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공주>, <신데렐라> 등 과거 디즈니의 대표적인 작품들은 몇 가지 특징들을 드러냈다. 순종적이고 왕자를 바라는 여성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 비장애인 백인 중심의 서사, 절대 선과 절대 악의 명확한 대결 구도. 현재의 디즈니는 이런 오래된 특징을 벗겨내는 중이다. <겨울왕국>을 기점으로 여주인공 캐릭터는 더 이상의 왕자가 필요하지 않은 주체적인 여성이 되었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이들은 더 이상 백인만으로 이루어지지 않게 되었다. 디즈니가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는 가운데 25년 만에 리메이크 개봉된 <미녀와 야수>는, 이전의 디즈니가 보여주지 못한 새로운 변화를 드러낸 동시에 여전히 풀지 못한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 Disney Studio 홈페이지

 

다양한 소수자들의 등장

 

 

91년도 원작의 배경은 특정하지는 않지만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근거로 프랑스로 추측된다. 동시에 모든 인물이 ‘백인’으로 등장한다. 2017년 리메이크 버전에는 벨이 사는 마을의 책 가게 주인, 야수의 성에서 일하는 오페라 가수와 여종 등 원작에 등장한 상당수의 캐릭터를 흑인들이 연기한다. 기존 원작의 리메이크버전으로는 최초이다.

 

 

흑인 이외의 또 다른 소수자들도 등장한다. 영화 후반부 전투에서 한 남성이 옷장 부인(야수의 성 소속 오페라 가수)에게 여장을 당해 수치스러움을 표현하며 도망치는 장면이 원작에 나온다. 리메이크 버전에서는 이 장면을 묘하게 비틀었다. 3명이 여장 당하는 설정으로 나오는데, 그중 1명이 자신의 여장에 매우 흡족해하며 가는 장면이 짧게 나온다. MTF 트랜스젠더 혹은 크로스드레서로 추정할 수 있는 인물이 등장한 것이다.

 

 

원작에서 게스톤에게 구박받는 멍청한 하인 르 푸를 리메이크 버전에서는 마치 게스톤을 게스톤을 흠모하는 게이로 생각하게끔 묘사한다. 게스톤에게 끊임없이 용기를 주는 말을 하고, 게스톤이 주체하지 못하는 분노로 이성을 잃을 때 이성을 되찾을 수 있게 가벼운 입맞춤과 함께 구슬리기도 한다. 피날레인 무도회 장면에서 남성 파트너와 춤을 추는 장면 역시 그가 게이임을 추측할 수 있는 근거다.

 

 

<주토피아>부터 디즈니는 그들의 작품에 성 소수자(혹은 그로 추측되는) 캐릭터를 등장시킨 바 있다. 수컷의 뿔을 가진 여성 캐릭터 가젤이나 주인공 옆집에서 항상 싸우는 게이 영양 커플 버키와 프롱스가 그들이었다. 명확하게 성 소수자임을 밝힌 캐릭터는 이번이 처음이다.

 

 

사랑에 대한 재정의

 

 

원작에서는 벨과 야수의 에로스적인 러브스토리에 집중하고 있다. 다른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그려내고 있지 않다. 이번 리메이크 버전은 인물들, 그리고 인물 간의 관계를 통해 사랑에 대한 정의를 더 확장한다.

 

 

원작에서도 어렴풋하게 그려내지만, 리메이크 버전을 이루는 큰 주제는 ‘포용’이다. 새로운 것을 발명하고 여자아이들을 교육한다는 이유로 마을 사람들로부터 배제를 당하는 벨, 마법에 걸린 이후 자기혐오가 심해진 야수는 배제에서 비롯된 상처 때문에 서로를 경계한다. 원작을 차용한 이야기 흐름과 새로 각색한 벨의 과거 장면을 통해 영화는 서로 아픔을 공감하고 포용하는 모습을 그린다. 벨은 자신을 위해 희생했던 자신의 아버지 모리스와 야수를 온전히 받아들이게 되고, 야수 역시 자기혐오를 벗어던지게 된다.

 

 

리메이크에서는 원작에 없는 ‘아가타’ 라는 인물을 통해 ‘포용’으로 대표되는 사랑을 이야기한다. 아가타는 마을 공동체가 받아들이지 않는 걸인이다. 그는 모리스가 야수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 때문에 마을 공동체로부터 배제를 당하고 게스톤으로 인해 숲속에 버려지게 될 때, 그를 보살피는 인물로 등장한다. 무엇보다 그를 야수의 마법을 푸는 요정임을 보여주면서, 아가타를 ‘배제당하는 인물’ 인 동시에 ‘포용이 사랑의 완성’임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으로 그려낸다.

 

 

디즈니의 숙제, 그리고 가능성

 

 

아쉬운 지점은 있다. 우선 벨이라는 캐릭터가 가지는 한계를 리메이크 버전은 깨지 못했다. 원작의 벨은 기존의 공주들보다는 의존성을 많이 제거되었지만, 아버지나 야수에게 보이는 태도로 미루어 짐작해볼 때, 주체성이 2% 부족한 캐릭터였다. 이를 극복하려는 시도로 리메이크 버전에서는 원작의 벨이 가지지 않은 ‘신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추가하였다. 교육을 못 받는 여성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발명가, 남성들과의 대화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은 분명 페미니즘 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본다. 이런 컨셉들은 <겨울왕국>의 엘사나 <주토피아>의 주디, <모아나>의 모아나처럼 벨이 ‘주체적인 여성’ 으로 그려질 것을 기대하게 하지만, 리메이크 버전은 이 이상의 무언가를 내놓지는 못하였다.

 

 

ⓒ Disney Studio

 

 

원작에 제기된 ‘스톡홀름 증후군’에 관한 비판을 크게 바꿔내지 못했다. 원작에서 이기적인 왕자는 걸인(으로 위장한 요정)을 내쫓은 것 때문에 야수가 되는 마법에 걸리는데, 마법을 푸는 방법은 장미잎이 다 떨어지기 전까지 ‘진정한 사랑’이라는 이름의 구원을 얻어야 하는 것이었다. 야수는 자신의 구원을 위해 벨을 ‘감금’하는 비윤리적 행위를 자행한다. 이야기의 결말이 헤피 엔딩이기는 하지만, 이 결말에 대해 벨이 사랑을 표현한 것은 결국 벨에게 나타난 스톡홀름 증후군의 증상 중 하나’라는 비판도 있었다. 

 

리메이크 버전은 이 플롯을 거의 그대로 따른다. 원작에 대한 비판 때문인지, 영화는 리메이크 버전의 벨이 감금된 이후 야수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탈출을 시도하고, 자신을 납치한 야수와의 기 싸움에서도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원작의 스톡홀름 증후군에 관한 지적에 대해 엠마 왓슨은 “원작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그려냈다” 고 이야기했지만, 리메이크 버전이 완벽하게 스톡홀름 증후군을 벗겨냈다고 하기에는 석연치 않다. 야수가 늑대무리로부터 벨을 구한 이후 벨이 계속 성에 남는다는 설정은 원작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이 선택 또한 스톡홀름 증후군으로 의심된다는 비판을 피할 수는 없어 보인다.

 

 

아쉬운 지점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소수자들의 등장, 페미니즘적인 구성 첨가, 에로스적인 사랑을 넘어선 사랑의 재정의는 확실히 원작을 넘어보려는 새로운 시도였다. 이러한 시도들과 한계는 2017년의 <미녀와 야수>가 보여준 디즈니의 미래상이자, 풀어야 할 과제일 것이다.

 

 

글. 쌔미(sam8662i@gmail.com)

대표이미지 출처. 영화 공식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