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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편식쟁이의 항변

“너는 왜 이것도 못 먹니? 까다로워서 정말.” 어린 시절부터 주변인들에게 줄기차게 들어온 말이다. 싫어하는 음식이 많았다. 가지의 물컹물컹함, 미역의 미끈미끈함은 입 안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거북했고, 곱창이나 선지는 그것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듣는 순간 음식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다. 특정 음식에 대한 거부감을 표현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 음식들을 먹는 자리가 생기면 애초에 자리에 가지 않았다. 식단에 포함된 날에는 급식실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음식’ 꼰대들

 

 

“에헤이… 그런 것도 못 먹고 말이야. 응?” ⓒ pixabay

 

 

무엇을 ‘먹지 못한다’ 혹은 ‘싫어한다’는 이야기만 꺼내면 주변인들은 자신의 ‘부들부들’함을 숨기지 않았다. “아니 어떻게 그걸 싫어할 수가 있니?” 같은 말은 양반이었다. “야, 네가 맛을 몰라서 그래.”라며 천연덕스럽게 내 앞접시에 그 음식을 덜어주던 사람부터 “네가 그렇게 편식을 해대니깐 몸이 비쩍 마르지!”라고 외모에 대한 지적과 함께 호통치던 사람까지.

 

 

못 먹는, 싫어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세상의 디폴트 값이었고, 나는 변칙 사례였다. 그들은 변칙 사례를 지우고 싶어 했다. 굳이 싫다는 음식을 먹이며, 나의 감정은 생각지도 않은 채 ‘누군가에게 어떤 음식의 맛을 알게 했다’는 뿌듯함의 미소를 지었고, 많은 사람 앞에서 ‘음식 맛도 모르는 사람’이라며 조롱했다.

 

 

그들의 ‘권유’를 거부하면 되지 않느냐고? 싫어함을 강하게 표현하면 되지 않느냐고? 그렇게 쉬운 일이었다면 문제는 애초에 해결되었을 것이다. 그런 음식을 억지로라도 먹을 것을 권하던 사람은 어른들, 혹은 어떤 자리에서의 분위기였다. 현격한 권력 차이 속에서 할 수 있던 것은 애써 웃으며 음식을 씹어 삼키고, “참 맛있네요”라고 이야기하며 그들이 음식을 더는 권하지 않길 바라는 것뿐이었다.

 

 

오잉?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임?

 

 

ⓒ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임’ 페이스북 페이지 캡처

 

 

지난 3월 27일, 페이스북에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임(이하 오싫모)’이 생겼다. 페이지 개설 하루 만에 수많은 사람이 ‘좋아요’ 버튼을 눌렀고, 4월 2일 현재 팔로워 수는 9만여 명에 달한다. 수많은 사람이 오이에 얽힌 자신의 경험담을 쏟아놓았다. 소소하게는 자신이 오이를 싫어하는 이유부터, 누군가 자신에게 오이를 강요한 경험까지 개인들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페이지가 개설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그들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그들 또한 삶 속에서 어떤 음식을 ‘싫어한다’는 말을 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자신의 취향을 드러냈을 때 가해지던 다른 사람들의 조롱, 폭력, 그리고 일일이 ‘오이를 먹지 않으니 오이를 빼달라’고 말해야 하는 수고로움까지. 그들 또한 폭력적인 식문화의 피해자였다. 매 순간 마주치는 현실의 상황에서 자신이 싫어하는 음식을 말하고 조롱당하는 방식이 아닌, 인터넷에서 그들의 존재를 드러낸 것이다.

 

 

‘싫다’고 당당하게 외칠 수 있어야 한다

 

 

아, 싫다니까! 싫으면 싫은거다! 싫다고 이야기 좀 하자! ⓒ pixabay

 

 

혹자는 ‘오싫모는 혐오 대상의 타겟팅 자체가 구조를 향한 것이 아닌, 자신에게 정작 피해를 주지 않은 애꿎은 대상을 향하므로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한다. 더불어 이런 방향 자체가 우리 사회의 소수자 혐오에 대한 기제와 맞닿아있고, 그런 기제를 확산시킬 수 있기에 우려스럽다고 한다.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이 지적이 얼마나 타당한지에 대해서는 고민해보아야 한다.

 

 

특정 음식을 싫어하는 것을 ‘저항 없이’ 외칠 수 있었을까? 그들의 기호는 동등하게 대우받을 수 없었다. 위에서 이야기한 “네가 음식 맛을 모른다.” 혹은 “편식 좀 하지 마라.” 같은 이야기를 떠올려 보자. 단순히 말로 이루어지는 ‘저항’에만 부딪힌 것이 아니다. 취향을 분명히 밝혀도 특정 음식을 권하거나, 심지어 먹으라고 강요하는 문화는 또 어떤가. ‘싫다’는 이야기는 자유로이 이루어질 수 있는 무엇이 아니다.

 

 

“그 음식이 싫다”라는 선언은 그 저항을 모두 이겨낼 수 있는 권력관계 속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는 ‘싫다’는 것을 당당히 외치는 것 자체가 시작일 수 있다. 그들이 특정 음식을 어떤 이유로 싫어함을 외침으로써 그런 취향을 가진 사람이 분명 존재함을 드러낸다. 존재가 없는데 목소리가 생길 수는 없다. 그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이후에야 구조에 대한 변화의 시작이 가능하다.  

 

 

실제로 ‘오싫모’의 경우에는 단순히 오이를 싫어한다고 외치는 것을 넘어 식문화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한다. 상단에 고정된 게시물은 오이에 대한 거부 반응 이외에 오이를 먹는 것을 당연시하는, 오이를 강권하는 문화에 대한 지적을 담고 있다. 페이지 개설을 통해 사람들이 존재함을 알리고, 폭력적인 문화에 대한 저항을 이야기한다. 자신들이 싫어하는 음식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는 것은 ‘잘못된 타겟팅’이 아니다. 구조에 대한 이야기의 시발점이다. 이 때 ‘싫다’는 혐오가 아니라 저항이다.

 

 

‘여자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임’ 페이지?

 

 

‘XX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임’ 페이지들이 오싫모 이후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어떤 것을 싫어하는지는 각양각색이다. 가지, 술 등등 음식도 있지만 ‘여자’를 싫어한다는 페이지도 등장했다(이하 여싫모). 지금의 추이를 보면 일부 사람들은 ‘농담거리로 혐오를 소비하는 방식이 퍼지면서 소수자에 대한 혐오 역시 만연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우려한다. 동시에 오이라는, 그들에게 가해하지 않는 대상을 혐오한다는 것 자체가 가지고 있는 논리 구조는 소수자에 대한 혐오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점을 말한다. 

 

 

오싫모는 여싫모와 다르다. ‘여싫모’를 이야기하는 이들은 피해자가 아니라 기득권층이다. 기호에 대한 이야기에서 혐오 논리를 이끌어와 혐오감정을 재생산하는 이들이다. 오싫모는 식문화 속에서 개인적 취향마저 밝히는 것을 억압당해 온 사람들이다. 여자를 싫다고 하는 행위와 오이가 싫다고 하는 행위는 다르다. 전자는 기호를 넘어선 단순한 혐오감정이지만 후자는 피해자로서 존재함을 알리는 선언이자 기호가 말살된 사회에서 기호를 나타내는 표현이다. 오싫모에 대한 걱정은 오히려 피해자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행위를 막아버리는 일이다.

 

 

글. 박다울 (daul.park73@gmail.com)

특성이미지 ⓒ pixabay

박다울
박다울

순간의 포착

3 Comments
  1. Avatar
    하또그

    2017년 4월 9일 13:48

    오이들도 이 글을 읽었으면

  2. Avatar
    doyh

    2017년 4월 28일 01:59

    편식을 거의 안하는 사람이라 잘 느끼지 못했던 주제인데 새롭고 재밌다.
    한번도 오이가 가해를 한다고 느껴본적이 없었는데..
    암튼 흥미롭다.
    그리고 음식 강요 좀 하지말자. 새삼 참 오지랖인듯.

  3. Avatar
    esyang1224

    2017년 5월 17일 18:03

    오싫모와 여싫모의 가치와 의미에 대한 차이를 구별한 글의 마지막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미묘찬 차이를 분명하게 설명해내는데서 저자의 지혜와 예리함이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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