량을 줄이기 위해 가해자의 정신이상을 주장하는 것 역시, 젠더권력을 지우고 개인들의 병리적 현상을 부각하기 위한 전략이다.

 

ⓒ레바툰

 

가부장제에서 여성은 일상적으로 폭력의 대상이 된다. 실제적 폭력과 더불어 뿌리 깊은 폭력 문화가 그것을 지탱한다. 여자친구와 다투던 중에 머리채를 잡고 끌고 가는 만화가 유머 코드가 되고, ‘삼일한(여자는 삼일에 한 번 패야 한다)’이라는 말로 폭력을 정당화하고, 여성 집단을 향한 비정상적 분노가 공유되는 것은 폭력 문화의 단면이다. 가부장제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 폭력 문화에서 자유롭기란 힘들다.

 

피해자는 조심할 수 없다. 여성폭력의 근절은, 폭력 문화를 향유하는 이들로부터 이뤄진다. 강력한 처벌로 그들의 폭력 의지를 단념시키고, 비판적 성찰을 통한 자정 작용을 해나가야 한다. 젠더폭력에 대해 방어적 태도를 넘어 선 남성들의 연대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 혹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모든 남성에게 같은 말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여자를 때리지 말라. 죽이지 말라. 죽이려 하지 말라.” 젠더폭력은 모든 여성이 맞닥뜨린, 너무나 일반적인 문제기 때문이다.

 

 

글. 달래.(sunmin5320@naver.com)

특성이미지 ⓒ나우미 가정폭력상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