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침몰했다는데?”

 

 

 

군대에서의 참사

 

세월호 사태를 마주한 건, 군부대였다. TV에서는 가라앉고 있는 배의 모습이 담기고 있었다. 다만 군의 일과는 바빴고, 도중에 ‘전원 구출했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사회의 감각이 무뎌진 그 곳에서는 그게 4월 16일 기억의 전부다. 당장 적을 앞두고 있는 곳에서 4월 16일의 세월호는 ‘다행히 별 일 없게 지나간’ 일이었다.

 

시간이 지나서 이상함을 느꼈다. 전원 구출은 오보였다. 다만 사회의 긴박함과 슬픔은 산 속 깊은 곳까지 닿지는 못했다. 사회의 소식은 접하기 어려웠고 TV는 바쁜 일과 속에서 멀어졌다. 세월호를 마주할 수 있었던 유일한 시간은 식당에서 아침을 먹을 때, 식당 TV에서 나오는 뉴스과 불과했다. 식당 관리관이 유일하게 틀어놓는 채널인 어느 종편의 뉴스.

 

 

 

그 때의 의문은 ‘왜 유병언이 뉴스에 나오는 걸까’였다. 세월호에 대한 정보가 최소한일 수밖에 없던 환경 속에서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세월호에 대해 알고 있는 건 결국에 그 배에 탄 사람들이 제대로 구출되지 못했다는 이야기 뿐인 어느 군인은 ‘왜 구출하지 못했는지’가 궁금했고, ‘어느 대처가 있었는데 무슨 문제가 있었다’가 궁금했다. 다만 그 궁금증을 해결하기에는 눈 앞의 일과가 바빴고, 제한된 사회의 소식은 세월호라는 이름을 무뎌지게 했다. 난 그렇게 전역을 했다.

 

 

의문투성이 사회

 

 

세월호를 감각하기 시작한 건 전역 이후였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고 있는지, 왜 그들이 분노하고 슬퍼할 수밖에 없는지. 동시에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세월호를 추모하는 이들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사람이었다. 사회의 어느 소식에 지나지 않게 되는, 세월호에 무감각할 수밖에 없던 군인이었으나 왜 유족들이 조롱거리가 되어야 하는지는 역시 궁금했다. 유병언의 친족이 어느 음식을 먹었는지를 몇 분째 다루고 있는, 아침 식사에서 마주한 종편 채널의 뉴스처럼.

 

 

 

 

ⓒ오마이뉴스

 

 

 

전역한지 3년 째를 지난다. 그 기간을 흐르며 이제 남은 의문은 ‘왜 우리는 이러한 일들과 마주해야 하는가’다. 세월호는 처음과 끝이 아니었다. 이전부터 우리는 수많은 안전 참사를 겪었다. 그리고 바다에서 청소년을 떠나보냈다. 건물이 무너져서 대학생들을 잃었다. 직원들의 무관심 속에서 구의역의 청년을 잃었다.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를 잃어왔다. 4월 16일이 3번째 돌아오는 지금, 여전히 우리 사회는 또 누군가를 잃을 준비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이제 우리는 그 누구도 잃지 말아야 한다

 

 

3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세월호를 감각하지 못하던 군인은 이해하지 못했던 리본의 의미를 이해하고 세월호를 감각했다. 단식하는 피해자 가족 앞에서 음식을 먹으며 조롱하던 이들에게 분노하지 않던 사회는 어쨌거나 추모를 하기 시작했다. 그 3년 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3년이 지났음에도 생겨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이제 우리는 그 누구도 이런 식으로 잃지는 않겠다’는 다짐과 행동으로 보인다. 정말 우리는, 이제는 ‘안전’을 우선하고 있을까? 우리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을까?

 

 

 

 

 

3년이 지났고, 가라앉은 배가 올라왔다. 우리의 안전은 정말로 ‘올라왔을까’. 우리는 수많은 피해자들을 지나 더 이상 그 누구도 잃지 않는 사회를 만들었는가. 아니면 최소한 그러기 위해 노력이라도 하고 있는가. 아니 어쩌면, 우리는 많은 것이 변한 3년 동안 여전히 우리의 안전만은 그 자리에 두고 왔는가. 사람들을 잃은 그 자리에 우리의 안전을 둔 채 이제 ‘잊자’고 하고만 있는 것은 아닌가. 이제 우리는 또 다시 누군가를 추모하고, 억울하게 죽은 이들을 위해 광화문에 가야 하지 않아도 되는가. 정말로 우린 그런가. 3년이 지났으니 이제 우리는 우리를 지킬 수 있는가.

 

 

2014년 4월 16일에서 나아가기 위하여

 

 

 

 

모든 일이 마무리된 것 같은 지금, <고함20>이 진도와 팽목항에 다녀온 것은 마무리를 짓기 위함이 아니었다. 도리어 질문하기 위함이었다. 모두가 ‘정말로 이제는 되었다’고 할 때, ‘정말로 이제는 된 것이냐’고 묻기 위함이었다. 우리가 배를 건져 올릴 때 우리의 안전을 함께 건져 올리지 않았다면 세월호는 여전히 진행 중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또 누군가를 잃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또 누군가의 죽음을 죽음으로 보지 않고 조롱하고 싸울 수밖에 없다.

 

 

세월호를 감각하지 못했던 군인 역시 비극적이지만, 가장 비극적인 것은 사회 소식에서 배제된 군인조차 이해하지 못했던 일들이 벌어지는 현실이다. 그 누구도 구하지 못하는 제도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분란을 만드는 언론이 변하지 않는 현실이다. 우리의 현실은 2014년 4월 16일에 여전히 멈추어 있지는 않는가. 2017년 4월 16일은 그래서 끝이 아니다. 우리의 안전에 대한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는다면, 죽은 이들에 대한 추모를 추모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여전히 우리는 2014년 4월 16일을 살 뿐이다. 나는 2017년 4월 16일에 살고 싶다. 내년에는 2018년 4월 16일에 ‘살고 싶다’.

 

 

 

이제 우리는 그 누구도 잃고 싶지 않다. 

 

 

 

글. 감언이설(gchhg2005@naver.com)

기획. 감언이설, 쌔미, 이스국, 통감자, 모킹버드.