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가 가라앉은 지 3년이 지났습니다. <고함20>은 3주기를 맞아 직접 목포신항과 팽목항을 방문했습니다. 세월호가 인양 되는 그 기억, 3년이 되는 기억을 항구라는 장소에서 직접 담는 것에 더해서 우리가 왜 세월호를 기억해야 하는지를 묻고자 합니다. [세월, 3년]은 세월호 3년의 기록이자, 우리 모두가 지났던 3년의 세월에 대한 기록입니다.]

 

 

세월호가 1,080일간의 긴 항해를 마치고 입항한 목포 신항은 참사를 추모하러 온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유가족과 미수습자 가족들도 목포로 거취를 옮겼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목포로 이동한 지금 나는 팽목항에 남겨진 세월호의 흔적들을 찾기로 했다. 모든 이목이 목포 신항에 쏠렸기 때문에 쓸쓸한 팽목항을 생각했다. “세월과 함께 기록들이 켜켜이 쌓인 곳” 내가 느낀 팽목항의 모습이었다. 팽목항에 쌓인 1,080일이라는 시간에 주목했다. 팽목항으로 이동했다.

 

 

진도항 표지판

 

 

팽목항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진도항이라고 적힌 표지판이다.

 

 

“아 원래 여기가 진도항이었군요?”

 

 

 

일행에게 말을 건다. 13년 2월 전남 진도에 있는 팽목항은 진도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남해안권 발전 종합계획선도 사업 지역으로 선정되면서 타지인에게 널리 알려진 진도라는 이름을 택한 것이다. 아마 이 표지판도 그때 세워졌을 것이다. 하지만 지역 발전이라는 꿈을 안고 붙여진 진도항이라는 이름은 세월호 탑승자들의 꿈과 함께 잊혀졌다.

 

 

 

 

 

표지판에는 진도항이 영어와 한자로 번역돼 있다. 영어와 한자의 배경은 원래 노란색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노란색 배경은 시간이 흐르면서 하얗게 변했다. 다가가 살펴보니 그 아래에는 노란색 리본이 붙었다. 이곳은 더는 진도항이 아니다. 하얗게 변한 배경과 대비되는 샛노란 색 리본은 이를 상징한다.

 

 

팽목항에는 세월호 참사가 스며든다. 팽목항에는 세월호 참사를 기리는 것들로 가득하다. 등대에서는 리본이 보인다. 난간에는 노란 리본과 끈이 펄럭이고, 미수습자 분들의 사연이 적힌 현수막이 추모객의 감정을 움직인다,

 

 

굳어있는 리본 철줄, 녹슨 철 조형물

 

 

주차장 바로 앞 공터로 자리를 옮긴다. 바다를 따라 세워진 초록색 담장에는 노란색 끈과 리본이 걸려있다. 담장을 따라 걷는다. 각각의 리본들에서 시간의 흐름이 본다. 몇몇 리본들의 구슬 줄은 녹으로 가득하다. 빨간 녹으로 뒤덮인 줄은 바닷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굳어버렸다. 이리저리 움직여도 처음 굳은 형태 그대로다. 리본의 색도 주황색으로 변했다. 그 옆에는 얼마 전에 걸린 것으로 보이는 노란 리본이 있다. 빨간 구슬 줄과 은색 구슬 줄, 주황 리본과 노랑 리본의 대비에서 1,000일이 넘는 긴 시간을 느낀다.

 

 

 

 

 

담장 끝부분에는 뒤집힌 종이배를 비롯한 철제 조형물들이 있다. 종이배에는 리본이 묶인 풍경들이 매달려있다. 풍경 역시 녹으로 가득하다. 녹으로 인해 바닷바람이 강하게 불었음에도 풍경 소리를 들을 수 없다. 팽목항의 풍경은 소리를 내는 용도가 아니다. 참사 이후의 시간에 대한 상징으로 그곳에 존재한다.

 

 

분향소의 모습

 

 

공터에는 분향소가 있다. 분향소에는 세월호를 인양해서 진실을 밝히자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그 앞에는 세월호 철제 조형물이 있다. 빨갛게 녹슨 배경은 노란색 스티커로 가득하다. 세월호 모양으로 뚫려있는 곳에는 리본들이 걸려있다. 녹으로 가득한 배지가 보인다. 배지 앞면을 확인하려 했지만 불가능하다. 긴 시간 속에 앞면은 떨어져 나갔고, 본래 있어야 할 자리는 녹으로 가득하다.

 

 

 

옆에는 노란색으로 칠해진 돌무덤이 있다. 돌에는 세월호와 관련된 문구와 그려져 있다. 하나씩 살펴보다가 교황이 방한해 말했던 문장에 눈길이 간다.

 

 

 

“인간적인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

 

 

 

 

교황이 방한해서 세월호 참사를 언급한 지 벌써 3년이 지났다. ‘순수한’ 추모를 주장하던 이들이 떠오른다. 3년이란 긴 기간 동안 유가족분들은 폭언을 들어야 했다. 단식 중에는 바로 앞에서 벌어진 폭식 집회를 경험해야 했다. 한국에서 일어났던 비상식적인 일들을 감당하기에 3년은 너무 긴 시간이다.

 

 

 

분향소 안에 들어간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수많은 희생자의 사진이다, 제단에는 양념치킨과 다과들이 있다. 희생자들이 좋아했던 음식을 올렸다는 글이 떠오른다. 향을 하나 피우고 분향소를 나올 때 그림 하나가 눈에 띈다. 꽃을 든 남성이 침몰하는 세월호가 그려진 등을 보이며 눈물을 훔치는 그림이다. 그림이 그려진 캔버스는 곰팡이로 가득하다. 지난 3년 동안 바닷가의 습기는 캔버스를 끊임없이 공격했을 것이다. 결국, 캔버스는 습기를 이기지 못했다.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이 야속하다.

 

 

 

 

 

 

등대길

 

 

 

팽목항에는 바닷가를 향해서 난 등대길이 있다. 길 양옆으로 노란 리본과 미수습자들의 사연이 담긴 현수막이 걸려 있는 길이다. 당연히 길 끝에는 빨간색 기억의 등대가 있다. 등대 중앙에는 큰 리본이 붙었다. 리본을 보려고 가까이 다가간다. 당연히 노란색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리본은 하얀색이다.

 

 

 

하얀 리본을 보고 나서야 등대길에 색이 바랜 것들이 많음을 깨닫는다. 미수습자 이름이 적힌 깃발들, 희생자들의 사연이 담겨있는 현수막은 처음의 모습이 아니다. 깃발의 끝부분은 찢겨있고, 현수막은 뿌옇다. 이 모든 것에는 세월호를 기억했던 모든 이들의 기록들이 담겨있다.

 

 

 

다시 등대길 초입으로 돌아간다. 아들에게 축구화를 사주지 못해서 미안했다는 현수막 아래에는 세 켤레의 축구화가 놓여있다. 놓인 순서를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중간에 놓여있는 흰색 축구화가 가장 오래돼 보인다. 때가 많이 탔으며, 리본의 철 줄이 녹슬었기 때문이다. 먼저 놓여있던 축구화에 때가 탄 것이 안타까워 새로 축구화를 샀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세 켤레의 축구화가 놓일 동안 아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2024, 2034, 2044

 

 

등대길에 있는 많은 미술 작품 중 하나에는 2024, 2034, 2044가 적혀있다. 참사가 발생한 2014년에서 10년씩 더한 숫자들이다. 앞으로 절대 참사를 잊지 않겠다는 의미다. 작가의 각오처럼 배가 인양되고, 모든 진실이 밝혀지고, 책임자가 처벌을 받아도 세월호는 결코 잊을 수 없다. 참사가 주는 교훈은 어느 시대에서나 유효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세월호를 기억한다. 앞으로 팽목항에 세월호의 시간은 계속 쌓여야 한다.

 

 

 

글. 이스국(seugwookl@gmail.com)

사진. 이스국, 쌔미, 통감자 

기획. 감언이설, 쌔미, 이스국, 통감자, 모킹버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