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가 가라앉은 지 3년이 지났습니다. <고함20>은 3주기를 맞아 직접 목포신항과 팽목항을 방문했습니다. 세월호가 인양 되는 그 기억, 3년이 되는 기억을 항구라는 장소에서 직접 담는 것에 더해서 우리가 왜 세월호를 기억해야 하는지를 묻고자 합니다. [세월, 3년]은 세월호 3년의 기록이자, 우리 모두가 지났던 3년의 세월에 대한 기록입니다.]

 

 

바다 깊은 곳에서 흐른 3년의 어두운 시간이다. ‘흑빛’에 묻혀있던 시간 끝에 세월호가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났다. 사람들에게 시커먼 상처만 남긴 그 배는, 그 자체도 녹슬고 부서진 어두운 면모를 드러냈다. 세월호가 침몰하고, 3년이 지난 2017년 4월 16일까지 그 긴 시간은 어두운 시간이었다. 봄은 언제나 절망을 확인하는 잔인한 계절이었다.

 

 

목포가 품은 노란빛

 

 

목포에 가까워질수록 도로 주변엔 노란빛이 돈다. 아직 활짝 피지 못한 채 노란빛을 빼꼼 내놓은 개나리들이 목포로 향하는 길을 덮었다. 그 노란빛은 목포 시내로 이어진다.

 

 

목포 시내 길가로 세월호 추모플랑이 끝없이 이어진다. 규모가 큰 정치집단부터, 아파트 부녀회까지 목포사람들은 온 힘을 다해 세월호의 시간을 슬퍼하고, 함께 보내고 있다. 가로등 아래 걸린 것도 공연이나 행사 홍보 걸개가 아닌 모두 세월호 추모 걸개다. 목포 시내는 팽목항에서의 시간을 이어가기 위해 노란빛을 한껏 품었다.

 

 

목포시내 ⓒ 고함20

 

 

 

목포신항으로 진입하기 위해 목포대교를 탄다. 다리 너머로 푸른 바다가 유유히 넘실거린다. 같은 방향으로 차들이 이어진다. 잠시 잔잔한 바다를 눈에 담았다. 곧 마주할 세월호를 상상하며 바다를 바라보자 편안한 마음은 어느새 긴장으로 변했다. 갑자기 풍경이 바뀐다. 순식간에 바다가 아니라 쩍쩍 갈라진 흙이 눈앞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갈라진 흙바닥 너머로 세월호가 누워있다.

 

 

차는 계속 속도를 내지만, 갑자기 나타난 세월호는 눈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물이 없어 갈라진 흙바닥, 물속에서 갈라져 나타난 세월호가 눈에 계속 들어온다.

 

 

 

ⓒ고함20

 

 

 

아…

 

 

 

일행들은 갑작스러운 목격에 짧은 탄식을 뱉는다. 이어지는 깊은 한숨, 그렇게 스스로 다독였으면서도 여전히 세월호의 목격은 큰 사건이고 충격이다.

 

 

 

세월호가 점점 크게 보인다. 그만큼 주변에 사람들도 많다. 2014년 4월, 안산 합동 분향소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슬픔의 감정, 사람들의 발걸음, 원망스러운 눈으로 바라본 언론사 취재 자동차까지. 그때 그 모습이 떠오른다.

 

 

 

시내에서 이어진 플랑은 목포대교를 지나 목포신항에서도 여전하다. 경찰의 안내를 받으며 주차장으로 향했다. 노란 조끼를 입은 자원봉사자들이 차를 안내하고, 주차장에는 각종 명칭과 함께 천막이 펼쳐져 있다.

 

 

 

주말 목포신항에 추모객이 몰려 주차할 공간이 부족하다는 뉴스 보도를 봤지만, 기우였다. 한산했다. 차를 세우고 주차 기어를 넣고 사이드브레이크를 드르륵 잠근다. 시동을 끄자 차에선 적막이 흐른다. 일행들도 말이 없었지만, 목포신항은 조용했고, 파도 소리만 가끔 들렸다. 안전벨트를 푸르고도 쉽사리 내리지 못한다.

 

 

 

벚꽃엔딩의 기억에서

 

 

 

주차장에서도 세월호가 보인다. 다른 구조물에 많이 가려져 있다고 해도, 파란색 바닥이 녹슬어 갈라진 흔적이 더 크게 보인다. 주차장에서 세월호와 거치된 곳까지는 꽤 멀다. 셔틀버스를 타러 간다. 한산한 정류장 앞에 섰지만 이내 자원봉사자가 다가와 말을 건다. “버스 방금 갔어요. 30분에 한 번 출발해요.” 별수 없이 세월호까지 걷는다. 주차장을 나선 지 얼마 안 돼 관광버스가 주차장 안으로 들어온다. 뒤에서 우리에게 말을 걸었던 자원봉사자가 다시 외친다.

 

 

“지금 버스 왔으니까 기다렸다가 이거 타고 가요!”

 

 

셔틀버스정류장에는 기다리는 사람이 늘었다. 연인, 가족 등이 저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들어오는 버스를 바라본다. 셔틀버스에 올라 맨 앞자리에 앉았다. 시동을 걸어놓은 채 이것저것 누르던 기사님은 이내 패딩에 두 손을 쑤셔 넣고 버스에서 내린다.

 

 

 

기사님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조용히 바다 쪽을 바라보며 천천히, 깊게 담배 끝을 태워냈다.

 

 

 

밥 먹을 시간도 없었어. 오늘은 그나마 기사 한 명 더 파견된 거라 쉴 시간이 있어.

 

 

 

주말에 사람이 몰렸다. 한 차에 60명씩 태우기도 했다. 사람이 많아 입석했지만 그것도 해수부에서 위험하다며 못하게 했다. 기사님은 말을 쏟아내곤, 담배를 발로 껐다, 한참을 서성이다 다시 버스에 올랐다.

 

 

 

그 사이 어느 단체로 온 노인들이 버스를 가득 채웠다. 느릿느릿 출발한 버스는 라디오를 켜고 간다. 이름 모를 DJ가 봄이라고 선곡했는지,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이 흘러나온다. ‘그래 그날 아침 뉴스를 본 편의점 앞엔 벚꽃이 피어있었지.’ 다시 그 날을 떠올리는 찰나 버스는 세월호 앞에 도착했다.

 

 

 

노란 리본이 전하는 이야기

 

 

 

내린 곳 옆으로 도로가 길게 나 있다. 4차선의 도로 위 이미 사람들이 서성거리고, 앉아있고, 서 있다. 이곳은, 민간인들이 가장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장소다. 도로를 따라 설치된 철조망에 사람들이 가득하다. 조금이라도, 그 배가 더 잘 보이는 곳을 찾기 위해 사람들은 부지런하게 움직인다.

 

 

 

철조망 너머로 세월호가 보인다 ⓒ고함20

 

 

 

목포에서 가장 노란빛이 가득한 곳이다. 통제된 도로 위 신호등은 노란불만 깜빡인다. 길게 이어진 철조망엔 마치 애기똥풀이 활짝 핀 것처럼 노란 리본으로 덮여있다.

 

 

 

노란 리본에 글을 적을 수 있는 책상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목소리를 꾹꾹 눌러 적어낸다. 한참을 적지 못하고 세월호를 쳐다보는 할머니, 구부리고 앉아 빼곡하게 리본을 채우는 고등학생, 아이를 품에 안고 훌쩍이는 아버지까지. 각자의 목소리와 슬픔, 기억, 시간을 담은 노란 리본들은 그렇게 철조망에 매달렸다. 펄럭거리며 리본들끼리 부딪히며 내는 틱틱소리가 마치 세월호의 미수습자들에게 돌아오라 얘기하는 것 같다.

 

 

 

리본에 글을 적는 사람 ⓒ고함20

 

 

 

세월호가 가장 잘 보이는 곳은 항만으로 들어가는 철문이다. 가장 많은 리본이 있고, 사람들이 가장 오래 서성거리는 곳이다. 긴 철조망을 손으로 훑으며 철문 앞에 도착했다. 참 날은 또 좋아서 리본들은 노란빛을 가장 밝게 빛내고 있었다. 눈이 부셨다. 사람들은, 바로 그 밝은 노란 리본에 파묻혀 있다.

 

 

 

철문 앞 사람들 ⓒ 고함20

 

 

 

노란색 리본에 파묻힌 사람들은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각자 서로 다른 의미의 시간을 보내고 철문 앞에 와 있다. “태국에서도, 한국에서도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노란 리본을 한참 바라보던 태국인에게 세월호는 자신의 국가와 주변 사람들의 안위를 걱정하게 한 사건이었다. “배를 보고 있으니 가슴이 아파. 어린애들이 죽어가는데 선장이며 정부는 무얼 했냐” 아들 손을 잡고 휠체어에 의지해서 온 92세 노인에게 세월호는 어른의 무책임과 아들이 생각나는 슬픔이다.

 

 

 

리본에 파묻힌 사람 ⓒ 고함20

 

 

 

긴 어둠의 시간을 뚫고 세월호는 나타났지만, 여전히 배와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쇳덩이가 많다. 가끔 안전모를 쓴 사람이 세월호와 사람들 사이에 있는 철문을 통해 들어갔다가 나온다. 유족들이 머무는 천막은 새로 가져왔다지만 불안하고 낡았다. 천막 뒤로는 여러 빨랫감이 널려있다.

 

 

 

 

ⓒ고함20

 

 

ⓒ고함20

 

 

 

다시 흐를 시간은 노란색일까?

 

 

 

그날의 목포는 그랬다. 3년 전 4월은 흑빛이었고, 2년 전, 1년 전 까지도 그랬다. 올해 목포엔 노란색이 새로 피어났다. 노란색의 리본은, 노란색의 목포는 그 어둡고 긴 시간을 다시 노란 빛으로 흐르길 소망하고 있다.

 

 

 

글. 통감자(200ysk@naver.com)

기획. 통감자, 쌔미, 이스국, 감언이설, 모킹버드

사진. 통감자, 이스국, 쌔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